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족 자가격리 7일의 기록
아이에게 문자가 오지 않는다.
평상시에는 전날 오전 pcr검사를 하면 다음날 8시 전후로 음성 문자를 받길래 그 시간 즈음이라 생각했는데 답이 없다.
"음성이면 결과가 일찍 나오는데 결국 양성인 걸까? "
"아무 증상이 없으니까 아닐걸? 기다려보자."
기숙사에서 마스크를 쓰고 잠을 잔 아이가 아침도 못 먹고 기다릴 텐데.. 9시가 가까운 시간에도 아이에겐 소식이 없다.. 그러던 중 아이에게 전화가 왔다.
"엄마. 나 양성이야. 문자 지금 와서 보건실 왔어. 선생님한테 문자 보여드리고 집갈께."
"잠깐. 아빠가 택시 부를 테니까 짐 싸서 나올 때 전화해!"
확진됐는데도 불구하고 활기차기(?)까지 한 아이의 음성은 왠지 모를 안심과 함께 우리 부부에게 홀가분함을 안겨 주었다.
그래. 이제 다 같이 일주일 잘 갇혀 지내보자!!
단 하루였지만 확진된 가족과 확진되지 않은 구성원 한 명이 함께 생활한다는 건 둘 모두에게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혹시 모를 감염을 피하기 위해 확진자인 우리들은 자기 전까지 공동공간인 거실을 나올 때 마스크와 장갑을 껴야 했고 둘째 녀석은 안방에서 우리와 함께 생활했으니 엄마 아빠의 감시를 원치 않게 계속 받게 되어 짜증이 폭발했다. 그리고 급기야 그 원망을 언니를 향해 쏟아냈다
"아. 정말 king 받아.. 언니가 걸려와서 왜 우리가 이렇게 고생해. 아 진짜 짜증!"
"어쩔 수 없는데 왜 자꾸 언니 탓을 해. 언니가 걸리고 싶어서 걸렸어? 언니도 힘들어 방에서 못 나오잖아"
"아.. 나 조금 있다가 화상회의합니다. 조용히 하세요!"
방 한 칸에 재택근무하는 아빠, 몸과 마음이 불편해 심기 관리가 안 되는 엄마, 미디어 총량 시간을 맘껏 쓰지 못해 몸살을 하는 중2가 모여있으니 그야말로 난장.
그 사이사이 배꼽시계들은 정상 작동을 해서 마스크를 끼고 장갑을 낀 채 주방에 나와 끼니 끼니 냉장고를 털고, 우리와 함께 음식을 먹을 수 없는 딸을 위해 배달음식을 주문하고 도착하면 현관에서 키핑 해서 쏜살같이 방으로 사라지는 큰 아이의 뒷모습만 보곤 했던 시간들..
확진자의 식사 후는 뒷수습이 더 관건. 질병관리청에서 보내온 문자 가이드에 따라 동거가족 중 비감염자가 있을때의 매뉴얼을 지키는데 온 창문을 열어 10분 이상 환기, 식탁과 접촉한 모든 것을 소독하고 먹은 식기들은 바로 식세기로 살균소독.. 삼시 세끼 밥 먹는 사이사이 온 집안 문고리를 닦고, 소독하고, 환기하고..
'아 이래서 격리보다 온 가족이 확진하는 게 덜 힘들다는 거구나'라는 사람들의 말이 절실히 와닿는 하루였다.
코로나의 많은 시간을 집콕과 집밥의 시간을 견뎌왔기에 온 가족 자가격리가 시작됐을 때 우리 가족은 차라리 피곤함이 덜어졌다고 생각했다. 더 이상 비감염자를 보호할 필요도 없고 '약 잘 먹고 밥 잘 먹고, 잘 자고 일주일을 푹 쉬자'이런 이야기를 하며 서로 잘 지내보자며 으쌰으샤 하기도 했다.
그런데.. 오류가 있었다.
처음엔 서로 먹고 싶은 것을 이참에 잔뜩 시켜서 먹어 보자고 했지만 한 두 끼 배달음식을 먹고 보니 그 뒤처리로 나오는 플라스틱 쓰레기와 분리수거가 문제였다. 일주일 동안 우리는 집 밖을 나갈 수 없는데 하루에 한 끼만 배달음식을 시켜도 우리의 분리수거함은 폭발할 듯 보였으니까.
그래서 새벽 배송 외의 배달음식을 중단했다.
밀 키트와 집 재료를 배분하며 세 끼를 챙기고 시간도 많으니 이 참에 빵도 좀 넉넉하게 만들자.. 싶었는데.. 평소라면 긍정의 힘을 계속 끌어올렸을 나의 에너지가 오미크론의 증세가 기침까지 확장되면서 점점 바닥이 나고 만 것이다.
"먹고 나서 일어나기만 할래? 그릇 정리랑 다 해야지!!"
"빨래 마르면 좀 개 주면 안 돼? 말하기 전에는 다들 나 몰라라지?"
"저녁은 그냥 좀 알아서 먹어줘.. 나 기침 때문에 머리가 흔들려.."
그 와중에 50세 생일을 자가격리 상태에서 맞이한 남편을 위해 밤새 푹 끓인 미역국과 갓 지은 솥밥을 준비하고 애들과 몰래 케이크 배달을 준비했다. 남편은 비교적 증상이 덜해서 주로 방에서 회사 업무를 보느라 바빴고 들쑥날쑥한 남편의 화상회의 시간 때문에 거실에서 주로 있다 보니 피곤해도 누울 수 없이 치우고 닦고 빨래하고, 다시 밥시간을 맞이하고.. 그 사이사이 나로하여 확진된 지인들의 소식에 위로와 미안함을 전달하고 먼저 접한 정보를 나누며 하루 24시간이 모자란 시간을 보내느라 내 몸은 증상의 호전되기보다 추가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신속항원검사를 받았던 이비인후과에서 전화진료를 신청하고 추가처방을 받고 약을 대리 수령하는 과정은 매끄러웠고 진료비는 국가지원이라 한 푼도 내지 않았다.(PCR 검사 전 미리 처방받은 약값만 냈다. 병원 키트 검사비랑) 워낙 폭증한 확진자로 인해 알림이나 문자, 검사 대기시간은 좀 지연되고 느리고 지난하긴 했지만 확실히 '케어 받고 있다'라는 느낌은 분명히 있었다.
동생이 대리 수령해 현관 앞에 두고 간 추가 약을 받고 안심하긴 했지만 몸은 점점 처지고 기침이 심해져 음식을 하기도 먹기도 힘이 든 상태가 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재택근무하는 남편, 온라인 수업하는 아이 둘이 점심시간도 다 미세하게 달라 돌 밥의 시간은 오후가 돼서야 정리까지 끝나고, 식기 세척기가 끝나면 다시 저녁시간이 돌아오는 악순환(?)이 계속되었다.
대분의 가족 자가격리 중에 엄마들이 제일 늦게 호전된다고 하던데.. 정말 그럴 수밖에 없겠구나 싶었다.
함께 확진된 지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도 다 비슷비슷했다. 초기 코로나 환자들처럼 격리시설에 들어가고 싶다는 희망도 있었다 ㅎㅎ 자가 격리하는 가족들을 돌보느라 엄마들은 잘 쉬지 못하니 제일 늦게 몸이 회복되고 몸도 마음도 다 지치는 그런 상황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