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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가 아는 사람 Mar 18. 2024

난 왜 자꾸 엄마의 언어에 끌릴까?

"우리 동네에는 회장인지 된장인지가 있다, 어떤 어멈은 짠해서 보지도 못한다. 제대로 못 먹어서,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글자 모르는 사람도 많더라. 어떤 어멈집에 가면 달력이 4월 날짜도 안 됐는데 달력을 찢어서 4 달력이 걸려 있어. 글자 모르는 어멈들이 그리 많은 줄 몰랐다" 질서 없이 늘어놓은 엄마의 하고 싶은 이야기를 들으며 엄마의 일상을 들여다본다. 엄마는 오늘도 동네 돌아가는 얘기를 전하느라 신이 났다.


엄마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다가 갑자기 혼잣말처럼 "나도 참 그렇다. 그렇게나 몰랐을까. 돈이 없어서 그렇다 치더라도 그리도 몰랐을까. 지금 같았으면 상다리 부러지게 한 상 차려줄 건데. 참나. 참 무식하다. 무식해" 가난하고 배우지 못한 엄마. 엄마는 후회하고 또 후회한다. 지난날. 배우지 못해서, 알지 못해서 한 실수들을 실타래에서 실을 풀어내듯 술술 풀어낸다. 그중에 내가 결혼식 후 신혼여행을 다녀오는 날. 바로 그날일을 자꾸 끄집어낸다.


거의 30년이 가까이 된 이야기다. 내가 제주도 신혼여행을 다녀온 당일. 엄마와 아버지는 평소와 똑같이 시골 집안에 불을 다 끈 채 잠들어 있었다. 친정집 마당 앞을 큼직한 전등불로 대낮처럼 환하게 밝히고, 부모님이 우리 부부손꼽아 기다릴 줄 알았는데 아무 일도 없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듯 집은 고요히 잠들어 있었다. 반기는 것은 진한 어둠과 앞산을 치고 넘을 듯 짖어대는 엄마집 개의 울음울려 퍼질 뿐. 신혼부부를 맞이할 준비가 없었다.  엄마도 몰랐고, 아버지도 몰랐다. 그저 대수롭지 않은 일상으로 여겼다.


세월이 아주 많이 지난 몇 년 전 엄마에게 난 우리 집 딸들이 나에게 말하듯 말했다. "엄마, 너무 했어.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결혼한 자식들이 신혼여행 다녀오는 날 쿨쿨 자고 있는 부모가 어딨어. 너무 했지. 좀 서운했어." 했더니, 그 후로 엄마는 웃으며 가끔 미안하다고 얘기를 한다. "몰라도 그렇게나 몰랐을까 미안하다" 미안하다는 엄마의 진심 어린 말에 난. "엄마, 어쩌겠어 다 지나간 일인데 이제라도 알았으니 됐지. 그게 그렇게나 대단한 일도 아니잖아" 엄마에게 무슨 대답을 듣고 싶어서도 아니고 따져 묻고 싶어서도 아니었다. 그냥 엄마가 알았으면 했다. 뭐든 함께 얘기 나누는 것이 좋았다. 이런 얘기 저런 얘기 나눌 수 있는 엄마가 있어서 너무 좋다.


엄마와 웃고 떠들며 수다 떠는 걸 즐긴다. 이런 엄마가 언제까지나 내가 전화하면 받고, 시골집에 찾아가면 항상 그 자리에 있어줄까? 가끔 불안해진다. 지금이야 통화가 안 되는 이유를 물으면 식당방에서 밥 먹는다고 못 받고, 욕실에서 머리 감는다고 못 듣고, 개밥 준다고, 텃밭에 나갔다가 못 받고, 배터리가 다 되어서 못 받고, 병원 진료 때문에 못 받고, 사람이 많은 곳에선 시끄러워서 못 받고, 그것도 아니면 보청기 약이 다 되어서 못 받았다는 엄마. 이 모든 것을 하고 나면 시간은 좀 오래 걸리더라도 통화는 된다. 아직은 다행이다. 기다렸다 다시 전화하면 통화가 되니까.


현재. 엄마와 나는 동시에 나이를 주면 주는 대로 넙죽넙죽 받아먹고 있다. 지금 엄마는 나에겐 마, 손주들에겐 할머니, 난 엄마에겐 딸, 우리 집 아이들에겐 엄마다. 지금부터 몇 년이 될지, 몇십 년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나의 딸들이 엄마가 되고 내가 할머니가 되면 나의 엄마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을까? 그때도 엄마는 나의 엄마와 할머니로 자리를 지키고 있을까?


오늘도 돈 자랑, 자식 자랑에 열을 올리는 동네 어멈들을 부러워하기보다 오히려 그 사람들의 건강을 걱정하는 울 엄마. 아프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가볍게 아프고, 금세 건강 찾아가는 엄마로 나와 함께 오래도록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엄마의 언어에는 리듬이 있고, 색깔이 있으며, 들으면 들을수록 깊이와 재미가 있어서 질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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