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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rishna Mar 08. 2021

참, 진부한 노력이로고.

열심히 노력하면 성공할 것이라는 환상


예전에 내가 즐겨봤던 일본만화 중에 <톱을 노려라, 건버스터>(이하 건버스터라고 부르겠다) 라는 만화가 있었다. 중학교 시절, 내가 이 만화를 잘 모를 때 내 친구가 이 만화는 괴수로봇물이라고 소개했었고, 나는 이 만화가 울트라맨과 비슷한 만화라고 생각했었던 것 같다. 사실 괴수가 지구를 침공하고, 주인공이 로봇을 타고 퇴치하는 것이 맞기 때문에 그 평가가 틀린 것은 아니지만, 대학교에 들어가서 이 애니를 보았을 때 나는 예전 그 친구에게, “이게 무슨 괴수로봇물이야!” 라고 마음 속으로 불평을 쏟아냈던 것 같은 추억이 있다.


그래서 건버스터 라는 만화는 사실 어떤 만화였는가 하면, 미소녀들이 노력과 근성으로 괴수들을 퇴치하는 패러디물이라고 요약할 수 있겠다. 이 만화가 왜 대단하냐하면, 전체 스토리도 패러디이긴 하지만, 제목조차도 <에이스를 노려라> 라는 테니스 만화의 패러디이며, 내용 중에서도 수없이 많은 패러디들이 존재한다. 그외에도 바스트 모핑이라던가, 바스트 모핑이라던가, 바스트 모핑이라던가... 차마 여기서는 그 기술이 무엇인지 설명할 수 없겠지만, 어렸을 때 그것에 대한 내 감상은 오오옷 이었던 것 같다.


흠흠, 여기서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바스트 모핑, 노력과 근성이라는 키워드이다. 이런 장르를 열혈근성물이라고 부르는데, 상대할 수 없는 적을 끊임없는 노력을 통하여 넘어서는 내용을 말한다. 얼마나 듣기 좋은 말인가. 열심히 노력해서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어렸을 때부터 일본만화를 즐겨봤던 나는, 당연히 이 노력과 근성으로 역경을 넘어서는 모습을 이상적인 것으로 생각했다. 공부라는 측면에서도 당연히 잘 하던 사람이 잘 하는 것보다 전교 꼴찌가 죽을만큼 노력하여 전교 1등하는 스토리가 먹히는 이유도 그런 것이 아닐까.


위와 같은 이유로 사람들은 노력을 죽을만큼 하면, 이룰 수 없는 일이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갖게 마련인데, 이것이 얼마나 아이들을 망치게 되는지 보도록 하자.




수학도 자꾸 외우다 보면, 실력이 늘어난다.


옛 서당의 모습을 떠올릴 때, 아마 "하늘천~ 따지~ 가무련~ 누르황~" 이라는 음성지원이 안 되는 경우는 드물지 않을까. 훈장님이 읽으면 아이들이 소리를 따라하는 뭐 그런 풍경 말이다.


실제로는 "하늘 천(天), 땅 지(地), 검을 현(玄), 누룰(노랗다) 황(黃)" 이겠지만, 아주 어렸을 때부터 저걸 주문처럼 외우다 보면 정말 도통한 것처럼 한순간에 깨달음이 온다는, 그런 이야기를 믿은 적이 있었다.


그 생각이 논리적인지, 아니면 신뢰할만한 소리인지는 솔직히 잘 모르겠다. 세상엔 내가 믿을 수 없는 일들이 여전히 잔뜩 일어나고 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수학공부에서도 종종 나는 이런 소리를 듣는다.


수학문제도 자꾸 풀다보면, 어느 순간에 그냥 되는 때가 있다


라고. 일단 위의 천자문을 노래로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라는 생각이 믿을 수 없다고 느낀다면, 사실 수학문제도 저렇게 풀어서 대성한다는 것이 믿겨지는가. (라이트노벨인 <던전에서 만남을 추구하면 안 되는 걸까> 를 패러디해 보았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 일어났습니다...


실제로 나는 저 믿을 수 없는 명제의 유경험자이다. 때는 고등학교 1학년 무렵... 으로 거슬러 올라가서 장장 3년간의 긴 스토리는 다른 글에서 다루기로 하자. (절찬판매중인 사이드 스토리를 읽어주세욧!! 실제로는 판매되지 않고 있지만, 분위기가 중요한 거다. )


어쨌든 3년간의 요약본.


