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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몽블랑, 빙하의 눈물을 보다

Mont Blanc 2024

by Eunju song Feb 02. 2025
브런치 글 이미지 1



이탈리아에서 스위스로 향하는 길이 바위가 많아 오르막 산길이 험난하다. 그래서 우리는 반대로 넘어가는 길을 택했고 오늘의 베이스캠프는 이탈리아 알프스의 출발지인 쿠르마유였다. 그곳이 <어쩌다 몽블랑> 팀의 종착지이기도 했다.


알프스 산을 사람에 비유한다면, 이탈리아는 거친 매력을 지닌 강인한 남자, 스위스는 섬세하고 정갈한 여자, 프랑스는 그 두 매력이 섞인 중성적인 사람처럼 느껴졌다. 8시간의 긴 산행 끝에 도시의 불빛이 보이자 반가운 마음과 동시에 산과의 이별이 아쉬웠다. 그 감정은 엄마와 나의 관계 같았다. 같이 살면 힘들지만 안 보면 그리운 존재. 인천공항 게이트에서 눈물짓는 엄마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나 역시 자꾸 돌아보면 ‘잘 있어. 또 올게’ 감정이 차오른다. 몽블랑과 엄마는 언제나 그리운 존재로 남을 것이다.


그날 저녁, 우리는 근사한 식당을 예약했다. 와인 잔을 기울이며 나눈 이야기들과 하이킹의 추억들이 식탁을 더욱 풍요롭게 만들었다. 스마트워치의 기록은 총 133km, 하루 평균 22km, 30,000보를 걸었다. 뚜르 드 몽블랑(Tour du Mont Blanc)의 전체 구간인 170km에서 이탈리아 마지막 구간을 제외한 여정이었다. 길고도 치열했던 걸음들이 드디어 끝을 맺었다.


이탈리아 일정 중 가장 강렬했던 경험은 빙하수에서의 래프팅이었다. 물살은 놀이공원의 바이킹처럼 거칠었다. 호기롭게 "타볼래!"라고 외쳤지만, 센 물살을 보며 모두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설마 저기서 타는 건 아니겠지?"

래프팅은 규칙 세 가지만 기억하면 된다. 리더가 `Forward`를 외치면 앞으로 노를 젓고, `Backward`를 외치면 뒤로 노를 젓는다. `Get down` 신호가 오면 젓던 노를 멈추고 보트 안으로 몸을 숨겨야 한다. 물살이 거칠어서 구조용 보트가 따로 운행될 만큼 보트 밖으로 떨어지는 사람들이 많았다.

집 채만 한 파도가 보트를 덮칠 때는 `Get down`을 외치며 몸을 숨겼다가, 바로 `Forward`로 위기를 탈출했다. 떨어지지 않기 위해선 순간의 판단이 중요했다. 위기가 닥칠 때 피할 줄 아는 현명함과 기회를 모색하여 되치기 하는 대범함. 인생에서 배워야 하는 중요한 생존 전략을 래프팅에서 배웠다. 40분간의 물과의 사투 끝에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밀려오고 긴장감 가득한 순간들이 떠올랐다. 물에 흠뻑 젖은 모습이 전쟁에서 돌아온 용사들 같아서 서로를 보며 한참을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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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해발 4,810미터의 하얀 산 몽블랑을 넘어 프랑스 샤모니 쪽으로 가기 위해 케이블카를 탔다.  지금까지의 여정은 몽블랑 둘레길을 걸었지만, 이제는 그 속으로 들어가서 그와 직접 만나는 시간이었다.  짝사랑하는 연인을 만나는 첫 데이트처럼 설렘이 가득했다. 단순히 `본다`는 개념을 넘어 `알현한다` 는 표현이 더 어울릴 만큼 압도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그리고 깨달았다. 몽블랑은 나만의 연인이 아니라 만인의 연인이었다. 하이킹 중 매일 바라보았던 설산들은 거대한 다이아몬드 광산 같았다. 차갑고 청명한 공기가 폐부 깊숙이 스며들고, 해발 4,000미터가 넘는 고도가 주는 묵직한 어지러움이 온몸을 감쌌다. 하늘과 설원이 맞닿은 경계를 보며 천국의 문턱에 서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시간이 멈춘 듯한 침묵 속에서 우리는 저마다의 방식으로 이 순간을 가슴에 새기고 있었다.  


몽블랑 주변을 둘러보던 중 작은 점처럼 보이는 셰르파와 산악인들이 로프로 서로를 연결한 채 한 걸음 한 걸음 정상으로 오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월리를 찾아라` 속 캐릭터처럼 작았지만, 그들이 감당하고 있는 도전의 무게는 결코 작지 않을 것이다. 그들 이전에도 그리고 이후에도 자연과 교감하려는 인간의 시도은 계속 이어질 것이다. 파노라마 뷰에서 내려다본 몽블랑은 다른 봉우리들보다 작게 보였다. 비슷한 봉우리들이 많아 찾는 데 시간이 걸렸다. 3,842미터의 아귀 뒤 미디는 그보다 높지 않았지만, 더 독특한 형태로 빛이 났다. 정상에서 본 몽블랑 산맥은 일인자도 이인자도 없었다. 각자의 모습으로 모두 일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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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블카는 처음 시작점인 샤모니로 우리를 데려다주었다. 샤모니에서 메르 드 글라스(Mer de Glace)로 향했다. 겉보기에는 민둥산 같았지만 흙에 덮여 있을 뿐 그 아래에는 빙하가 자리 잡고 있었다. <빙하의 창자 속에 오신 걸 환영한다>는 프랑스인들의 위트에 미소가 지어졌다. 빙하가 녹아내린 물줄기는 마치 빙하의 눈물 같았다. 우리가 탔던 래프팅의 거친 물살이 바로 그 눈물에서 흘러나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력하지 않으면, 그 물살은 점점 더 거칠어질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전시된 1975년도 사진에서는  빙하 동굴이 글라스 역 바로 옆에 있었지만 지구 온난화로 점점 녹아내려 현재 지하 500여 계단을 내려가야 빙하 속을 들여다볼 수 있었다. 빙하 속은 투명한 옥색으로 반짝였고 얼음이 만든 예술작품 같았다. 빙하의 높이는 연도별로 표시되어 있었는데, 녹는 속도가 점점 빨라지고 있었다. 눈으로 확인한 지구 온난화는 예상보다 훨씬 심각했다. 내가 예전의 메르 드 글라스의 모습을 보지 못했듯 우리 후손들이 내가 기억하는 몽블랑의 모습을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채감 마저 들었다.



여행이 끝난 뒤 다시 찾아온 일상 속에서는 평지를 걷는 자유, 글을 쓸 수 있는 자유, 그리고 따뜻한 커피와 달콤한 쿠키가 주는 행복을 되찾았다. 길을 내어준 검은 소들과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한 들꽃들 그리고  빙하가 너무 많이 울지 않기를 바라며 모든 것을 허락한 몽블랑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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