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nt Blanc 2024
머물렀던 숙소가 점처럼 작게 보이기 시작하자 스위스의 검은 소, 빙하수, 들꽃, 그리고 고지대에서만 자란다는 에델바이스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알프스 종합 선물 세트를 받은 기분이었다. 길은 여전히 초보자에게 도전적인 구간이었지만, 낭떠러지의 두려움보다는 구불구불 이어진 알프스의 경관이 더욱 매혹적으로 다가왔다. `여기서부터는 더 아름다워질 거야.’ 산이 속삭이는 듯했다. 이제야 산이 나를 허락해 주는 느낌이 들었다. 처음 산행을 시작했을 때는 산이 나를 밀어내려는 것만 같았다. ‘어디 초보 가? ‘너 이래도 계속 걸을 거야?’ 산은 나를 조롱했고, 이는 어울리지 못했던 나의 이주 노동자로서의 삶을 떠올리게 했다. 낯선 발음과 이질적인 문화, 예의 바른 태도 뒤에 숨겨진 무관심, 그리고 ‘너는 이곳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라고 끊임없이 상기시키는 그들의 태도. 외국에서의 나의 삶은 낯섦 속에서 익숙함을 찾아가는 여정이었다. 몽블랑 산행도 낯설었지만 익숙해지기까지 계속 걷기를 선택했다. 그리고 이제는 산과 내가 조화롭게 어울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 폴리 (la Fouly)에서 출발한 지 4시간 30분 만인 오후 1시경 드디어 해발 1,931미터에 위치한 스위스 몽블랑의 끝자락이자 이탈리아 알프스의 시작점에 도착했다. 유명한 장소답게 사진 찍기에 진심인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았다. 그들의 지나치게 한국적인 패션, 줄을 서지 않거나 타인을 배려하지 않는 태도에 나도 모르게 눈살이 찌푸려졌다. 하지만 곧, 나는 그들의 사연도 알지 못한 채 겉모습만으로 섣불리 판단하고 있음을 깨달았다. 각자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그들을 향한 나의 시선이 어쩌면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타국에서 살아가는 나는 과연 다른 모습일까?. 나 역시 이방인이며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는 다른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꽃들로 끝이 없이 이어진 1,100미터의 내리막 길에서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빠르게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끝까지 안전하게 내려오는 것’이라는 철학적 깨달음을 얻었다. 오르기도 하고 내려가기도 하는 인생과 산행이 묘하게 닮아 있었다. 나의 회사 생활은 이제 작은 봉우리 하나를 지나, 퇴직을 준비하는 길목에 서 있다. 더 오를 곳이 없어서가 아니라, 행복하지 않아서 내려가기를 선택했다. 인간은 결핍되거나 넘치면 행복하지 않다고, 자기 계발서에서 읽었다. 경제적 결핍으로 불행던 때가 있었다. 직장을 얻었고, 금전적으로도 채워졌다. 잠시 행복했지만 스트레스가 많은 직업이었고 자각하지도 못한 채 일에 몰두했다. 장시간 앉아 있는 업무로 인해 결국 허리 수술까지 받아야 했다 .사회적으로나 재정적으로 안정을 얻었지만, 정작 나는 불행했다. 자신을 돌보기보다는 가지고 있는 자리를 잃을까 전전긍긍했다. 소유하는 법만 배웠을 뿐 내려 놓는 법을 배운 적이 없었기에 일단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하나씩 비워냈다. 직함을 내려놓고, 늦은 밤까지 울리던 업무용 휴대폰을 꺼두었다. 더 많은 돈을 벌어야 한다는 강박도 내려 놓았다. 빈자리에 가족과 친구들이 들어왔다. 글을 쓰기 시작했고, 잊고 있던 취미를 되찾았다. 여행과 하이킹도 살며시 넣어 보았다. 지금은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다.
스위스와 달리 가파르고 바위가 많은 이탈리아 쪽 오르막은 체력을 한계까지 몰아넣었다. 하이킹 중 짐은 항상 무겁고 귀찮은 존재였지만 이 순간은 짐보다 마음이 더 무거운 순간이었다. 체력은 바닥났고 멈추자니 날이 어두워질까 두려웠으며 가자니 작은 가방으로 넘을 위대한 산이 무서웠다.
“아이고 힘들다”
누군가 나의 마음 소리를 대신해 주었다. 고개를 돌리니 여섯 명의 한국인 그룹이 있었다. 평균 나이 일흔여섯. 젊은 시절 뉴질랜드로 이주한 그들은 30년 넘게 산을 오르며 친목을 다져왔다고 했다. 몽블랑 하이킹을 위해 오랜 기간 준비했지만, 예상보다 거친 산길에 부딪혀 제시간에 숙소에 도착하지 못했고 짐이 너무 무거워서 가져왔던 한국 음식을 버리고 와야 했다는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20대였다면 다 이고 지고 왔을 텐데…."
이제는 나도 덜어내는 삶을 배워야 할 나이에 접어들고 있다는 실감이 들었다. 70대, 80대가 되었을 때 무거운 짐을 끌어안고 사는 무기력한 노인이 아니라, 불필요한 짐은 내려놓고 열정만은 잃지 않는 어른으로 늙고 싶다. 그들의 남은 여정이 무사하기를, 다치지 않기를, 그리고 알프스가 그들이 꿈꾸었던 경치를 허락해 주기를. 낯선 곳에서 만난 낯선 이들에게 축복을 빌어 주는 곳, 그곳이 바로 알프스 몽블랑이었다.
다시 일어서 걸었다. 계곡이 나타났고, 다리를 건넜으며, 평탄한 길도, 굽이진 길도 이어졌다. 다리는 풀려 휘청였지만, 함께였기에 계속 앞으로 나아갈 수 있었다. 멀리 숙소가 보이자 환호성이 터져 나왔고 모두가 박수를 쳤다. 산에서는 눈앞에 목적지가 보여도 길이 굽어 있어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이상하게도 지치지 않았다. 한계를 넘어 끝까지 걷게 하는 힘. 그것을 우리는 `희망’이라 부른다. 기쁨과 슬픔, 힘듦과 환희가 뒤섞인 하루였다.
저녁 식사는 기대조차 하지 않았던 코스 요리였다. 이탈리아 쉼터는 식자재를 나르는 헬리콥터 전용 착륙장까지 갖추고 있었다. 주문한 와인을 변경하기 위해 쉼터 직원과 벌인 작은 실랑이조차 추억이 되었다. 숙소 밖 광경은 해가 서서히 기울며 알프스 산맥을 더욱 황홀하게 물들였다. 산봉우리들은 저녁 노을에 따스한 금빛으로 빛났고, 하늘은 다채로운 색으로 번지며 한 폭의 캔버스처럼 보였다. 힘들었던 순간도 대자연 앞에서는 눈 녹듯이 사라졌다. 지금까지의 모든 순간이 소중한 추억으로 남을 것이라고 믿었다. 몽블랑 하이킹의 모든 여정이 나에겐 체험이자 성취였음을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