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못 공부하는 방법 04편
자, 그래서 수포자가 생기게 된 이유를 간략하게 다시 되돌아 보자면, 현재 초등학생들에게 수학을 가르칠 때, 아이의 두뇌를 성장시키지 못 하는 교육방식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주범은 쌍팔년도의 수학교육방식인 그저 열심히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선생님과 부모님들이다. 이 분들이 남들보다 더 유리한 고지에 서고자 하는 욕심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파르타식 교육과 선행학습이 학생들 사이에서 일반화되기 시작했다.
이 방식을 통해서 중학생이 된 아이들은 그저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답이 없다. 이미 그렇게 수학을 공부하는 것 자체가 습관화되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경우는 이미 수학공부를 싫어하게 된 이후라 공부를 해도 그저 시간 때우기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도 중학교 수학과정은 개념이 그렇게 어렵지 않고, 문제의 유형도 많지 않기 때문에 머리가 좋은 편이라면 열심히 반복숙달해서 좋은 점수를 얻을 수 있다. 문제가 되는 것은 이 시기에 열심히 하는 아이들이 정신적인 두려움을 뿌리깊게 갖고 간다는 것이다. 이는 종종 아이들에게 정신과 치료를 요할 만큼 심각한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이런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면 그동안 쌓였던 문제가 가시화되기 시작한다. 처음에도 말했듯이 수학이 어렵다고 포기하는 것 자체는 과거나 지금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하지만 과거에 문제가 되지 않았던 것들이 지금 문제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우선 선행학습을 통해 수학을 머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반복숙달을 통해 공부했던 학생들은 이제 수학이 머리 쓰는 과목이라고 알려줘도 체감하지 못 한다. 그 아이들은 그냥 문제를 보면 바로 풀이법이 떠올라서 계산을 하는 것이고 떠오르지 않는다면 그냥 틀리는 것이다. 열심히 하는 아이라면, 틀린 것을 오답노트해서 공부하려고 하겠지만 그것 역시 본질은 외우는 것이고, 외운 것은 결국 잊어버리게 되어 있다.
이게 비참한 것이 무엇이냐면, 공부를 죽을 정도로 해도 해도 얻을 수 있는 결론이
나는 해도 안 되나봐.
로 끝이 나기 때문이다. 나는 예전에 외고에 다니던 학생이 방학 기간 동안 수학을 열심히 하겠다며, 하루에 17시간 동안 수학을 공부했던 것을 본 적이 있다. 그리고 개학 이후 나온 시험 결과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에 좌절했었던가.
사람이 노력을 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이 실패만 겪는다면, 아이가 학습하는 것은 "노력해도 나아지는 것이 없다" 는 패배의 습관화이다. 수학을 못 하고 싫어하는 아이라도 중간중간에 어떠한 이유로든 한두번 정도는 수학을 공부해야 겠다는 결심을 하는데, 그렇게 도전할 때마다 느끼는 것이 "그럼 그렇지. 나는 그냥 이따위인거야" 로 끝나는 것은 얼마나 불행한 일인가.
내가 수포자를 불쌍하다고 느끼는 것은, 그들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면서도 결과물이 나오지 않아서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 때문이다. 애초에 어렵다고 포기한 사람들이야 노력을 안 했으니 불쌍할 이유도 없다. 물론 애초에 어렵다고 생각해서 포기한 사람들에 대해서도 할 얘기가 있지만, 그건 다음 기회로 미루자.
그리고 문제가 되는 것이 또 있다. 이것은 사실 시험 위주의 공부방식의 폐단이며 수학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우리나라 교육 방식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맞고 틀리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원리나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이 너무 일반화되어 있다.
내가 어떤 원장님의 부탁으로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 출강을 나갔던 적이 있다. 그때 한 고등학생이 내게 어떤 문제를 물었는데, 내가 "네가 이 문제에 대한 개념을 이해 못 하는 것 같은데, 그냥 이 문제를 푸는 방식만 알려줄까, 아니면 개념이랑 같이 설명해 줄까" 라고 선택지를 준 적이 있었다. 그 학생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그냥 문제 푸는 방식이나 알려주세요" 라고 말해서 그렇게 알려줬는데, 나중에 그 원장님과 얘길 해보니, 그냥 거기 애들의 분위기가 그렇다는 것이다.
