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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설 Nov 21. 2023

자살에 대한 오해(4)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은 분명히 죽기를 원한다

휘몰아치는 자살사고에서 벗어난 자살시도자를 만나면, 종종 놀라는 순간이 있습니다. 그 순간만큼은 정말 죽고 싶었다고, 이 고통을 끝내고 싶었다고, 지금은 정말로 살고 싶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같은 선택을 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이처럼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들은 삶과 죽음에 대해 양가적인 감정을 느낍니다. 그리고 양가감정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사고방식의 핵심이지요.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의 혼란스러운 사고는 각기 다르게 나타납니다. 어떤 이들은 하루에도 수차례 죽음에 대한 생각에 휩사여있다 돌연 삶에 대한 의지를 느끼기도 하고, 어떤 이들은 수주에서 수개월에 걸치기까지 자살충동과 삶에 대한 욕구가 번갈아 나타나곤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의 양가감정을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을 쉽게 반드시 죽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고 꼬리표를 붙인다면, 이들이 가지고 있는(비록 작을지도 모르지만) 삶에 대한 의지를 알아채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양가감정은 자살하려는 사람이 가지는 사고방식의 핵심이다. 자살하려는 사람들은 일정 시간을 두고 살고 싶다는 생각과 죽고 싶다는 생각을 반복적으로 한다. 

로리 오코너,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3장 자살에 대한 속설과 오해, 81p


사람은 양가적인 존재입니다. 오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원망하기도 합니다. 어제는 그 사람이 죽일 듯이 밉더라도 오늘은 그 사람이 사랑스러워 보일 때도 있지요. 어제의 적이 오늘의 아군이 되는 일은 우리의 일터에서는 새삼스럽지 않게 벌어지는 일입니다. 물론 그 반대도 성립하지요.


양가적이라는 것은 혼란스럽다는 사실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뇌는 혼란스러운 것을 그리 선호하지 않습니다. 직관적인 해답을 선호하고, 이미 형성해 놓은 시냅스의 흐름대로 사고하는 것을 좋아하지요. 그래서 고민하고 질문하는 일을 멈추면 흑백논리에 빠지기 쉽습니다. 옳고 그른 것만 남고 회색지대에는 눈을 감게 되는 것이지요.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은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내고 있는 이들입니다. 우리 사회가 자살을 이야기하는 것을 회피하는 이유 중 하나는 어쩌면 자살이라는 주제는 우리를 혼란스럽게 하고 대답하기 어려운, 어쩌면 대답할 수 없는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자살 위험이 있는 이들은 반드시 죽고 싶어 한다'는 생각을 내려놓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이는 일이고 용기가 필요한 일이지요.


종종 나의 혼란스러움도 못 받아들이는 내가 타인의 혼란을 받아들일 수 있는냐는 의문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방향을 잃어 갈피를 잡지 못하는 일은 흔하고, 자기혐오는 자살 위험이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내게도 있다는 사실을 애써 무시하기도 합니다.


저는 자살시도자를 만나며 혼란스러움을 받아들이는 공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쉽게 답을 내리고 타인에게 꼬리표를 붙이고자 하는 내 모습을 돌아볼 기회를 얻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노력이 내게 작게나마 타인을 수용할 수 있는 마음의 여지를 남기는 일을 도왔던 것 같습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은 나아질 수 있고 또 실제로 나아질 것이다. 하지만 그가 필요한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당신의 손길을 내미는 것이 중요하다.

로리 오코너, 『마지막 끈을 놓기 전에 』, 3장 자살에 대한 속설과 오해, 84p


주위에 자살에 대한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이들에게 손길을 내미는 일을 망설이지 않기를 바랍니다. 혹은 직접적으로 이들을 돕지는 못하더라도 자살에 관한 부정적인 의견들이 쏟아지는 순간에 이들에 대한 작은 연민을 가져주시기를 권합니다. 어쩌면 그 일은 이들의 혼란스러움에 참여하는 일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동시에 우리의 존재가, 우리의 작은 위로가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음을 경험하는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들이 우리를 조금 더 나은 곳으로 이끌 수 있다고 조심스레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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