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놀새 Mar 18. 2021

새벽이 결정한 하루

하루살이처럼내일 없이사는 인생의 새벽갬성

아직 사위는 캄캄하다. 밤이 깊어갈 때의 어둠과 새벽의 어둠은 빛깔이 다르다. 나는 새벽의 이 어둠과 빛을 좋아한다. 못생기고 크기만 한 건물들에 밤새 켜놓은 휘황한 불빛들이 내 사랑을 적잖이 방해하는 듯해도, 사랑하기에 지그시 바라볼 수 있고 그러다 보면 사랑에는 장애가 없음을 알게 된다. 



알람 없이 저절로 깨는 시간이 점점 빨라진다. 이제는 새벽 4시 30분에서 5시 사이 절로 눈이 떠진다. 좀 늦게 자도 이 시간에 깨어지는 것은 반가운 일이나 자면서도 몸이 스스로 아픔을 느끼는 통에 깨는 것 같아 조금 아쉽다. 덕분에 깨면 좋긴 하지만 건강하게 벌떡, 개운하게 일어나고 싶다. 


조금 더 일찍 깨니 마음이 동당거리지 않고 멍하게 한참 앉아 있을 수 있어 더 좋다. 글을 좀 끄적이고 싶다는 마음이 일기도 하고 조용히 책을 읽어볼 마음도 든다. 새벽이 주는 마음이다. 게다가 에너지를 긁어모아 쓰다 보니 조금씩 더 덤으로 얹어주고 있는지 조금 일찍 졸린 것 말고는 몸이 적응한 듯하다. 덕분에 어젯밤 설거지와 빨래는 새벽으로 넘어오지 않았다. 오롯이 내 시간인 듯 뿌듯하다. 아무것도 안 해도 뿌듯하고 아무것도 없어도 든든한 새벽이 참 좋다. 


잠에서 깨어나는 만물들과 함께 일어나 같은 시간을 앉아 있어 좋다. 작게 속삭이는 소란들이 일렁일렁하다가 점점 활기로 변해가는 세상의 소리가 새벽에는 다 들리는 듯하다. 20살 여름에 찾아갔던 선운사의 느낌이다. 가람에서 터져 나오는 소리를 아래 민박집에서 듣고 일어나 주섬주섬 몸을 일으켜 캄캄한 새벽길을 걸어올라 간 그날 아침의 선선한 공기가 아직 내 폐 속에 강렬하게 남아있나 보다.    



엄마가 아는 어린 시절의 나는 말수가 적고 행동은 느려 엄마 속을 터트리는데, 어느새 할 건 다 해놓고 조용히 엉뚱한 행동까지 더하기 일쑤인 아이였다. 요즘은 엄마가 기억하는 그 모습이 내 본성에 가까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집에 안 붙어 있고 노상 나가는 걸 좋아하는데 동네 애들 노는데 가보면 내가 없더란다. 한참 찾다 보면 야산이나 공사장 구석같이 위험하고 으슥한 곳에서 혼자 놀고 있더란다. 행동은 느려 터진데 하기로 한 것은 정한 시간 안에 슥 해놓고는 아주 엉뚱한 짓을 하고 앉아 있어서 깜짝깜짝 놀라곤 했단다. 퇴근길에 엄마랑 전화를 하다가 들은 이야기 때문에 운전하면서 빵 터졌다. 듣다 보니, 요즘 내 학교 생활이 딱 그렇다.


내 인생의 새벽 같은 그 시절에 나의 하루살이 같은 인생은 이미 결정이 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 시절에는 내가 뭐를 하며 누구랑 어떻게 살 지, 나도 몰랐고 나를 늘 사랑으로 지그시 바라보던 엄마도 몰랐다. 그러나 사실은 나도 알고 엄마도 알고 있었다, 내가 이렇게 살 줄을.


새벽 시간에 뭐라도 쓰고 싶었던 마음 때문에 오늘은 이미 결정이 났다,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살 하루로. 그것이 뭐든 간에 그것은 내가 하고 싶은, 엉뚱하고 혼자 재미있는 일이 분명할 예정이다.

작가의 이전글 고군분투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