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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새 Oct 18. 2020

고군분투

오랜만에 브런치

옆에서 보는 사람의 입장으로는 '뭘 그렇게까지...' 하는 마음이 들 정도다.  이런 내 태도도 마뜩찮고 어쩌다 아는 척하며 '네가 많이 힘들겠구나'로 시작되는 어설픈 공감도 다 짜증이 난단다. 겨우 학교에서 보고 있는 중간고사 하나에 홀로, 외로이 분투 중인 아드님 되시겠다.

작은 일도 성실하다며 그 장점을 보아주고 싶으나 날카롭기 그지없고 허약하기 말할 수 없는 아이의 정신 자세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지난주 수요일부터 시작된 아들의 시험은 이미 첫날 아들에게 깊은 좌절을 느끼게 했나보다. 지난 주말에 첫날 시험이 영어라서 그나마 시작은 어렵지 않을 것이라 괜찮다며 가벼운 마음으로 캠핑도 따라 나섰던 터다. 녀석이 간과한 것은 영어시험을 한국의 고등학교에서 본다는 사실이었다. 미리 말해줄까 하다가 시험에 대해 미리 이런저런 말을 해준 들 경험하는 것은 어차피 해야할 것들이라 두었다. 하긴 간과라고 할 수도 없다. 그것이 무엇이었든 내가 사랑하는 내 나라에서의 모든 것이 이 아이에게는 다 낯설고 처음이며 심지어 마음도 열리지 않은 상태라 깊은 심리적 거부감을 스스로 안고 스스로 극복하고 있는 이상한 형국이기는 하다. 

'거부를 하려면 아예 하고, 극복을 하려면 먼저 자기가 둘둘 두르고 있는 거부감을 다스릴 일이지...'

아이가 좀 차곰한 성격이라 그런지, 나 역시 아이에게 차가워져 온 것도 사실이다. 안스러운 마음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네가 타고난 성향과 자라온 환경이 버무려져 현재의 너로서는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이렇게 멀찍이 서서 바라볼 수 밖에 없다. 성격이나 성향을 떠나, 내가 아이를 위해 뭔가 할 수 있다하더라도 아이의 마음과 결정에 뭘 어쩔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아이를 내 마음대로, 내 마음에 맞게 어쩔 수 있겠다는 생각이 얼마나 오만한 것인지, 그거 하나는 확실하니깐. 어쨌든 본인이 의도했건 안했건 극복하기로 했고, 거부하기로도 동시에 한 것이다.

첫날 영어시험에서 독해한 내용을 한국어 15자 이내로 요약해 쓰라는 큰 비중의 서술형 시험을 어이없게 놓쳤다고 했다. 15자를 영어식으로 15words로 받아들인 아들은 속으로 '어라? 15워드로 하는 정도면 요약은 아닌 것 같은데...'하는 찜찜함을 안고 되지도 않는 한국어로 맞춤법을 틀리지 않기 위해 시간과 공을 들여 그 문제 답을 완성한 것이었다. 그리고 시험장을 나와, 학교에서 다른 아이들의 수업과 그 태도 걱정에 여념이 없는 에미에게 바로 내용을 확인하는 메세지를 보냈다. 맥락없는 아들의 메세지는 이러했다.

'15글자로 쓰라는데, 글자가 뭐야?'

수업이 끝나고 20여분 뒤에 확인한 메세지를 보자마자 나는 바로 이것이다 생각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예상한 범위에 이런 디테일은 나 역시 또 놓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니 아들은 전혀 의식할 수 없는 시험 문제의 문제였던 것이다. 

'한국어에서 글자수는 진짜 딱 한글자 한글자를 말하는 거야.'

물론 답은 없었다. 퇴근하면서 아들에게 묻자 그때부터 영어 시험은 영어 실력이나 영어 시간에 공부한 바를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한국식 영어 교육에 대한 비판과 비난이 이어졌다. 온통 스투핏하단다. 

"이 새끼야, 그 교육 방식의 역사와 전통이 얼마나 깊은데 그걸 니가 바꿔? 내가 바꾸리?"

내 스타일의 시크하면서도 적당한 포기와 나름의 유머를 섞었다고 생각한 대꾸에 아들은 핵폭탄급 폭발을 하고 만 것이다. 그 뒤의 아들의 휘황찬란한 대사들은 생략하기로 한다..... 쩝!


밥을 안 (처)먹은 것은 너무 자연스럽다. 신경이 올올이 선 채로 이놈의 학교를 계속 다녀야하냐는 근본적인 위기의 질문 앞에서 느긋이 위장의 활동을 용서할 수 없는 아들은 저녁을 걸렸다. 아들이 힘차게 닫고 들어간 문을 보면서 '그래도 한번 먹어봐~'를 두어번 외쳐 주다가, 사가지고 온 떡볶이와 만두, 꼬마김밥에 감탄하는 유진이와 3인분을 2이서 다 해치웠다. 어떤 경우에도 잘 먹어지는 나와 유진이의 너그러운 위장에 감사하면서.

