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살이처럼내일 없이사는 인생의 새벽갬성
아직 사위는 캄캄하다. 밤이 깊어갈 때의 어둠과 새벽의 어둠은 빛깔이 다르다. 나는 새벽의 이 어둠과 빛을 좋아한다. 못생기고 크기만 한 건물들에 밤새 켜놓은 휘황한 불빛들이 내 사랑을 적잖이 방해하는 듯해도, 사랑하기에 지그시 바라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사랑에는 장애가 없음을 알게 된다.
알람 없이 저절로 깨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이제는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 절로 눈이 떠진다. 좀 늦게 자도 이 시간에 깨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자면서도 몸이 스스로 아픔을 느끼는 통에 깨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덕분에 깨면 좋긴 하지만 건강하게 벌떡, 개운하게 일어나고 싶다.
조금 더 일찍 깨니 마음이 동당거리지 않고 멍하게 한참 앉아 있을 수 있어 더 좋다. 글을 좀 끄적이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도 하고 조용히 책을 읽어볼 마음도 든다. 새벽이 주는 마음이다. 게다가 에너지를 긁어모아 쓰다 보니 조금씩 더 덤으로 얹어주고 있는지 조금 일찍 졸린 것 말고는 몸이 적응한 듯하다. 덕분에 어젯밤 설거지와 빨래는 새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오롯이 내 시간인 듯 뿌듯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뿌듯하고 아무것도 없어도 든든한 새벽이 참 좋다.
잠에서 깨어나는 만물들과 함께 일어나 같은 시간을 앉아 있어 좋다. 작게 속삭이는 소란들이 일렁일렁하다가 점점 활기로 변해가는 세상의 소리가 새벽에는 다 들리는 듯하다. 20살 여름에 찾아갔던 선운사의 느낌이다. 가람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아래 민박집에서 듣고 일어나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캄캄한 새벽길을 걸어올라 간 그날 아침의 선선한 공기가 아직 내 폐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나 보다.
엄마가 아는 어린 시절의 나는 말수가 적고 행동은 느려 엄마 속을 터트리는데, 어느새 할 건 다 해놓고 조용히 엉뚱한 행동까지 더하기 일쑤인 아이였다. 요즘은 엄마가 기억하는 그 모습이 내 본성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안 붙어 있고 노상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동네 애들 노는데 가보면 내가 없더란다. 한참 찾다 보면 야산이나 공사장 구석같이 위험하고 으슥한 곳에서 혼자 놀고 있더란다. 행동은 느려 터진데 하기로 한 것은 정한 시간 안에 슥 해놓고는 아주 엉뚱한 짓을 하고 앉아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단다. 퇴근길에 엄마랑 전화를 하다가 들은 이야기 때문에 운전하면서 빵 터졌다. 듣다 보니, 요즘 내 학교 생활이 딱 그렇다.
내 인생의 새벽 같은 그 시절에 나의 하루살이 같은 인생은 이미 결정이 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내가 뭐를 하며 누구랑 어떻게 살 지, 나도 몰랐고 나를 늘 사랑으로 지그시 바라보던 엄마도 몰랐다. 그러나 사실은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 줄을.
새벽 시간에 뭐라도 쓰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오늘은 이미 결정이 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하루로. 그것이 뭐든 간에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엉뚱하고 혼자 재미있는 일이 분명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