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05.18
이사 갈 집은 우리 부부가 결혼하고 처음 경험하는 ‘신축 아파트’다. 신혼 때 신축 주거용 오피스텔에 잠시 살았던 적이 있지만 대단지의 민영 아파트를 3년간의 기다림 끝에 입주하는 것은 처음부터 큰 기대이고 설렘이었다.
처음에는 꿈에 부풀었다.
‘오래된 가전은 싹 버리고 새로 사야지!”
‘아예 입주 때 인테리어를 싹 하고 들어가면 근사 할 텐데..”
‘죽은 빵도 살린다는 b** 토스터기로 바꾸고 싶은데.. 아냐. 입주할 때 다 한꺼번에 하자!”
인스타의 인테리어 고수들의 셀프 인테리어와, 최근 트렌드의 소형가전을 앱과 사이트 서핑을 하며
단꿈에 부풀었다.
‘아. 여유가 되면 저렇게 고치고 싶다’ ‘셀인(셀프 인테리어)의 고수가 부럽구먼..’ 등,
대출의 무게가 부담스럽긴 하나 지금 들어가면 아이들 대학 갈 때까진 움직일 수 없으니 초기에 싹 스타일링하는 게 낫겠지 등등..
모델하우스를 찍어온 사진들을 틈틈이 꺼내보며 얼마만큼 지었나 살피고 입주자 단톡방의 현장 사진들을 보며 남편과 나는 생애 첫 분양주택의 기쁨을 한해, 한 해 나누었다.
하지만 입주가 점점 다가오면서 분양공고 때의 화려한 모델하우스의 잔상은 점점 흐릿해지고 입주자 카페에서의 이러저러한 현실적 문제들, 만만치 않은 주거환경개선 문제들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3년간 달라진 인테리어 트렌드와는 점점 동떨어져 보이는 무거운 톤의 벽지, 자재, 색감에 대한 실망 감등이 제2의 노후 설계로 최고의 선택이라 서로 자화자찬했던 나와 남편의 마음을 어둡게 했고 입주자 사전점검일 당일, 설렘과 두근거림 대신 마지못한 발걸음을 옮기게 했다.
우려했던 신축 아파트의 좁은 동 간 거리는 눈앞의 현실이었고 앞뒤로 꽉 막힌 내 집의 view를 보며 눈앞은 깜깜했다.
남편은 본인의 잘못도 아닌데 왠지 미안해했고 나는 그때부터 단지의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조경이나
커뮤니티 시설의 편리성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비교적 다른 집에 비해서 하자가 없는 거라며 운이 좋다고 위로해주시는 하자점검 대행업체 관계자분들이 없으셨으면 하자를 살펴보는 것에도 별 성의 없이 대충 보고 집을 나왔을지도 모르겠다. 새집 인테리어를 할 때 인테리어 전문가들이 왜 무조건 마이너스 옵션을 하라고 추천하는지,..
뭐든 다 빼고 새시랑 에어컨만 하라고 하는지 현관을 들어서자마자 바로 이해가 되었다.
다 새것이긴 하지만 하나도 내 취향이 반영되지 않은 집.
그 생경함과 거부감이 생애 첫 신축 아파트임에도 1%의 애정도 느껴지지 않게 만들었다.
집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에겐 집이 곧 일터이고, 놀이터이고, 카페이고, 레스토랑이며 스파이고 에너지의 원천이다.
지금까지 수많은 이사를 다니면서도 나는 최선을 다해 내 취향이 반영된 전셋집을 찾아서 최대한의 애정으로 집을 꾸미고 가꾸면서 행복을 느꼈는데,
모든 것이 새것이지만 단 하나도 내 취향과 동떨어진 집을 보며 막막함을 느꼈다.
애꿎은 마음을 남편에게 괜히 치대고 여기저기 인테리어 팁을 모아둔 내 메모들도 다 치우고
며칠을 우울한 마음으로 보낸 후 어제부터 나는 마음에서 ‘- 빼기’ 작업을 하고 있다.
현실을 중심에 두면, 아프지만 욕심처럼 부질없는 게 없다. 로또가 당첨되지 않는 이상 예산은 한정적이고 예산이 늘어날 수 없다는 걸 아는데 우울해하는 건 감정의 낭비다.
늘 주어진 것에 감사하다고 하면서 욕망이 앞서 나갈 때 홀라당 다 까먹는 인간의 얄팍함이 바로 ‘나’라는 것을 또 이렇게 자각하게 된다.
거실을 서재처럼 꾸미고 싶었던 공사비-
‘마이너스’
여러 쇼핑몰과 인테리어 플랫폼에서 차곡차곡 검색했던 아름답고 우아했던 토스터와 워터팟 세트도
‘-빼고’’
새하얗고, 넓게 보이는 도장 마이너스 몰딩 인테리어도 ‘out’
이렇게 저렇게 하루에 세네 개 식의 ‘-빼기’를 하고 있다 보니 무념무상이랄까.. 오히려 시원 섭섭 후련한 맘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매주 유혹하듯 날아오는 백화점 세일의 푸시 알림, 인스타에서 신축 입주자들을 위한 가구, 가전, 특가 판매에도 나는 심드렁한 멘털을 잘 유지하고 있다. 현재까지.^^
끝도 없는 욕망이 현실의 지갑과 냉정한 이성을 만나면 쉽게 플러스와 더하기 연산만 거듭되지 않는다는 것을 충분히 잘 알았다고 생각했는데, 나이와 현명함, 혹은 경험의 반복과 지혜는 결코 비례하지 않는지 주부 9단이라고 자부함에도 허영 혹은 욕망에 다시 쉽게 나를 내줄 뻔했다..
당장 눈앞에 드림하우스를 만들어야 된다는 욕심. 그리고 물질적인 것이 곧 완벽한 행복이라고 착각하는 환상에서 그래도 비교적 빨리 벗어났으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그럼에도 나는 오늘 홈카페 소형가전, 그리고 최신 청소기에서 가격비교를 하며 작고 아름다운 소소한 아이들을 아이쇼핑 중이다.
그러니까. 눈으로 더하는 것은 현실에 유해하지 않으니 무수한 투명 더하기를 하는 중이라고나 할까? ^^
*이 글은 주식회사 멘테인에서 서비스하는 <키핑 keyping> 모바일앱에 2020~2021년 6월까지 연재되었던 글을 모아서 수정, 편집하여 발행했음을 알려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