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몽주의 '춘흥(春興)'
과시 봄일세. 같이 한시 한 수 읽어 보세. 정몽주의 '춘흥(春興)'.
春雨細不滴 춘우세부적 봄 비 가늘어 소리 없더니
夜中微有聲 야중미유성 밤되사 희미하게 소리 있어라
雪盡南溪漲 설진남계창 눈 녹아 남쪽 시내 불어 났으리
草芽多少生 초아다소생 초목의 싹들도 하마 눈을 떴겠지
생명의 신비는 무엇일까? 극히 미미한 데에서 시작하여 장대한 모습을 이루는 데 있지 않을까? 봄 비는극히 미미하다. 내리는지 안 내리는지 구분이 안 갈 정도이다. 그러나 그렇게 내리는 봄 비가 이뤄내는 결과는 어떠한가? 겨우내 쌓였던 거대하고 딱딱한 눈덩이를 사라지게 한다. 초목의 싹들은 어떠한가? 봄날 보일 듯 말 듯 얼굴을 내민 초목의 싹들 또한 봄 비처럼 미미하기 그지없다. 그러나 그렇게 틔운 싹들이 이뤄내는 결과는 어떠한가? 여름날의 무성한 신록을 이뤄내지 않는가?
이 시는 생명의 신비에 대한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그런데 성찰은 굳이 번다한 관찰을 요하지 않는다. 하나의 단서로 만상의 진실을 헤아릴 수도 있는 것. 지금 이 시인의 위치는 방 안이다. 방 안에서 단순히 청각에 의지하여 생명의 신비를 논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철학적 성찰을 담은 시라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