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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봉수아 Mar 09. 2022

자가격리지만 사전투표는 하고 싶어

좌충우돌 가족 자가격리 7일의 기록

Day 6. 3.5  토요일


낮에는 그럭저럭 괜찮던 증세는 밤이 되면 기침이 심해지고 꼭 수영장에서 코에 물이 들어가 매운 느낌이 이어지는 것처럼 코와 목이 불편해서 밤잠을 설치게 했다.

돌 밥(돌아서면 밥시간)으로 낮에도 피곤하고 밤에는 잠을 잘 못 자는 악순환을 약기운으로 버티다 마침내 금요일 밤이 되자 나는 약기운에 취해 오랜만에 숙면을, 그것도 식은땀을 쭉 내며 잤고, 아무도 출근과 등교로 재촉하지 않으니 오랜만의 단잠을 늦도록 잘 수 있었다.


전날 밤 잠자리에 들기 전 가족들에게 엄포를 놓기도 했다.

"낼은 엄마 절대 깨우지 마라. 엄마 하루 종일 침대에 붙어있을 거야. 아빠랑 같이 알아서 먹고 싶은 거 먹고 하기야 알았지?"

엄마의 심기가 내내 불편한걸 제일 빨리 눈치챈 딸들은 엄마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며 본인들은 먹고 싶은 메뉴도 다 정했으니 걱정 말라며 호들갑을 떨었고 그 와중에 눈치 없이 "집에 뭐 먹을 건 있나?" 하는 아빠에게

거의 입틀막을 하듯 몸으로 막으며 "아냐 엄마, 아빠 말은 신경 쓰지 마.. 우리가 어디에 뭐 있는지 다 알아!"

하며 나를 다독였다.

문제는 숙면을 취하고 9시가 되니 몸이 근질거려 도저히 누워 있을 수 없었다는 것.

특히 기침과 가래 이물감 때문에 누워 있는 것보다는 일어나서 움직이는 것이 훨씬 피곤함을 덜하게 했다.

그러던 중 남편이 제안했다.


"오늘 우리 합법적으로 자가격리 중 외출 허용인데 사전 투표하러 나가볼까?"

"사전투표소 여기서 멀잖아. 어차피 우리 투표날은 격리 해제 후라 단지 안에 투표소도 있는데..."

"난 바람 좀 쐬고 싶어. 집 안에만 있으니 너무 답답해. 그럼 나만 갔다 올게. 당신은 9일에 해"


사실 생각은 안 한 것은 아니었다. 선관위에서 보낸 확진자 사전투표 문자를 보고 나도 심한 유혹을 느꼈으니까. 본 투표도 가능했지만 사전투표 시작 날 터진 단일화 이슈와 더불어 과연 사림들이 얼마나 사전투표에 참여하고 있는지, 또 우리처럼 자가격리 중인 유권자들이 얼마나 있는지 그냥 단순한 궁금증이 일기도 했다.

그래서 잠깐의 망설임 끝에 남편과 함께 가기로 결정하고 집을 나섰다.


그리고 그것이 우리의 길바닥 부부싸움의 시작이 되리라곤 우리 둘 다 전혀 예상치 못했다.


확진자 사전투표의 길은 춥고도 험하고..


"한시적 허용된 외출"의 유혹이 어떤 파장을 불러올지 이땐 알지 못했지..


5일 만에 문밖으로 나간다고 생각하니 왠지 설렌 건 진심.

KF 94 마스크는 물론이고 중무장에 후드티를 뒤집어쓴 채 장갑까지 집에서 끼고 눈만 빼꼼한 채로 남편을 따라나섰다. 오랜만에 느껴지는 바깥바람이 어느새 봄기운이 실린 미풍임에 놀란 것도 잠시, 아파트 단지를 채 빠져나오기도 전에 나는 왠지 발걸음이 무겁게 느껴져 남편을 불러 세웠다.


"오빠. 차 타고 가면 안돼? 갑자기 움직이니까... 30분이나 걷지는 못할 것 같아" 


새로 이사한 집은 두 관할 동의 경계에 있는 곳이어서 행정복지센터가 차로는 5분 도보로는  빙 돌아가야 해서 30분 거리에 있었다. 돌아오는 남편의 답은 예상을 벗어나지 않고 얄짤없이 'NO'. 


