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방송통신대학교 통계데이터학과 학사편입 첫 학기 후기
8년 동안 여러 회사를 다녔고, 직무를 몇 번 바꿨다. 한 가지를 꾸준히 해왔던 것이 아니기에, 적응력 좋다는 말은 듣는 편이었지만 체계적인 전문성과는 거리가 멀었다. (회계, 재무로 커리어를 시작해서 현재는 데이터분석을 하고 있다.)
여전히 부족함을 느낌에도 불구하고, 언제부턴가 회사에서 나를 가르쳐주는 사람들은 점점 적어지기 시작했다. 오히려 연차가 쌓이면서 내가 누군가를 코칭해줘야 하는 입장이 됐다. 전반적으로 넓고 얕게 해 왔던 사람이라 다른 사람을 이끈다는 것이 조금 부담으로 느껴지던 때쯤, 이런 생각이 들었다. '40이 되기 전에 제대로 무언가를 배워야겠다.'
당장 이직을 염두에 둔 상태가 아니기 때문에, 그리고 궁극적 목적은 지금 하고 있는 일을 더 잘하기 위함이기 때문에 시간적 부담이 크지 않기를 바랐다. 공부를 한다고 해서 근무시간에 대한 영향은 없어야만 했고, 온전히 여가시간만 줄어야 했다. 대학원이라는 선택지를 아예 없앤 이유다.
23년 8월에 학사편입을 하고, 이제 막 한 학기를 마쳤다.
좋았던 점은 역시나 자율성이다. 이 커리큘럼을 얼마나 여유 있게 / 빡세게 거쳐갈 것인지 조율할 수 있고, 등록금도 저렴하기에 장기간 학교를 다닌다 해서 부담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번엔 첫 학기이기도 하고, 일이 바쁠 듯해서 세 과목만 수강신청했다. 애초에 4학기를 3~4년에 걸쳐 졸업할 생각이다.
또한 한 학문의 대학 커리큘럼을 맛볼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1~4학년 과목에 걸쳐 통계학 개론부터 R과 파이썬 실무, 추후에는 회귀분석과 베이즈통계까지 과목 편성이 되어있는 것을 보면, 단기간 실무위주 강의보다 더 체계적으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이번에 수강했던 과목들 중 '데이터 분석이 의미 있고, 성공적이려면 어떻게 진행이 되어야 하는지'와 같은 개념들은 그간 일을 하면서도 답답했던 부분이라 흥미롭게 배울 수 있었다. 물론, 일하는데 아무 상관이 없을 것 같은 사람 이름이라던가, 데이터의 세 가지 요소... 같은 것들을 외우는 일은 조금 등한시된다.
아쉬운 점은 교재의 퀄리티다. 강의의 분량대비 교재는 얇은 편인데, 한 과목의 모든 내용을 너무 요약하고 압축해서 담은 느낌이다. 때문에 교재를 보고 이해가 안 되는 개념들은 ChatGPT로 찾아봐야만 했고, 책과 PC를 계속 오가며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사실 이 점은 과거와 많이 달라진 학습방법인데, 덕분에 강의나 교재의 설명이 조금 부족하더라도 나 스스로 해당 학문의 개념을 찾고 이해하는 데에는 큰 무리가 없어서, 추후에는 교재 퀄리티가 큰 단점으로 와닿지는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실무와의 거리가 있는 것 또한 아쉬운 점이다. 대부분이 파이썬을 사용하고 있는 가운데, 여전히 R을 위주로 강의가 편성되어 있다. 일 할 때 잘 쓰지 않을 것 같은 기능들/개념들은 배우기 꺼려지는 것도 있었다. 이번에 수강한 [파이썬과 R] 같은 경우, 중간과제가 문제풀이로만 제출되었고 실제 데이터 분석까지 연계되지는 못했다.
소감을 요약하자면, 업무와 연관된 잔잔바리 자격증 시험을 주기적으로 보는 기분이다. 온 힘을 다할 정도는 아닌 부담감이고, 그렇다고 내 일에 도움이 안 되는 지식들도 아니다. 이제 겨우 한 학기 경험해 본 것이긴 하지만, 일단 최초에 고려했던 세 가지 항목(인맥보단 지식 / 공부보단 일 / 실무보단 이론)들은 충족이 됐다. 몇 년 후 쌍 학사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