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문학동네 어린이문학상 수상작 소설 『긴긴밤』 을 읽고
노쿠와 치쿠는 살기 위해 걸어야 했다. 둘은 먹을 것을 찾아 걸어야 했고, 잠자리를 찾아 걸어야 했으며, 무엇보다 끔찍한 기억에서 벗어나기 위해 걸어야 했다.
루리, 『긴긴밤』, 문학동네, 61p
어른이 되어가며 우리는 상실에 대처하는 방법을 익히게 됩니다. 슬픔을 잊기 위해 무언가에 몰두하기도 하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다른 사람들 앞에서 '척'하는 법을 배우곤 하지요. 이처럼 상실은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 마음에 부정적인 개념으로 자리 잡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실을 '극복' 하는 법에 초점을 맞추곤 하지요.
'긴긴밤'은 어린이문학입니다. 아마 따뜻한 소재들도 많이 있었겠지만 작가는 대담하게 '상실'이라는 주제를 선택합니다. 치쿠는 웜보를 잃고, 노든은 치쿠를 잃고, 코뿔소를 닮은 용감한 펭귄 '나'는 노든을 잃습니다.
"그럼 나 그냥 코뿔소로 살게요. 노든이 세상에 마지막 하나 남은 휜바위코뿔소니깐 내가 같이 휜바위코뿔소가 되어주면 되잖아요" , 115p
상실은 우리 삶에 필연적이고 통제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저와 같은 어른들이 상실은 극복하고 이겨내야 한다고 가르쳐와도, 우리는 상실을 근본적으로 이겨낼 수 없습니다. 아무리 상실을 부정하기 위해 노력해도, 유한한 존재인 우리에게 상실은 우리 옆에 항상 실재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책은 상실에 대처하는 법이 아니라 상실과 함께하는 방법을 일러줍니다. 어쩌면 작가는 어린이들에게 우리는 상실과 함께해야 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알려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른들이 만든 상실은 부정적이라는 개념에 저항하면서 말이죠.
노든은 목소리만으로 치쿠가 배가 고픈지 아닌지를 알 수 있게 되었고 발소리만으로 치쿠가 더 빨리 걷고 싶어 하는지 쉬고 싶어 하는지를 알 수 있게 되었다. 그러니 '우리'라고 불리는 것이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 63p
그래서 작가는 우리가 상실과 함께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부드럽게 들려주고 보여줍니다. 내겐 '당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항상 우리 옆에 있고 우리의 가슴을 아리게 만드는 '상실'과 함께한다는 것의 의미를 어렴풋하게 깨닫게 되지요.
하지만 그 일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내가 스스로 통제할 수 있는 영역을 선호하고, 내 삶의 문제는 나의 힘으로 해결 할 수 있다고 믿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상실과 함께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는 순간(힘겨운 일이지만) '우리'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요.
어쩌면 언젠가, 다시 노든을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내 냄새, 말투, 걸음걸이만으로 노든은 나를 알아보고 내게 다가와 줄 것이다. 코뿔소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다른 펭귄들은 무서워서 도망가겠지만, 나는 노든을 알아볼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코와 부리를 맞대고 다시 인사할 것이다. , 125p
상실이 실재하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내게 '당신'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아마도 우리는 서로를 알아볼 수 있을 거예요. 사랑받기 위해 포장하고 전시해 놓은 모습이 아니라, 깨어지고 부서진 취약한 그 모습 그대로, 서로 "코와 부리를 맞대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