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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지윤 Aug 20. 2020

무의식의 아이엠그라운드

2020 여름 이메일링 서비스

짝꿍이 말했다. 샤프심이 없어. 그럼 나는 샤프심을 건넨다. 친구는 집게손가락으로 집어 샤프에 넣고 딸깍딸깍 누른다. 샤프심이 찔끔찔끔 나온다. 지금은 주변을 둘러봐도 샤프심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이 없다. 샤프를 안 쓰기 때문이다. 펜만 쓰거나 타자만 치는 직장인뿐이다. 우리는 샤프가 없다. 그런데 왜 샤프가 없다고 말하지 않지? 없는 것을 말하고 싶다. 없는 것을 말하면 다른 방식으로 나를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샤프가 없다는 말은 늙었다는 소리다.


나는 서큘레이터가 없다.


비가 48일째 계속되어 한 달째 어둑하다. 요즘 지구는 영화관에 나와서 마주한 밤 같다. 깊은 어둠, 옅은 어둠 같은 농도 차만 있을 뿐 어디를 가든 흐린 건 마찬가지다. 찝찝한 엔딩을 본 기분이 계속 이어진다. 집 안의 공기는 물로 가득 찼고, 거실 에어컨의 시원한 바람은 방 안까지 들어오지 않는다. 아빠의 방법이 떠올랐다. 거실에서 삼겹살을 구워 먹을 때면 선풍기 등을 버너기 방향으로 선풍기 얼굴을 창문 방향으로 두었다. 그렇게 연기를 뺐다. 그래, 꿉꿉함을 날려버리자! 다행히 A의 안 쓰는 선풍기가 있었다.

― 나 선풍기 좀 쓰자

― 그거 선풍이 아니고, 서큘레이터

― 뭐가 달라?

― 선풍기는 시원하게 하는 거고 서큘레이터는 공기 순환하는 거야

나는 서큘레이터가 없어 공기를 바꾸지 못한다. 뱉은 공기를 그대로 마시고, 내뱉고, 마신다. 영영 같은 공기를 마시고 뱉는다. 서큘레이터가 없다는 말은 살려달라는 소리다. 사랑해달라는 소리일지도 모르겠다. 그게 그거다.


나는 기억이 없다.


기억이 나빠져 서양 소설을 멀리한다. 엘레나 페란테의 『나의 눈부신 친구』에서 주인공인 라파엘라 체룰로의 애칭은 릴라다. 그런데 누군가는 리나라 부른다. 라파엘라가 릴라고 리나구나, 익히면 갑자기 체룰로 집안은 어쩌고가 나온다. 내 기억에 체룰로는 없다. 앞장을 뒤적거린다. 세 글자 이상 넘어가는 고유명사가 버겁다. 점점 한국인만 나오는 한국 소설만 읽게 된다. 짧은 이름이 좋다. 더 늙으면 시만 읽을 것이다. 시는 한쪽에 다 적히니까 앞장을 찾아볼 일이 없다. 가끔 긴 시를 만나도 앞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시에서 뭔가를 기억하는 건 나에게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뒤죽박죽 섞이는 게 오히려 재밌기 때문이다. 나는 기억이 없다. 그건 감각으로 반응한다는 말이다.


옆 사람에게 너는 뭐가 없냐고 묻는다.


B는 답한다. 미치는 게 없다. 대부분을 고만고만 해낸다는 말이다. C는 답한다. 돈이 없다. 때때로 자신의 가난을 무기로 삼는다는 말이다. D는 답한다. 눈물이 없다. 술 먹고 눈물 쏟을 준비가 되었다. E는 아는 게 없다. 똑똑하다. F는 말이 없다. 세상 만물을 깨우쳤다. G는 자리가 없다. 유행하는 음식은 꼭 먹는다. H는 배가 없다. 사과를 싫어한다. I는 잠자리 날개가 없다. 가을의 시골을 좋아한다. J는 집 밖으로 나간 적이 없다. 닭이다. K는 어이가 없다. 유아인이다. (?)


없는 것은 있는 것보다 항상 많다. 그야말로 무한대다. ‘없는 것’의 우주에서 단 하나만 탁 끄집어 내보자. 엑셀일 수도 지붕일 수도 있겠다. 이렇게 가끔 머리를 놀린다. 그럼 무의식의 나를 발견한다. 무의식의 아이엠 그라운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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