아들은 어제도 월요일에 있을 과학시험을 준비한다고 종일 EBS 선생님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끙끙거리고 있다. 영어시험 다음날의 국어 시험도, 엊그제의 수학 시험도 묻지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도 시험에 대해서는 서로 말하지 않기로 했다. 금요일 저녁에 술에 떡이 되어 인간이 아니므니다 상태로 귀가한 남편이 토요일 아침 식탁에서 퉁퉁 부은 얼굴로 물었다.

"참, 너 시험 본다며?"

내가 얼른 먼저 대답했다. 

"보는 중이지."

"어떻게, 잘 되든?"

세상에나 대폭발을 부를 수 있는 위험한 질문을 아무렇지도 않게 누룽지탕을 후루룩 먹으며 묻는다.

아들이 그래도 한번은 참는다. 내 앞에서보다는 아빠 앞에서 그래도 한번은 참는 편이다.

"그 이야기는 안 했으면 좋겠는데."

"뭐라구?"


아들의 대답이 당연히 도발적이었겠지. 그 정도면 내 입장에서는 아들의 인내가 보이지만, 그 에비는 자신을 똑 닮은, 신경이 날카로운 아들을 오히려 잘 모른다. 

내가 재빨리 대변인 모드로 끼었다. 

"고군분투 중인 거 뻔하잖아요. 아들, 지난주 영어 시험 이후 엄마는 네가 어느 정도 마음을 접을 줄 알았는데, 그래도 한다는 점에서 인정하기로 했어. 짜증스러운 상황에서 신경질이 얼마나 날텐데 이보다 더 잘 참아내기는 어렵겠다 싶을 정도야. 더할 나위없이 하고 있다고, 엄마 인정.  그까짓 점수 따위보다 네가 하루하루 사는 모양으로 그냥 괜찮다고 생각하는 중이야."

"점수가 그까짓은 아냐."

아들이 내 대사 중에 잘못된 부분을 콕 짚어 빨간펜을 그어주었다. 그러면서도 눈 자위가 벌게지면서 자신의 고군분투를 알아준 것에 마음이 좀 눅어지는 모양이다. 지난 영어 시험 뒤에도 알아줬던 그 고군분투인데, 어제 아침엔 말이 좀 통했던 것이 영어 시험에 대한 자신의 자부와 실패의 격차가 어지간했던 시기를 좀 지나면서 마음의 폭풍이 한잠은 내린 상태인가 보다.

남편은 자신의 말을 톡 채어내서 아들에게 사방 괜찮다고만 하는 내 말이 영 마음에 들지 않는 눈치였지만, 자신이 없는 주중의 우리 삶에 주말 아침이라고 끼어들기도 조심스러운 듯, 아들 눈치를 한번 쓱 보고 말을 삼켰다.

남편은 어려운 시간들을 함께 넘어가는 '우리'가 되어본 적이 없었는데, 아이들과의 관계에서도 '우리'가 아닌 선생이고만 싶어했다. 특히, '우리'들에게 오는 그 어떤 고난의 시간도 그가 언젠가 겪었던 고난보다 덜하기 때문에 고통의 정도를 인정받기 힘들다. 외로움을 덜 타는 편이기도 하고 자신의 외로움을 알기엔 아직 젊다. 그것도 다행이다. 

아들의 고통을 내가 겪어줄 수도 없고 녀석이 성질에 넘쳐 나에게 패악질을 해대도 부지불식간의 일인지라 현명한 대처도 어려운 것은 사실이다. 나 역시 쉽지 않다. 그래도 그냥 가만히 '우리'일 수 있어 다행이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아이들에게 들이닥치는 폭풍 속에서 각각이 잡고 버티는 무언가는 있겠다는 믿음으로 그 안에 함께 있어서 그걸로 되었다. 이 폭풍은 나에게도 버텨내야 할 무엇이다. 한 계절 자주 올라오는 그것이다. 오늘 한번 겪었다고 다시 오지 않는다는 약속은 없는 폭풍이다. 그 폭풍이 다시는 올라오지 않기를 바라는 에미 마음이 아니라, 그 속에서 그렇게 저렇게 마구 휩쓸리지만은 않고 살아가도록 흔들리더라도 자기 중심을 잡을 줄 아는 힘이 붙는 쪽으로, 자라나고 있는 아이들은 오늘도 자라는 것으로 잘하고 있는 것으로 믿어 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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