지난 세대의 잘못된 수학교육방식, 반복숙달

수학을 잘못 공부하는 방법 05편

by 리나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대로 가면 내 뇌가 망가져 버릴 것 같다


는 생각을 했던 적이 한 번 있었다. 거의 공포에 가까웠던가. 아니 솔직히 말하면, 그 땐 그런 생각조차 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때가 언제였냐면, 군대에서 이등병 시절에 인삼밭으로 대민지원을 갔을 때였다. 난 인삼밭에 대해서 잘 알지 못 해서 내 작업 내용을 정확하게 파악할 수는 없었지만, 인삼밭의 차양막이 바람에 날아가지 않도록 철사로 단단하게 고정하는 작업이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고된 훈련을 빼먹을 수 있어서 너무 좋다는 생각과 사제 짜장면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난 너무 기뻤지만, 일단 작업을 시작한 이후로는 내 생각이 오산임을 깨달았다. 나는 원래 그냥 혼자 묵묵히 일을 하는 것을 잘 하기도 하고, 좋아하기도 했는데, 철사를 감고, 감고, 감고, 감고, 감고, 감고, 감고, ...


얼어죽을 놈의 인삼밭!


나는 그때 단순작업이 인간을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깨달을 수 밖에 없었다...




학원에서 아이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사용하는 주된 방식은 문제의 풀이방식을 알려주고 이를 반복숙달하여 틀리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리고 아이들이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여 문제를 틀릴 때는 비슷한 유형을 반복해서 풀어보게 함으로써 그 실수를 줄이려고 한다. 그래서 그런 식의 수학문제은행 시스템도 여러가지 나와있고,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기 때문에 예전엔 그런 시스템을 알아보곤 했었다.


저 방식이 수학을 공부하는 기본 틀이라고 생각하는 선생님들이 많기 때문에, 선생님들 중에는 "수학은 암기다" 라고 좀 과하게 말씀하시는 분들도 있고, 선생님이 아닌 분들 중에서도 수학공부를 어느 정도 하신 분들은 "외우다 보면 이해가 된다" 라고 말씀하신다.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명문대를 나오신 분들 중에 저렇게 공부를 안 하신 분들이 극히 드물지 않을까. 나 역시 저런 공부방식을 통해서 나름 사람들이 좋다는 사립대학에 갔으니까.


저 방식이 수학공부의 기본이라고 생각한다면, 남들보다 더 잘 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문제를 반복숙달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유명하다 싶은 수학학원에서 내는 숙제의 양을 보면 아이들이 수학숙제만 하다가 지쳐쓰러질 것 같았다. 이것은 거의 치킨게임에 가까운데, 여기서 승리하기 위한 필수조건은 바로 아이의 머리이다. 아이의 머리가 좋으면 좋을수록 더 어려운 문제들을 더 많이 소화할 수 있고, 암기력도 좋기 때문에 머릿 속에 더 많이 담아둘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떤 수학 선생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다.


내가 잘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잘 하는 아이가 나를 거쳐가는 것


이라고. 이 방식으로 성공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 것은 아니다. 아주 극히 소수이긴 하지만, 고등학교 수학과정을 모두 다 담을 수 있는 머리를 갖고 있는 아이가 있긴 있다. 잘난 척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도 그것이 가능했기 때문에 나름 괜찮은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머리를 갖지 못 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저 방법을 쓰면 어떻게 될까. 그런 머리를 갖고 있는 학생들은 재미있게도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그 개념의 본질에 대한 이해 없이도 어느 정도는 스스로 그 안에서 자신만의 무언가를 깨우쳐서 좋은 점수를 맞지만, 그러지 못 한 학생들은 정말 이유도 모르고 외운다.


물론 이 방법의 장점이 있긴 있다. 빠른 시간에 눈에 띄는 성장이 가능하다는 것. 초등학교나 중학교 수학에서는 문제 자체의 난이도가 그렇게 높지 않은 편이고, 개념을 그렇게까지 깊게 파고드는 문제도 없기 때문에 솔직히 평범한 머리만 되어도 이 방법으로 단기간에 성장할 수 있다. 게다가 중학교까지 이 방법이 통하는 이유는 중학교 수학에서는 고등학교 입시를 제외하고 전 단원을 한번에 물어보는 시험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항상 그때그때의 내신시험, 즉 중간고사 기말고사에 나오는 두서너개의 챕터만 공부하고 시험을 보기 때문에 외우기가 더 수월하다.


