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과 트라우마
12·3 비상계엄 직후, 아버지와 아들의 통화에 대한 보도를 봤다. 아들은 장교였고, 아버지는 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다급하게 전화를 걸었다. 그리고 눈물을 참으며 아들에게 말했다. ‘무엇보다 네 목숨을 지켜라, 그리고 절대로 민간인에게 폭력을 행사하지 말라.’ 나의 부모님도 계엄 직후 내게 전화를 걸어 두려운 목소리로 안전하게 있으라고 말씀하셨다. 이들의 공통점이 있다면, 아마 계엄과 군부독재를 경험했던 이들이라는 점이다. 이들은 그 시대의 서늘함을 알고 있다.
‘트라우마’는 실제적이나 위협적인 죽음. 심각한 질병, 또는 자신과 타인의 신체적 위협이 되는 사건을 경험 또는 목격한 후 겪은 심리적 외상을 의미한다. 아마 이번 계엄은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심리적 트라우마를 자극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계엄 선포 이후 10분도 채 지나지 않아 두려움에 휩싸여 자녀의 안부를 걱정했다. 그리고 나는 무엇보다, 목소리 너머의 그 세대를 살았던 이들의 두려움과 비탄이 느껴져서 마음이 아팠다.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은, 언어를 관장하는 뇌의 영역인 ‘브로카 영역’에 혈액 공급이 줄어든다. 말 그대로 뇌가 '얼어붙게' 돼 언어 기능이 크게 감소한다. 이로 인해 심리적 외상을 경험한 사람들은 실어증을 경험하거나 주위와 소통을 어려워하기도 한다. 그래서 트라우마 회복의 중요한 부분은, 브로카 영역을 다시금 활성화시키는 일이다. 트라우마 경험에 대해 감정을 담아 충분히 '이야기' 할 수 있는 환경이 중요하며 트라우마 경험을 스스로 재구성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그래서 조심스럽지만, 계엄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감정을 이야기하는 일이, 그리고 그럴 수 있도록 편안한 환경을 조성하는 일이, 나는 사회적으로 건강한 방향이라고 생각한다. 이야기하지 않으면(못하면) 우리의 뇌는(마음은) 얼어붙기 때문에, 또다시 해결되지 못한 트라우마로 남을 수 있기에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