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을 잘못 공부하는 방법 07편
어쨌든, 수학에서 선행학습이 필요없다는 내 교육방침과 이론이 몇년 동안 가설 단계에 있었기 때문에, 과거에는 선행학습이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에 대해 그냥 이유도 모른 채로
아 몰랑. 실패한단 말야
라고 밖에 말할 수 없었다. 뭔가 안 좋을 수 밖에 없을 것 같긴 한데, 정확하게 이유는 모르는 그런 상황이었다. 그러나 거의 10년 가까이 아이들을 관찰해 온 지금은 어느 정도 "선행학습이 왜 실패할 수 밖에 없는지, 그것이 열심히 수학을 공부하는 아이들조차 수포자로 만드지" 를 이해하게 되었다.
지난 글에서 나는 반복숙달에 선행학습이 더해지면, 아이들이 어떤 식으로 대처하는지에 대해 얘기했다. 문제가 되는 부분은 이거다.
한번 봐서 모르면, 두번 세번 네번 반복해서 보면
당연히 더 잘하지 않겠어요?
바로 이 명제가 틀렸다. 정상적인 경우라면, 이 말이 맞는데,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말이 왜 틀리는지 이해를 못 할 것이다. 내가 만약 수학강사로서 반복숙달 방식과 개념이해 방식이라는 두 상반된 방식을 모두 경험해 보지 않았다면, 나도 몰랐을테니까. 이 부분에 대해서도 나중에 다시 한번 언급할 것이다.
수학공부를 할 때 가장 중요한 시기는 첫번째 공부할 때이다. 첫번째 단추를 어떻게 꿰느냐에 따라 이후의 방식이 달라진다. 만약 아이가 첫번째 수학개념을 접할 때, 전혀 이해를 못 하고 문제를 외워서 열심히 풀었다면, 아이가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느냐의 여부와는 관계없이 문제풀이 방법 자체는 기억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선생님이 학생에게 "적당히 잘 했다. 그리고 지금 잘 이해 못 해도 걱정하지 마. 어차피 나중에 몇번 더 할 거니까" 라고 할 것이다.
시간이 지나서 예전에 배운 것을 다 잊어버리고 두번째 볼 때가 왔다. 이때, 아이가 개념을 더 잘 이해하려고 노력할 것인가. 대답은 절대 아니올시다 이다. 그 이유는 개념을 잘 이해한다는 것이 어떠한 상태인지 그 아이는 한번도 경험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예전에 한번 들었던 개념설명이 중요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또한 선생님들조차도 이미 한번 개념을 설명했기 때문에 개념설명보다 문제풀이 위주로 넘어가기 쉽다. 뭐 설명한다해도 아이한테는 의미없다고 느낄 뿐이지만.
실제로 내가 이미 선행학습을 많이 해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다시 개념부터 설명했던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엔 그렇게 내가 멋진 개념설명을 해주면, 아이들도 바뀔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런 철없던 때가 내게도 있었다. 뭐, 결과를 말하자면, 개념을 이해하기는 커녕 애초에 개념을 이해하려고 하는 노력조차 하지 않았던 아이들을 보고 자존감에 큰 상처를 입긴 했지만. 선행학습을 통해 공부한 아이들은 두번 세번 본다고 해서 개념을 잘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문제를 잘 외우게 될 뿐이다.
반복숙달과 선행학습의 방식의 무서운 부작용은 수포자의 양성이 아니라, 무언가를 공부하면서 제대로 깨달았다는 느낌을 한번도 못 느껴봤기 때문에 자신의 학습능력이 이미 예전에 망가진 상태라는 것조차 인지하지 못 하고 그냥 무의미하게 노력한다는 것이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겉으로 보면, 아니 자기 스스로도 노력한다고 느끼지만, 실제로 두뇌에서 벌어지는 활동은 거의 없는 것에 가깝다는 말이다.
예전에 한 중학교 3학년 학생이 이런 케이스였는데, 그때 그걸 되돌리려고 벼라별 방법을 썼던 결과, 운좋게도 그 아이가 어느 날 내게 이런 말을 했다.
선생님! 이제 선생님이 고민하라고 한 말이 무슨 말인지 알 것 같아요!
그 학생이 그전까지도 노력을 많이 했던 학생이었는데, 수학에서 고민한다고 하는 것, 즉 머리를 쓴다는 것을 놀랍게도 그때 처음 느껴본 것이다. 아마 그게 그 학생이 평생 처음 느껴본 깨달음이 아니었을까. 이 학생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시 한번 언급할 기회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솔직히 말해서 반복숙달과 선행학습으로 이미 아이의 학습능력이 망가진 상태에서 되돌리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나 역시 고등학교 시절에는 무엇이 잘못 되었는지 전혀 모른 채로 살았으니까. 이것이 불가능에 가까운 이유는 아이가 수학을 공부할 때 느끼는 심리적인 반응이 습관이기 때문이다. 이해를 못 한채로 문제를 풀어낼 때의 뇌의 움직임 자체가 하나의 습관으로 너무 오랫동안 굳어지면, 수학을 공부하려고 할 때의 뇌 자체가 고민할 수 없는 상태로 바뀌어 버린다. 물론 이때는 자기가 고민할 수 없는 상태라는 것조차 인지를 못 하고, 그냥 그 상태가 평상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더 나은 방법을 찾고자 하지도 않는다.
즉, 반복숙달과 선행학습에서 말하는 "여러번 반복해서 보면 나아질 것이다" 라는 명제 자체가 틀렸다. 반복숙달 방식으로 선행학습을 미리 하면, 뇌에서 사고하지 않는 방식 자체가 습관화되어서 뇌가 더 일찍 성장을 멈출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