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 초반. 어느 날. 나의 직장 대표님은 관상을 조금 볼 줄 안다는 이유로 자기 마음대로 나의 관상을 봐 버렸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거절할 겨를도 없었고 당연히 나의 허락도 받지 않은 상태로. 나의 관상을 본 이후, 관상에 비범한 사람처럼 덤덤하게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혼자서는 성공할 수 없고 다른 사람들의 도움으로만 성공할 것입니다"
내가 궁금해서 물어본 것도 아닌데 대표님은 자기의 눈에 비치는 대로 담담하게 내 앞에 부챗살을 펴듯이 말을 하나씩 둘씩 펼쳐 놨다.
난 한 마디, "그런가요?"라고만 대꾸했다.
성공의 기준이 어떤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나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삶에 그리 적극적이지 않았던 나. 하루하루 주어진 일에 최선을 다할 뿐, 앞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에 대한 뚜렷한 목표의식 없이 그저 그렇게 살고 있을 때였다. 난 나의 얼굴을 그다지 자세히 본 적이 없었으며 나의 미래가 털끝만큼도 궁금하지 않았다. 그냥 살았다. 배고프면 먹고, 잠 오면 자고. 아주 기본적인 의식주에만 관심이 있었을 뿐이다.
그러던 내가 관상을 보게 된 후부터 자극이 몸 안으로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랬다.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다. 그전에 보지 못했던,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난 다른 사람들로 인해 점점 성장한다고? 그럼 그들에게 내가 도움을 준다는 말이야? 도움을 받는다는 말이야? 내 인생에 기대가 생길 수도 있다는 뜻"으로 유리하게 해석했다.
나의 관상을 아무런 준비 없이 듣긴 했지만 머릿속에 그 말들이 각인되었다. 자꾸 생각났다. 우리가 흔히 듣는 그 말, "말하는 대로 이루어진다" 과연 난 나의 관상처럼 살아갈까? 갑자기 앞으로의 나의 인생이 재밌어질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나를 스쳐 지나가는 인연들에게도 감사함이 생겼다. 소중한 인연을 오래도록 기억하며 살고 싶었다. 모두가 나의 알 수 없는 인생길의 등불이 될 것만 같았다. 인생의 어두운 터널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을 때, 어둡고 좁은 골목길을 대낮처럼 하얗게 밝히는 가로등처럼 말이다.
20대 후반. 두 번째 관상도 예고 없이 아니 느닷없이 찾아왔다.
아이를 업은 채 영업을 위해서 어느 가게의 문턱을 넘어섰을 때다. 위아래 승려복을 입은 중년 여주인의 시선이 온통 나의 얼굴에 집중되더니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하듯 훑었다. 그러더니 나의 등에 업힌 아이의 얼굴도 집중해서 읽기 시작했다. 초면인데 무례했다. 난 기분이 좋지 않아 뒤돌아서려는 찰나,
"당신의 아이는 아주 똑똑하고 영리해서 집에 가만있지 못하고 자꾸 집 밖을 나가려고 할 테니까. 집 밖을 나가지 못하게 하고, 당신은 무조건 남편이 하자는 대로만 하면 무슨 일이든 술술 풀릴 겁니다." 난 묻지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는데 나에게 말을 하나씩 던지기 시작했다. 밑도 끝도 없이 말이다.
포대기에 둘러싸여 내 등에 업혀 있는 어린아이의 관상까지 봐주는 친절함, 아니 자기 마음대로 다른 사람의 관상을 보는 이 사람이 좋게 보이지는 않았다. 뭔가 내보이고 싶지 않은 비밀을 들켜버린 듯해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갑자기 높은 곳에서 물동이 물을 내려 붓듯이 쏟아낸 말을 얼떨결에 받아낸 나의 뒤통수만 얼얼했다.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라 반박도 못한 채 들어갔던 문턱을 도망치듯 나왔다. 다시는 그 문턱을 넘어서 들어가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 가게는 없어졌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그곳을 지날 때마다 자꾸 관상이 생각난다.
세상에 이런 일이 있을까,
관상은 관상일 뿐이라 여기며 살았는데 세월을 거슬러 생각해 보니 관상대로 되어간다.
난 많은 사람들의 사랑과 관심을 듬뿍 받으며 좋은 기회를 많이 가질 수 있었으며, 인생 동반자이자 친구가 된 남편과 대화를 통해 문제해결을 잘하며 무던하게 살고 있다. 어쩌면 아주 잘 산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또 등에 업고 있던 아이는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즐거운 인생놀이를 즐기는 중이니까.
굳이 합리화를 시키자면,
믿거나 말거나 나의 관상을 본 두 사람의 말이 맞아버렸다. 어쩌면 살다가, 살다가 중요한 결정 앞에서는 남편 말에 귀를 쫑긋 기울이고, 길 위에서 만난 수많은 인생 멘토들의 한 마디, 한 마디를 정성 들여 들었는지도 모른다. 모두가 나를 성공시켜 줄 사람이라는 믿음으로.
생각해 보면,
일부러 찾아가서 관상을 본 적은 없지만, 어쩌다 본 관상. 관상을 거부하면서도 좋은 것은 관상대로 살고 싶었고, 나쁜 것은 바꾸고 싶었다. 결국엔 다 잘 되어 있다. 그 바탕은 아마도 무례한 사람들이라 생각했던, 나의 관상을 봐준 두 사람 덕분일지도 모른다. 밑그림 없는 인생에 두 사람은 약간의 힌트를 준 셈이다. 두 사람의 말은 생각을 키웠고 생각은 나의 행동으로 이어졌으니까. 결국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특별함 보다 평범함이 성공이라 생각한 지금의 삶이 유지될 수 있었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