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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잎이 돋아나기까지는

by 찔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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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란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 모란이 피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슬픔의 봄을


올해는 감이 딱 두 알 열렸다. 하나는 마나님께 드렸고, 하나는 까치밥으로 남겼다. 오늘 보니 정말 까치가 다녀갔는지 감 한쪽이 살짝 파여있다.


그런데 까치밥보다 더 눈길을 끈 건 가지 끝에 매달린 마지막 잎새였다. 온몸의 수액이 빠져나가 갈색으로 변해 말라비틀어진 잎새. 살짝 건들기만 해도 떨어질 듯한데, 용케 매달려 있었다.


영랑이 지는 모란을 보며 슬픔 속에서 희망을 노래했듯, 나는 마지막 남은 잎새를 보며 죽음 속에서 영속하는 생명을 노래하고 싶다. 마지막 잎새는 결국 자신을 키워준 뿌리로 되돌아가 긴 겨울의 침묵 끝에 내년 봄 다시 상그런 푸른 숨으로 돋아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지막 잎새는 결코 사라지는 죽음의 장송곡이 아니라, 새로 등장할 생명의 전주곡인 것이다. 슬프되 슬프지 않은 것.


저 감잎이 지고 말면 그뿐 내 한 해는 다 가고 말아 / 삼백예순 날 하냥 섭섭해 우옵네다 / 감잎이 돋아나기까지는 / 나는 아직 기둘리고 있을 테요 찬란한 생명의 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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