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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새 Jun 15. 2021

눈 오는 밤길

그 길을 아들이 걸어 나갔다 2021.02.03

아들은 눈이 내린 밤을 걸어 나갔다.  김이 잔뜩 서린 베란다 문을 열고 찬기운을  내려다보니,  터벅거리며 아파트 아래로 붉은기가 도는 가로등 밑을 걸어 지나간다. 


겨울 신발이 없다며 아직도 조금 큰 아빠의 등산화를 빌려 신고 나서는 아들에게 현관문을 잡고 물었다.

"엄마가 같이 나가줄까?"

"아니..."

아들이 느낄 외로움조차 에미에게는 근심이다. 아들에게가 아니라, 나에게 가만히 타일러 준다. 

'괜찮다'


아들은 자신의 자리를 찾아 헤매고 있다. 귀국해서 8개월째에 접어들고 있지만, 나와 남편에게는 오랜만이라도 돌아온 제자리지만, 아이들은 둘 다 여기에서 자신의 자리다 싶은 곳을 찾지 못하거나 찾을 마음을 내지 않는다.  

세상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는 풍경이 가장 아름다운 풍경이라는 시인과 촌장의 따스한 위로의 노랫말이 아이들에게는 가시 같은 가사가 되어 버렸다. 내 아이들의 자리는 아직 여기 없다. 아이들을 낳아서 지금까지 아이들에게 '안정'이라는 단어 하나가 이토록 애달플 수가 없다. 그래 에미가 더 아프게 느끼고 있는 것일 줄도.... 그러니 어쩌면, '괜찮다'


그래도 내 마음은 굳이 차가운 밤, 눈길을 걸어 나가는 아들 뒤를 따라 나갔다. 아들은 이 어둡고 추운 눈 속을 걸어 어디까지 다녀올 생각일까, 춥지는 않을까, 위험하지는 않을까, 외롭지는 않을까.... 아들은 일반고등학교 생활 한 학기 만에 다시 이런저런 국내외 학교들에 원서를 내고 있다. 지난여름의 그 지난한 과정을 반복하고 있지만, 그나마도 이번 겨울이 그 시도의 마지막이 될 것이기는 하다. 한국에서 학교에 기대 보려는 마음조차 지금이 마지막 기회이다. 내 마음이 먼저 간절하게 달려 나가 원서를 내고 중간과 마지막 결과들을 기다리며 하루하루가 목이 타고 멘다. 겨우 막 18살이 된 아들의 어둡고 차가운 산책길에 내 눈이 아둑시니가 되어 먼저 온몸으로 심장까지 찌르는 추위를 타고 있다. 이 꼴이니, 그 무엇보다 내 마음을 지킬 일이다. 아이들의 등에서 내 눈길을 거두는 것이 나을지도 모르겠다. 물론 내 눈길이 내 의지의 문제는 아니지만....


드라마 '눈이 부시게' 속의 치매 엄마처럼 평생 아들의 길에 쌓이는 눈을 몰래 쓸어주는 에미도 아니고, 아들이 기꺼워하는 동행을 해줄 수 있는 에미도 아니다. 어쩌면 아이들에게 '안정'이라는 단어가 애달프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냥 내 문제일 것이다. 에미로서가 아니라, 그냥 같이 살면서 앞서 살고 있는 중년의 여자가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나의 괴리와 모순들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버거울까. 그냥 괴리와 모순 투성이의 나를 내가 받아들이는데 내 평생이 걸리는 중일 것인데, 그 숙제는 아마 죽기 전에 끝날 것 같지는 않은데... 다만 아이들에게 여전히 가르치려 드는 나를 내려놓기만 해도 가린 것들이 좀 치워지고 내가 돌아갈 진짜 내 집과 자리가 보일 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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