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를 아는 사람 Sep 25. 2023

그곳은 엄마의 꽃밭인지 텃밭인지

농사짓는 사람에게 땅이란 무언가 열심히 키워서 돈 되는 걸 하려고 한다. 자투리 땅 하나 발견하면 콩을 심든, 깻잎을 심든 척박한 땅에다 심고야 만다. 땅을 놀게 놔두질 않는다. 땅을 쉬게 하는 것은 스스로 죄짓는 느낌, 게으른 사람으로 생각하기도 한다.


친정집 앞마당에는 담장 아래 바짝 붙은 길쭉하게 생긴 꽃밭이 있다. 이름만 꽃밭이지 상추 심고, 땡고추 심고, 깻잎에 옥수수까지 있다. 친정 엄마는 기둥처럼 우뚝 솟아있는 꽃밭 안에 살고 있는 감나무를 없애더니 비파나무도 없애려 든다. 오래전에는 나무들 사이사이에 채소들을 심더니만 언젠가부터 순서가 바뀌었다. 터줏대감인 듬직한 나무들을 다양한 방법을 동원해 없애더니 이젠 그 자리를 채소가 점령했다. 꽃밭에 채소는 무더운 여름 멀리 가지 않아도 풋고추나 상추를 쉽게 구할 수 있어서 좋긴 하다.


이러한 엄마의 꽃밭인지 텃밭인지 알 수 없는 땅이 처음 만들 때 의도에 걸맞은 역할로 변하고 있다. 꽃밭=꽃+밭(채소)으로. 상상도 못 한 일이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몇 해 전부터 엄마는 꽃밭 한 귀퉁이에 꽃을 심더니 이젠 꽃나무가 심긴 면적이 채소를 심은 면적을 따라잡고 있다. 아마 몇 년 후에는 순서가 뒤바뀔 수도 있다.


엄마도 꽃밭의 역할처럼 서서히 변하고 있다. 이웃집들이 집 주변에 빨강꽃, 분홍꽃 색색의 꽃을 심어 화려하게 꽃을 피워내는 걸 보고 엄만 부러웠나 보다. 아버지 눈치 보느라 좋아하는 꽃을 심지 못한 엄마가 이젠 계절마다 꽃을 볼 수 있는 꽃밭 정원사가 되어간다. 순서 없이 심어서인지 정돈되진 않았지만 꽃들은 주인 따라 이곳저곳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치켜들고 얼굴을 내민다.


엄마가 꽃을 좋아했다니! 몰랐다. 엄마는 항상 들에서 일하는 모습만 기억에 있다. 흙 묻은 신발, 닿고 닿아서 하얗다기보다. 피부가 한 꺼풀 벗겨진 듯 미끈한 손바닥. 거칠 거칠하던 손바닥이 언젠가부터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은 듯 미끈하고 매끈해진다. 그와 함께 지문도 사라졌다.


휴가를 맞이해 며칠을 우리 가족과 함께 보낸 엄마는 몸살이 난 것 같다.


"술 취한 사람처럼 어지럽고 기침이 난다.  나가 미쳤는갑다,  왜 이런다냐!"

하면서 이상 하다고 한다. 몸에 무리를 한 것이다. 자식들과 함께 있으니 좋아서 사방팔방 다녔는데 몸이  말을 한다. 평소 엄마가 움직이는 행동범위를 넘어선 것이다. 너무 많이 걷고, 멀리 갔다. 피곤하다고. 쉬어야 한다고.


엄마의 몸이 움직일 수 있는 거리가 줄어들고 있다. 그걸 몰랐다. 엄마가 숨차지 않고 가장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거리는 집 주위를 몇 바퀴 돌거나, 쉬엄쉬엄 마당에 있는 꽃밭에서 호미로 흙을 만지고 있을 때다. 엄마의 집에 갈 때마다 새로운 꽃들이 식구로 들어와 엄마 얼굴처럼 환하게 웃으며 반겨 줄 것 같다.


작가의 이전글 큰 컵과 작은 컵의 채움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