"무슨 소리야. 일부러 걷고 싶어서 오늘 투표하는 건데~ 힘들면 넌 들어가. 나 혼자 갔다 올게. "

('저 저 말뽄새(말본새)하고는.. 어쩜.. 주중에 잘 쉬지 못해서 회복이 더디니까 힘든 건데.. 자기는 회사일 하고 잘 먹고 잘 쉬었구먼.. 힘들어도 같이 외출하고 싶은 거라고!! )


소리 없는 외침은 내 안에서 부글거리고 있었지만 꾹 누르고  일단 따라나섰다. 나의 첫 번째 실수는 여기서 깨끗하게 미련을 접고 집으로 발을 돌리지 못한 것. 인정한다.

그때부터 우리의 어긋남은 매 시간 계속되었다. 무슨 도보 트래킹이라도 하는 양 가벼운 남편의 발걸음은 평상시에도 빨라 늘 보조를 맞추느라 힘들었는데 마치 축지법을 쓰는 듯 빠르게 느껴졌고 상대적으로  평상시에도 느리고 컨디션 회복이 안돼 더 느려진 내 발걸음은 조심스러운 제안을 단박에 거절당한 소심한 삐짐까지 더해져 더 느려졌다. 원래도 내가 팔에 매달려 '좀 천천히 가자~"해야 자기 걸음이 빠르다는 걸 알아채는 초둔치인 남편은 보조를 맞출 생각은 하지도 않고 가끔 멀리서 멈춰서 내가 빨리 오기를 지켜보곤 하다가 간격이 좁혀지면 다시 축지법을 시연했으니 나의 부글부글은 이미 단전 아래에서 어느새 분노를 장착하고 가슴 가운데로 몰려들기 시작했다.

30분을 걷다 보니 어느새 6시에 근접한 시각 급한 마음에 느릿한 발걸음을 재촉하는데.. 우리 앞에 긴 줄이 보이고 혹시 설마 했던 불안함은 역시나.. 그 줄은 일반인 유권자의 대기줄이 아닌 우리처럼 자가격리 중 사전투표를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해가 넘어가는 그늘진 동사무소 앞은 미풍이 어느새 쌀쌀한 꽃샘바람으로 바뀌어 시시각각 한기가 더해졌고 도대체 줄어들지 않는 줄과 함께 나는 지침과 피곤함 그리고 남편에 대한 분노가 서운함으로 파랗게 이글거리는 3중고를 겪고 있었다. 

6시가 지나니 방호복을 입은 공무원들이 나와 대기표를 나눠주며 일반인 투표가 마무리되서야 투표가 시작됨을 알렸고 밖에서 오들오들 떨던 확진자들은 그제야 건물 안으로 천천히 입장하며 투표를 진행할 수 있었다.

그런 와중에 나의 삐짐은 서운함으로 짜증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서 남편이 걸어오는 말에 무응답으로 일관했고 "나 지금 삐졌다"를 온몸으로 뿜어냈는데도 남편은 아는지 모르는지 내 기색보다는 처음 진행되는 확진자 사전투표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흥미롭게 두리번거리는 것에 열중한 듯 보였다.

나중에 이 날의 사전투표가 여러 잡음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후 돌이켜보니 시간의 지체는 분명히 있었고 나처럼 몸이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분들은 분명히 야외에서 추위에 떨었던 건 사실이지만 비교적 확진자들의 인원을 어느 정도 예상한 듯 개인 볼펜, 대기표, 그리고 기표소, 투표함까지 이어지는 절차는 별무리가 없이 진행되었다.

관외 투표자들은 따로 분류했고 투표소의 모든 공무원은 빠짐없이 방호복을 착용했으며 참관인들은 투표함 앞에는 앉아 있지 않고 투표실 구석에서 지켜본다는 변화가 있었을 뿐.


바보, 같이 간다는 건 함께 보폭을 맞춰주는 거라고!


