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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iyouvely May 27. 2021

지워지지 않는 그날의 기억

예고 없이 찾아오는 것


점심도 먹지 못할 정도로 쏟아지는 업무량, 사수로서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깊은 한숨이 반자동으로 나오는 예민함이 곤두서 있던 날이었다. 언제부턴가 목소리나 짧은 글로도 그 사람의 성격을 간파할 수 있는 능력을 생겼다. 협조 요청 내용을 살펴보니 성격이 급하고 대우를 받기 원하는 성격을 예상하며 수화기를 들었다. "안녕하세요. 담당자 000입니다. 문의하신 부분으로 연락드렸습니다. 잠시 통화 괜찮으실까요? "라며 응대를 시작했다. 다행히 심사해드릴 수 있는 부분으로 원하는 답변을 드릴 수 있었다. 서류 안내를 마치고 통화를 끊으면 되는 순간이었다. 놀라울 정도로 "내가 이번에 해외여행을 갔는데 가이드가 너무 불친절해서 여행을 망쳤잖아" 끊을 틈을 주지 않는 상황에 처음에는 "속상하셨겠어요"라며 대답을 해드리다 보니 통화는 길어졌고 업무 마비가 되어버렸다. 30분가량 듣다 안 되겠단 판단하에. '고객님, 심사 관련해서 궁금한 부분은 더 없으실까요? 필요한 서류는 문자로 한번 더 발송드리겠습니다.' 라며 통화를 종료했다.





정확히 오 분 뒤 남편분께서 소리를 고래고래 지르며 네가 뭔데 내 아내의 말을 끊냐며 살면서 들을 욕을 실컷 한 시간 가량 듣게 되었다. 사과를 드려도 되려 욕과 폭언만 돌아오는 대답에 연신 죄송하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었다. 애초부터 사과할 일을 만들지 말았어야 하지 않냐며 원점으로 돌아올 뿐이었다. 분이 풀리지 않는다며 나를 포함한 부장님, 팀장님이 본인과 아내분 앞에서 무릎 꿇고 사과를 하라는 통보를 받았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팀장님께 무릎까지 꿇을 일인지 모르겠다며 여쭤봤지만 돌아오는 답은 네가 말을 끊은 건 사실이지 않냐는 말뿐이었다. 남의 돈 벌기가 이렇게 어려운 거구나 다시 체감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억울하지만 사과의 방식 중 무릎을 꿇는 제스처가 추가됐을 뿐이라며 주문을 외우며 그분 집 벨을 눌렀다.



두 분께 무릎 꿇고 죄송하다며 사과를 드렸다. 남편분은 듣도 보도 못한 욕들과 함께 폭언을 내뱉었다. 죄송하다며 고개 숙이며 가만히 있자 " 내가 딸만 셋이고 막내딸이 너랑 동갑인데 넌 어디서 어른 말을 끊는 걸 배웠니 부모도 없나 보네, 있더라도 네가 하는 행동을 보니 부모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일지 보인다." 폭언을 끝날 줄 몰랐다. 다른 말들은 괜찮았지만 부족함 없이 키우려고 고생한 부모님 모습이 그려지면서 우리 집에서는 귀한 집 딸인데 이 사실을 아시면 얼마나 속상할까란 생각이 들었다. 눈물을 흘리면 저 말에 동의하는 거야 한 귀로 듣고 흘려야 돼라며 떨어지려는 눈물을 참아냈다. 한 시간 반쯤 지나 남편분을 제지해주신 덕분에 집을 탈출할 수 있었다. 긴 하루를 보내고 퇴근하고 집으로 향하는 길에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끝없이 흘렀다. 집 앞에서 거울에 비친 몰골은 토끼눈을 한 아이가 보였다. 눈이 왜 이렇게 빨갛냐는 걱정스러운 어머니의 질문에 렌즈가 뒤짚혀서 그런가 봐요라며 능청스럽게 상황을 모면했다. 이내 피곤하다며 남몰래 이불속에서 눈물을 훔치며 겨우 잠이 들었다.


시련을 통해 성장한다.



다시 생각해도 괜찮아 지난 일이야 라고 하기엔 분하다는 감정이 깊숙이 박혔었다. 입 밖으로 꺼내려고 하면 눈물이 앞을 가려서 이렇게 참다간 마음의 병이 되어 버릴 것 같아 심리학 관련 서적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 러다 발견한 슈와르츠 논단 중 우연히 불행은 '별난 행복'일 수도 있다. 모든 나쁜 일은 우리가 그것을 나쁘다고 생각하는 경우에만 진짜 나쁜 일 이 된다였다.  힘들어하는 후배에게 말없이 어깨를 내어줄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 선배로 성장할 수 있던 계기로 작용했고 결과적으로 나쁜 일이 아니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별난 행복이라 붙일 수 있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 번째는 선한 영향력을 전파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목표가 생겼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효녀가 되기로 다짐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가시 돋친 말로 상처 받은 분들에게도 새살이 돋아 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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