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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화가 진 자리의 제라늄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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秋叢繞舍似陶家 추총요사사도가 집 둘레 가득한 국화, 꼭 도연명 집 같구나

遍繞籬邊日漸斜 편요리변일점사 울타리 국화 감상하노라니 어느덧 해 뉘엿뉘엿

不是花中偏愛菊 불시화중편애국 내 국화를 유달리 편애하는 것 아니라오

此花開盡更無花 차화개진갱무화 그저 이 꽃이 지고 나면 더 이상 볼 꽃 없기 때문이라오



에둘러서 칭찬하는 것이 직접 칭찬하는 것보다 때로는 은근한 맛이 있다. 이 시는 국화에 대한 칭찬을 꽃 중의 군자네 하는 식으로 직접 칭찬하지 않고, 이 꽃이 지고 나면 더 이상 볼 꽃이 없기에 사랑할 뿐이라고 에둘러 칭찬하고 있다. 은근한 맛이 있다. 그래서 국화를 칭송한 시 가운데 으뜸으로 꼽힌다. 원진의 「국화(菊花)」이다.


그런데 이제 원진이 시에서 말한 “이 꽃이 지고 나면 더 이상 볼 꽃이 없기 때문이라오”에서 이 꽃은 ‘국화’가 아닌 ‘제라늄’으로 바꿔야 할 것 같다. 마당의 국화도 다 진 이 아침, 제라늄만이 오상고절을 뽐내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 기이한 것은 이미 한참 전에 꽃이 다 졌던 제라늄이 갑자기 새로 또 꽃을 피웠다는 사실이다. 얼마나 놀라운가!


기상이변이라고 하니, 이것 역시 기상이변의 한 징후로 보인다. 기상이변으로 나타나는 여러 가지 불협화음 중에 문학의 상징들도 새롭게 써야 하는 것도 포함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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