마침내 투표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어둡진 않았지만 해도 없고 쌀쌀한 바람은 더 강하게 불고 있어 우리는 서둘러 집으로 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이때부터는 마이웨이. 나는 한기에 피곤함을 두 배로 느끼며 얼른 따뜻한 집, 이불속으로 가고 싶은 마음밖에 없었지만 걸음은 내 맘대로 빨라지지 않아 터덜 터덜 남편이야 가던 말던 땅만 보고 걸었고  남편은 키 큰 사람의 큰 보폭을 자랑이라도 하는 양 더 힘찬 남편의 걸음으로 경보 선수 마냥 속도를 높여 앞서 갔다.

집 근처에 다다랐을 때 조금 숨이 차서 잠깐 멈춰 쉬는 내게 남편이 다가왔다.


"힘들어? 왜 그렇게 늦게 와?"

"됐어. 말 시키지 마"


아. 나의 삐짐은 그 사이를 참지 못하고 티를 냈고, 남편도 질세라 한마디 한다.

"도대체 뭐가 불만이야? 너도 같이 간다고 해서 간 거잖아. 힘들면 9일에 가라고 했잖아~"

"그게 같이 간 거야? 차 타고 가자고 할 만큼 체력이 안된다는 건데.. 배려는 1도 없이 혼자서 쌩~

평소에도 내가 그렇게 말했잖아. 걸음 좀 맞춰서 같이 가자고. 그게 같이 가는 거야? 혼자 걷는 거지. 그럴 거면 왜 같이 다녀?? "


여기에서 남편의 치명적인 실수는 다시 한번 나를 자극한다.


"하여간 생일 전후로 너는 늘 심기가 안 좋아. 올해는 잘 넘어가나 했더니 생일 다음날 여지없네. 처음부터 기분 안 좋았잖아. 왜 내 걸음걸이 빠른 거 갖고 트집이야!"

"왜 여기서 생일 징크스가 나오는 건데? 하! 말을 말자. 목 아파.. 그래 다 내가 변덕쟁이에 속 좁고 신경질 많아서 그래. 다 내 탓이야."

아픈 목으로, 도톰한 마스크를 뚫고 갈라지는 앙칼진 목소리를 내는 게 얼마나 힘든지. 그래도 대차게 사과 같지 않은(?) 매콤한 사과를 쏟아주고 나는 안간힘을 써 빠른 걸음으로 집으로 냅다 걸어왔다.


오자마자 따뜻한 물 한잔을 마시고 약을 털어 넣은 후 침대로 털썩 쓰러져 잠깐 기절했다가 눈을 뜨니 채 30분 정도밖에 지나지 않았고 슬그머니 문이 열리더니 남편이 들어온다.


"뭐 안 먹어도 돼?"

".... 됐어. 잘래"

"... 화 풀어. 생각해보니까 내가 너를 배려하지 못하고 같아. 미안해."

(그래. 그거라고. 배려해 주길 바랬다고 나는!!!)


알았다고.. 더 쉬겠다고 하고 눕고 나니 오늘 하루가 주마등처럼 눈앞을 스쳐간다.

물론 꼬리에 꼬리를 무는 ".. 라면"과 함께.. 

'애초에 사전투표를 가지 않았다면..'

"망설임이 왔을 때 집으로 왔다면..

"끝까지 우려서 차를 타고 갔었다면.." 등등

내 소중한 한 표를 간절한 마음으로 행사하기 위한 그날의 여정은 생각보다 험난했고 길바닥 부부싸움이라는 초유의 일까지 불러오기까지 했으니 참. 그렇게까지 할 일이었나 싶기도 하고  

솔직히 증세의 심함과 약함의 차이일 뿐 남편 역시 일주일간 재택과 감기 증세로 더도 덜도 말고 딱 그만큼은 힘들었기에 우리 부부는 각자의 성찰을 마치고 서로에게 심심한 사과를 나누며 그날의 해프닝을 마무리 지었다.

코로나가 후각 미각 상실을 가져오면서 뇌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 결과가 있던데 내가 보기엔 자가격리 가족, 특히 부부의 일상에는 평화를 위협하는(?) 매우 치명적인 후유증을 남기기도 하는 듯. 

명심하자. 너와 나의 배려 속에 가정의 평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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