이것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틀리는 것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습관이 생기면 고등학교 졸업 이후에도 어떤 문제를 대할 때 틀릴 것 같으면 "어차피 틀릴 것을 왜 하느냐" 라고 생각하며 아무 것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사람들은 옳다고 검증된 것을 완벽하게 따라하는 것은 숙달되어 있지만, 새로운 미답의 영역은 걸어가길 두려워 한다. 문명이 발전함에 따라 그 시대에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요구되는 능력은 "검증된 것을 완벽하고 빠르게 따라하는 능력" 에서 조금씩 "미답의 영역을 개척하는 능력"으로 바뀌게 되는데, 현재 한국의 교육방식으로는 이런 시대의 변화에 대처할 수 있는 인재를 기르기 어렵다.
실제로 내가 겪은 아이들 중에는 위에서 말한 두가지 문제인 패배의 습관화와 시행착오를 용납하지 않는 문제를 모두 갖고 있는 경우가 있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름 좋은 대학에 가서도 패배와 자학하는 것이 습관화되어 있어서 무엇을 해도 금방 포기하고 말았다. 대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 하고, 인간관계에서도 제대로 적응하지 못 한 채로 아웃사이더로 대학교 졸업도 제대로 하지 못 할 뻔 했다. 실제로 매우 뛰어난 인재였음에도 불구하고, 위에서 말한 심리적인 문제들이 장애로 불거진 경우이다.
마지막으로 수포자가 생기는 과정에서 내가 가장 문제라고 생각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우리나라는 교육열이 높기 때문에 세계적으로 문맹률이 낮다. 그러나 OECD 국가 중에서 실질적 문맹률이 가장 높다고 하는 글을 본 적이 있는데, 무슨 말이냐 하면 그냥 글을 제대로 못 읽는다는 거다. 이게 어렸을 때부터 수학문제를 풀 때, 문제의 조건을 제대로 따져서 수학문제를 푸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제에서 숫자들만 대충 긁어 모아서 곱셈 챕터이면 곱해서 맞으면 맞았다고 좋아하는 것이 습관화가 되어버린 것이다.
이게 꼭 수학 교육방식의 문제라고 볼 수는 없는데, 학원에서의 수학교육 방식에서 이를 가속화하는 것은 분명하다. 그래서 스토리텔링 수학이라고 하는 것이 최근 수학교육의 화두가 되어 아이들에게 문장을 제대로 읽으라고 하는데, 이쪽 관련 수학교재도 본 바로는 글쎄, 그냥 문장만 길게 써서 문제를 낸다고 해서 그것이 나아질 것 같으면 내가 지금까지 말한 문제점들은 크게 신경쓸 거리도 안 될 것이다.
이게 심각해지면, 아이들이 학교 공부가 문제가 아니라 그냥 무언가에 집중하는 행위 자체가 어려워진다.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는 "그래, 흥미가 없어서 그렇다" 고 치지만, 졸업 이후에 무언가를 배우는 행위에서도 항상 제대로 집중하지 못 한다. 이대로 어른이 되면, 일상생활에서는 보통 사람과 같지만 업무적인 측면에서는 본인 스스로 자괴감을 느낄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된다. 그리고 그땐 이미 늦었을 확률이 크다.
지금까지 수포자가 생기는 이유를 우리나라 학교 교육과정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펴보고, 현 시점에서의 수포자가 왜 심각한 문제인지 알아보았다. 혹자는 "이건 수학 교육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교육방식 자체의 문제가 아니냐" 라고 말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 의견에 어느 정도는 동의한다. 내가 수학을 가르치기 때문에 수학 쪽에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으려고 해서 그렇지, 반 정도는 국어적인 영역과 걸쳐 있다. 만약 내가 영어나 국어를 가르쳤다면, 영어나 국어 쪽에서 문제점과 해결책을 찾으려고 했을 것이다.
하지만 앞에서도 언급한 적이 있는데, 언어적인 측면은 교육을 통해서 향상시키는 것이 매우 어렵다. 국어적인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가능해도, 국어적인 능력을 향상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니까. 하지만 수학 쪽은 어느 정도는 언어적인 영역과 겹치는 부분이 있고, 그외에 문제해결력을 건드리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국어보다는 상대적으로 쉬운 편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 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수학을 공부하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실제로 커뮤니티의 글들을 보면 종종 심심풀이로 수학을 공부하고 싶다거나 이미 공부하려고 하는 성인들이 보이는데, 이 사람들이 수학이 실무적으로 사용하기 위해서 수학을 공부하려고 하는 경우는 아닐 것이다. 무언가 스스로에게 부족함을 느끼기 때문이 수학이 필요없어진 지금에 와서 다시 수학을 공부하려는 것이 아닐까? 수학공부에 실패했다가 다시 시도하여 많은 도움을 받은 나로서는 그 시도가 매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바로 내가 변한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