다만, 단점이 좀 많이 크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외워야 할 문제의 유형도 많아지고, 똑같은 개념이라도 더 깊게 물어보기 때문에 공부를 많이 했다고 생각해도 항상 모르는 문제들이 나오거나, 문제의 의미조차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다반사다. 게다가 고등학교에서는 모의고사라는 시험이 있어서 그때까지 공부했던 과정을 누적해서 알고 있지 않으면 찍을 수 밖에 없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평범한 대다수의 학생들이 고등학교에 올라가면, 개념을 이해하지 못 하는 수학공부를 너무 당연하게 받아들일 수 밖에 없다. 애초에 무슨 소리인지 모르겠는데 공부를 계속 하는 것이 대단한 게 아닐까. 그런데 이걸 극복하고서도 계속 노력하는 학생들이 존재한다. 사실 이 아이들이 가장 안타깝고 슬프다. 어차피 수학개념을 이해 못 하는 것은 중학교 때도 마찬가지였고, 고등학교에 와서도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한 학생들이기도 하고, 이런 아이들일 수록 수학은 암기다 라고 굳게 믿고 있으니까.


문제는 이것이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는 중학교 수학 커리큘럼과 비슷해서 노력을 열심히 하면 그래도 버틸 수 있는 반면에, 2학년부터는 중학교 때 배우지 않았던 커리큘럼들이 대다수 등장하면서 외워야 되는 난이도가 올라가고 그 양도 늘어난다. 사실 여기서 머리가 정말 좋은 아이들과 그렇지 않은 아이들이 갈린다. 여기서 살아남으면 보통 고등학교 3학년까지 살아남을 수 있는데, 여기서도 일부만 최상위로 가고, 그렇지 못 한 학생들은 스스로 수포자라고 칭하지는 않지만, 자기가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하며 관성적으로 공부한다. 실제 포기는 하지 않지만, 마음 속으로는 포기한 느낌이랄까.


어떤 분들은 문과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하는 아이들이고, 이과학생들은 수학을 포기하지 않은 아이들이라고 단정해서 말씀하시는데, 그렇지 않다. 이과학생들 중에서도 대부분의 아이들은 관성적으로 공부할 뿐, 수학을 포기하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수학 때문에 문과로 교차지원을 하지도 않을테니까.


그리고 이 반복숙달 방식은 시간에 비해 빨리 성장하지만, 그 성장한계가 뚜렷하다. 대부분의 학생들은 어느 한계점이 오면, 공부를 더 엄청나게 한다고 해도 눈에 띄는 성장은 거의 불가능하다. 나중에 내가 다시 언급하겠지만, 내가 고등학교 때 바로 이 케이스였다. 실제로 하루에 수학만 3시간 이상 꾸준히 거의 2년 반을 공부했지만, 내 수학실력은 처참했으니까. 관성적으로 끊임없이 수학을 계속 공부하긴 했지만, 더 떨어지지 않기 위한 몸부림이었을 뿐, 내가 더 잘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는 없었다. 난 수학에 재능이 없다고 느꼈으니까.


이렇듯 보통 학원에서 사용하는 반복숙달 방식은 기성세대의 수학공부방식이며, 이 세대의 특징은 공부는 엉덩이 싸움이라거나, 노력과 근성이 있으면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아이가 이해를 못 해서 숙제를 못 해오는 것은 아이가 게을러서 그런 것이고, 아이가 몰라서 질문을 하면, "그걸 왜 궁금해 하냐고, 중요한 것은 이것이니까 이걸 숙달하면 된다"고 아이가 쓸데없는데 신경을 쓴다며 다그친다.


보통 학원에서 이렇게 배우는 자기 자식들을 보는 아버지들이 "이건 아니야! 우리 때는 그냥 매일 놀면서도 나중에 자기 하고 싶을 때 열심히 잘 해서 이렇게 먹고 사는데 지장 없잖아. 나를 봐라" 라고 어머니들에게 대들지만, 실제로 시험점수를 받아보면 반복숙달 방식으로 공부한 애들이 점수가 더 높게 나오기 때문에 도리어 어머니들로부터 "당신은 요즘 세상이 어떤지 알고 그런 소리를 해. 지금은 옛날이 아니라서 이렇게 안 하면 뒤떨어져. 애들 뒤떨어지면 당신이 책임질거야!" 라는 반박에 깨갱하고 그 뒤부터는 그냥 침묵하신다. 게다가 아이들 역시 나중엔 학원에서 이렇게 빡세게 해야 힘들어도 점수가 올라간다는 것을 체감하기 때문에, 알아서 학원의 방식을 받아들인다.


즉, 반복숙달 방식이 우리나라의 수학시험에서 점수가 잘 나오게 만드는데 어느 정도 검증된 교육방식이기 때문에 이 방식을 완전히 비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나는 과거에 이 방식을 싫어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측면에서는 쓸모가 있다고 생각했다. 뭐, 아예 안 하는 것보다는 그렇게라도 하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어서 였지만.


문제는, 이 반복숙달 방식이 선행학습과 연결되면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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