고등학교 1학년 1학기 수학수업을 잠과 싸우느라 한번도 듣지 못 한 나는, 결국 정석을 60번 넘게 보고야 마는데!! 1학년 2학기 내내 수학시험을 말아먹고 말아먹은 끝에 고등학교 1학년 마지막 모의고사에서 기적같이 수학을 92점 맞고 전교 6등으로 회생하는데!! 과연 나는 이대로 비상할 수 있을까?! <수학을 암기로 퉁치면 안 되는 걸까> 제 2권을 기대하세요! (사실 아직 1권도 안 나왔다. 원래는 낼 생각이 없었는데, 제목을 짓고 보니 어?! 하고 글을 쓰고 싶어졌다)


너무 공부를 안 한 나머지, 제대로 이해고 뭐고 할 시간이 없어서 그냥 무조건 다 외웠다. 잊어버리면 또 풀고 또 풀고 하다보니까 나중엔 그냥 보기만 해도 풀이과정이 다 떠오를 정도로. 시험을 볼 때 문제를 보면 바로 답이 떠올라서 그냥 손만 움직이면 되었다. 그러니 시험을 잘 볼 수 밖에.


그때 나는 너무 우쭐했었다. 정말 새벽 3시까지 기숙사에서 몰래 불켜놓고 엄청나게 공부를 했던 보람이 있었다고 느꼈다. 이 정도 열심히 노력했으니 이런 결과는 당연한 거지 라는 느낌? 그리고 이제부터 내 미래가 장미빛으로 물들 것이라는 믿음이 생겨났다. 하! 하! 하!


딱, 여기까지만 보면 수학도 자꾸 풀다보면, 어느 순간에 그냥 되는 때가 온다는 믿음이 사실이다. 나도 그땐 그게 맞는 줄 알았다. 하아...




딱 거기까지이다.


<슬램덩크> 에서 북산이 최강인 산왕고교에게 이기고, 거짓말처럼 그 다음 시합에서 패한 것처럼 나 역시 그 이후로는 그러한 영광을 다시 얻지는 못 했다. 아, 비슷한 영광을 얻기는 했지만, 그건 수학이 아니라 다른 과목이었다.


나는 수학에서 더 떨어지지 않기 위해 수학을 공부하는 시간만 하루에 세시간이 넘어갔다. 그냥 우직하게, 2년 동안 꾸준히 하루도 빠짐없이 노력했다. 정석을 보고 또 보고, 잊어버리는 문제가 있으면 또 외우고. 그 누구도 내 노력의 양이 부족했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런데, 난 딱 거기까지였다. 더 오르지도 않고, 그냥 그 수준에서 점점 눈에 보이지 않는 추세로 하향세를 탔다. 내겐 그 상황을 타개할 어떤 타개책도 없이 그저 그렇게 2년이 지나갔다.


수학은 내가 가장 노력한 과목이지만, 뭐, 수학 공부하느라 다른 암기과목을 다 포기할 정도로 노력했지만, 수학은 그저 거기서 끝이었다. 그냥 내 수학적 재능이 없었던 것일까?


그런데 이게 단순히 나한테만 벌어졌던 일일까? 그저 내가 수학에 재능이 없었고, 그래서 내가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그냥 그모양이었던 것일까. 안타깝게도 아니었다.




안타깝지만, 게임오버다.


나는 수학을 가르치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아이들을 많이 봐왔다. 솔직히 말해서 저렇게 공부하다가 죽을 것 같은 애들도 봤다. 그 누구도 그 아이에게 노력이 부족하다고 감히 말할 수 없으리라.


그 아이들과 비슷한 과정을 겪어낸 내가, 그 아이들이 얼마나 노력하고 힘들어 하는지 왜 모를까. 그렇게 열심히 하니까 너는 곧 성공할 것이라고, 이제 조금 안 남았다고. 그렇게 왜 격려해 주고 싶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이제는 안다. 그 아이가 지금보다 더 열심히 한다고 해도, 뭔가 극적인 변화는 없을 것이라는 것을. 그냥 지금까지 해온 현상유지가 최선이라는 것을. 그리고 스스로도 아마 알거다.


나도 꿈과 희망을 주고 싶은데, 노력과 근성 파워로 만화주인공처럼 너도 조금만 더 고생하면 각성하거나 필살기를 익혀서 상대를 이길 수 있을 것이라 말해주고 싶은데, 그 노력의 방향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러니까 하늘로 올라가려고 노력을 해야 하는데, 땅을 파고 밑으로 가는 노력을 하고 있기 때문에 너는 결코 하늘로 올라가지 못 할 것이라는 걸 나는 이제 안다.


그냥 열심히 풀다보면, 언젠가 극적인 변화가 올 거라고? 천자문처럼 열심히 따라 읽다 보면 언젠가는 확 깨달음이 올 거라고? 김재한 저, <성운을 먹는 자>의 진주인공이신 귀혁 사부님의 말씀을 요약하자면, 이렇다.


끊임없이 노력한다고 다 고수가 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식으로 노력할지도 끊임없이 고민해야 한다고. 창의적인 노력이 없다면 정체될 뿐이다.


즉, 의자에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는 시간을 갖고 나는 노력했다고 최선을 다했다고 말한다면, 해주고 싶은 말은 딱 하나다.


참, 진부한 노력이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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