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우울증 또는 정신질환이 있다.
"It is far more important to know what person the disease has than what disease the person has"
환자가 어떤 병을 가지고 있는지 아는 것보다, 그가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이 더 중요하다
히포크라테스 (B.C, 460~377)
자살시도자를 만나다 보면, 이들이 우울증 또는 다른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쉽게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자살시도자가 당연히 정신질환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는 나의 편견은, 내담자 중심의 상담을 방해하곤 했지요.
자살로 사망하는 사람들의 90퍼센트가 우울증 또는 정신질환을 앓았다는 연구자료가 종종 발표되지만, 이런 통계치가 지나친 추정으로 산정된 것일 수도 있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사실 일각에서는 자살 연구에서 소위 확립된 진실로 인식되는 이 속설의 정당성에 의문을 제기해왔다...정실질환은 자살의 전제 조건도, 충분한 원인도 되지 않는다.
로리 오코너,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3장 자살에 대한 속설과 오해, 77-78p
이러한 편견은 자살시도자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절박함과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지에 관심을 두지 못하게 합니다. 도리어 이들이 정신질환 이력이 있는지, 지금 치료는 받고 있는지, 약물관리는 되고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게 하지요. 이런 시각은 자살시도자를 사람 중심이 아니라 질병 중심으로 대하게 합니다. 그리고 이들의 마음을 닫게 하는 경우도 있지요.
그래서 자살시도자를 만날 때마다 "정신질환이 있을까? 치료는 받고 계실까?" 하는 생각보다 "어떤 어려움이 있으셨을까, 어떤 도움이 필요하실까"라고 먼저 생각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노력하곤 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태도는 자살시도자를 사람 중심으로 대할 수 있게 도와주었고, 내담자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상담에 임하는 모습을 보곤 했습니다.
자살을 이해하는 가장 좋은 통로는 뇌 구조 연구나 사회적 통계 연구, 정신질환 연구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의 감정을 평범한 말로, 자살하려는 사람의 말로 직접 서술한 것을 연구하는 것이다. 자살할 가능성이 있는 사람에게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질문은 가족력에 대한 탐문이 아니라, '어디가 아픈가요?' 그리고 '어떻게 도와드릴 수 있을까요?'라고 묻는 것이다.
에드윈 슈나이드먼, 『자살하려는 마음』, 서청희, 안병은 옮김, 2019, 한울
"우울증 때문에 자살시도를 했다."라고 쉽게 생각해 버리는 태도는 자살시도자의 개별적인 삶의 맥락과 환경에 귀를 닫게 합니다. 그래서 자살시도자를 대할 때 이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고, 어떤 고통을 호소하는지, 그리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에 우리는 먼저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기에 주위에 자살시도를 했거나 자살에 대해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이 어떤 고통을 느끼고 있는지,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고 어떤 도움을 필요로 하는지에 관심을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저는 자살시도자와 정신질환은 유의미한 상관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자살시도자에게 필요한 우선적인 질문은, 정신질환이 있는지보다 어디가 아프신지 그리고 어떤 도움을 필요하시는지 묻는 일이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자살시도자의 개별적인 삶의 맥락에 우선적으로 관심을 둘 때, 이들이 조금 더 편안하게 자신의 이야기를 나눌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