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못 공부하는 방법 06편
자, 앞에서 말한 반복숙달방식에 선행학습이 더해지면 아이들이 어떻게 반응할까. 아이들은 선행학습이 대세가 되기 이전에도 이미 개념을 이해하지 않고 문제를 풀고 있었다. 이건 1990년대 세대나 2000년대 세대나 크게 다르지 않을거다.
그런데 선행학습은 그 특성상 아이가 지금 배우는 현행학습진도보다 어려운 것이 당연하기 때문에, 현행학습진도조차 이해를 못 해서 외우는 아이들이 선행학습을 하게 되면 선택할 수 있는 길은 역시 반복숙달하여 외우는 것 밖에 없다. 이것이 아이를 망치는 최악의 케이스로 가는 입구이다.
학원에서 선행학습이 필수적이라고 말하는 논리는 이렇다.
고등학교 수학 어려워서 애들이 많이 포기하잖아요
그러니까 미리 해놔야 되는 거에요
한번 보면 잘못 해도 두번 세번 봐도 못할까요?
여러번 보면 잘할 수 밖에 없어요
라고. 언뜻 들으면 당연히 맞는 말이라 나도 한동안 저 논리에 반박하지 못 했다. 아니, 나도 저번 글에서 얘기했지만, 계속 노력하는데 못 하는 것이 이상하지 않냐고. 그런데 결과는 어떠한가. 수학교육 커리큘럼을 더 쉽게 만들어 놔도 포기하는 애들은 더 많아졌다. 그렇게 실패하고 나서 학원에서 하는 변명은 이거였다.
어휴, 보세요. 고등학교 수학이 이렇게 어려운데,
선행 안 했으면 이것보다 더 떨어졌을 거에요
그나마 선행해서 이만큼이나마 하는 거죠
하하하.
선행학습이 필수적이라는 생각에 반대하기 때문에, 나는 아이들을 가르칠 때, 선행학습을 안 하고 고등학교에 입학시켜 봤다. 여러가지 케이스가 있는데, 모든 케이스에서 아이들은 중학교 3학년 겨울방학 때 고등학교 수학 1학년 1학기 정도 공부했던 것이 끝이다. 그 결과를 간략하게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Case 01.
첫 중간고사를 봤는데 90점 이상 맞고 1등을 했다. 그런데 원래 이렇게 바로 잘 되진 않는다. 이 아이가 이럴 수 있던 이유를 분석해 봤는데, 중학교 3학년 1학기 때 심화문제집 한권을 자기 힘으로 풀려고 한동안 노력했었던 경험이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과정과 어느 정도 이어져서 그랬던 것 같다.
Case 02.
첫 중간고사를 봤는데 점수 듣고 놀라지 말라고 해서 긴장했더니 20점대였다. 이 아이는 중학교 3학년까지는 다른 학원에서 배우다가 겨울방학 때 나에게 온 학생인데, 중학교까지는 항상 100점 가까이 맞은 학생이었다. 다행히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따라와 줬는데, 1학년 말에는 70점, 80점 수준까지 올라왔고, 수학능력시험에서는 92점인가 맞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외에도 선행학습을 하지 않은 아이들의 공통점을 얘기해 보면, 일단 수학공부의 양이 많지 않아서 어떤 경우에는 학교진도 따라잡기도 어려워서 내신시험 범위도 다 못 나갈 때도 있었다. 그래서 보통 고등학교 1학년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지만, 내가 입버릇처럼 "걱정하지 마라. 이제 2학년이 되면 애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갈 테니까. 너희들은 일단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기만 하면, 수학을 잘 하게 될 거다" 라고 얘기해서 정말 포기하지 않은 애들은 거짓말처럼 후반부엔 수학공부를 많이 하지 않아도 수학을 잘 하게 되었다.
물론 저렇게 되기 위해서 나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방식에서 많은 노력을 했다. 왜냐하면 반복숙달 방식으로 이미 여러 번 풀어 본 애들과 경쟁할 때, 그 아이들과 같은 방식으로 따라잡을 수 있을까. 당연히 불가능하다. 같은 방식이라면, 더 많이 본 사람이 유리하니까. 그래서 먼저 처음에 얘기한 수학공부의 목적에 맞게 나는,
아이들의 머리를 좋게 만드는데 시간을 투자해서,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해 줬다
당연히 처음에는 수학점수가 그렇게 잘 나오지 못 하지만, 어느 정도 머리가 좋아진 후엔 새로운 수학지식을 배워도 쉽게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어서 후반으로 갈수록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은 줄어들고, 반복숙달과 선행학습으로 공부한 애들의 대다수는 이미 수포자로 가버렸기에 나중엔 꽤 잘 하는 편에 속하게 된다. 그런 식으로 자신감이 생기면, 결과는 더욱 더 좋아지는 걸 볼 수 있었다.
이것이 평범한 아이들에게 고등학교 선행학습을 시키지 않았을 때 벌어지는 결과였다. 물론 어떤 부모님들은 "아니, 우리 애한테 겨우 그 정도 시키려고 학원 보내는 줄 알아요?" 라고 말씀하실 것을 안다. 서서히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탑 클래스에 속하고 싶다는 욕망을 갖고 계신 분들. 물론 그런 아이들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아이들은 학원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경우는 유전이다.
실제로 내게 그런 말씀을 하실 법한, 혹은 실제로 했던 부모님의 아이들은 그렇게 힘들게 수학공부를 시켰어도 다 고만고만한 경우가 많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경우 일찍 성장한계를 맞이하고 아예 수학을 포기하거나 관성적으로만 수학을 공부한다.
뭐, 그때가 되면 이미 늦어버렸는데 어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