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지윤 Aug 07. 2020

안정과 불안정

2020 여름 이메일링 서비스

사상 초유의 불안이 찾아왔다. 직장 불안정, 주거 불안정, 금전 불안정, 애정 불안정. 이 정도 불안은 처음이라 어리둥절하다. 다 안 되면 고향 내려가야지, 라고 마법을 걸어도 동화 속 세상에서는 쉽게 내동댕이쳐지고 가슴은 콩닥거린다. 음. 불안은 왜 생기는 걸까.


1. 뉴스를 봐서

2. 책을 봐서

3. 아무것도 안 해서


그런데 나는 이 중에서 제대로 하는 게 없다. 아침의 뉴스는 세수할 때 듣는 OST에 가깝다. 세수가 주고 뉴스는 부이며 뉴스보다 클렌징폼이 귀에 더 자주 꽂힌다. 책은 아무리 읽어도 시작과 끝을 기억하지 못한다. 인물의 이름은 뒤죽박죽이다. 그 책 읽었냐고 물어보면 읽었는데… 무슨 내용이더라…? 아무것도 안 하지도 못한다. 회사에서는 하는 건 없어도 바쁜 척을 한다. 척하느라 바쁘다. 결국 뉴스를 보는 것도 아니고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책을 보는 것도 아니고 안 보는 것도 아니고 아무것도 하는 것도 안 하는 것도 아닌데(지극히 정상 같다) 왜 불안할까.


4. 아무 곳에나 갈 수 있어서


최근에 나는 A와 함께 B를 보러 순천에 갔다. 순천만 앞에서 꼬막 정식을 먹는다고 하니 B는 누가 순천 와서 꼬막 먹냐고 했다. 선암사에 간다고 하니 B는 요새 누가 절에 가냐고 했다. 갑자기 불안해졌다. 그럼 무얼 해야 하지…? B는 순천만이지만 관광객들은 모르는 순천만에 데려다주었다. A와 나는 그곳을 걸었는데 갑자기 게가 튀어나왔다. 우리가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게와 여치와 등등의 생물들이 폭죽처럼 달아났다. 뿍뿍거리고 반짝이는 아기 신발을 신은 것 같았다. 나 걸어가고 있어요! 나 움직이고 있어요! 나 살아 있어요! 망둥어는 양쪽의 손바닥으로 갯벌을 철썩철썩 때리고 있었다. 나도 망둥어의 뒤꽁무니를 따라 이놈의 뉴스와 책과 무엇이든 해야 하는 지구를 찰싹찰싹 때리고 싶었다. 그러다 화를 내면 숭숭난 구멍으로 쏙 숨어버리고 싶다. 얼마나 약이 오를까? 기분이 좋아졌다. 나는 아무 생각이나 할 수 있고 아무 곳에나 갈 수 있다. 그건 꼭 안정적이지 않다는 말 같다.



* 해당 글은 찌릿 일기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작가의 이전글 2020 여름 찌릿 일기 구독자 모집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