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충우돌 가족 자가격리 7일간의 기록: 격리 해제 그 이후
쓸고 닦고 멍하다가 다시 쓰고 읽고 빵 만들고,
운동하고 밥 먹고 치우고 멍하다가 다시 밥하고 치우고 잠 못 드는.. 그런 며칠을 지내고 있다.
일명 '선거 후 스트레스 장애' (PESD: Post Election Stress Disorder)가 자가격리 끝에 이어져 몸과 마음의 회복이 더디다.
다행히 아이들과 남편이 각자의 자리로 출근과 등교를 해서 선거 후의 내상에서 빠져나오는데 바닥을 치고 올라오는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확진과 자가격리를 거쳐 학교와 회사로, 그리고 혼자만의 집순이 생활로 돌아간 우리 가족은 급증하는 확진자 소식 속에서도 뭔가 일상의 회복을 누리고 있는 느낌이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매일 확진자 소식을 접하면서도 원격수업이 아닌 등교 수업을 하는 것 자체에 활기차다.
큰 녀석은 자가격리 중에도 원격으로 신입생 후배들의 동아리 온라인 면접을 매일매일 치르고 있었고,
학교로 돌아가서는 공부와 활동으로 바쁜 나날들을 앞에 두고 부담감과 설렘을 즐기는 듯 보였다.
문제는..
신 학기의 골든타임인 '개학 후 1주일'을 자가격리에 뺏겨 새 학년 학기 초 친구 사귐에 모든 사활을 걸었던 우리 집 막내, 둘째 녀석의 전전긍긍이었다.
내가 학교를 가는 건 '친구'들 때문이야.
중 2인 둘째는 학교 수업 시간을 지겨워한다.
좋아하는 과목이 있고 공부에 근성이 있는 고 2 언니를 이해 못 할 외계인으로 생각하고.. 하지만 비참한 성적이면 창피한 건 싫어서 나름 학원도 보내달라 하고 학원 숙제도 열심히 해가는 성실한 면도 있다.
대학이 아니더라도 원하는 기술을 배울 수 있는 길은 언제나 있다고 내 딴에 부담을 덜어 준다고 얘기하면
"왜 그래? 나도 대학 갈 거야~ 대학에 가야 연애도 하고 친구도 만나지~" 하며 발끈한다.
관계중심적이며 정이 많은 사랑스러운 둘째. 친구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죽고 못 사는 아이. 아빠의 주재원 근무 4년을 마치며 온 가족이 중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왔을 때 둘째는 초등학교 전학의 쓸쓸함을 경험했는데 지난해 새 집에 입주하면서 중학교 학창 시절까지 전학생으로 시작했다며 우울해했다.
어쩌나. 엎친데 덮친 격으로 코로나 시국이 되면서 그 좋아하는 친구들을 만들 기회도 없이 마스크와 원격수업의 새 학교 생활을 하게 되고 말이다.
대단지 아파트의 특성상 같은 학교 친구들을 사귈 기회가 많으리라 여겼고 외향적인 아이라 금방 친구를 사귈 줄 알았는데 코로나와 마스크는 아이들에게 그런 시간과 기회를 허락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이는 새 학년을 기다렸다.
중간에 전학 왔을 때 이미 친구 그룹이 다 형성이 됐던 터라 2학년 새 반에서 새 친구들과 인맥을 터 나갈 야심 찬 계획을 갖고 있었는데 어쩌면 딱 그 골든타임에 오미크론이 아이를 덮친 것이다.
같은 원격수업을 해도 기숙사 생활을 오가며 돈독한 친구관계를 형성한 큰 아이는 거리두기가 완화되면 제한된 자유 속에서 '절친들과의 우정'을 쌓아갔다. 그런 언니를 늘 부러워하며 감염의 두려움에 옛 동네의 친구들도 잘 만나지 못하고 겨우 줌 동창회를 통해 회포를 풀곤 하는 아이를 볼 때마다 왠지 모를 미안함과 안쓰러움을 느꼈다. 전학을 괜히 시켰나 싶었고, 이사를 꼭 왔어야 했나 하는 근본적인 후회도 안 해본 것은 아니었다.
친구가 생긴 것 같아 엄마!
자가격리 동안 원격수업의 지루함에 용트림을 하더니 정작 등교를 하면서도 시큰둥.
"선생님 어때? 같은 반 된 작년 친구 있어? 짝은"
"별로야, 없어, 다 혼자야, 짝 없어"
엄마의 따발총 질문에 돌아오는 건 건조한 단답형 대답.
"친구들은 좀 사귀었어?"
"기대하지 마, 같은 반이었던 애도 하나도 없고, 어색해 죽겠어"
동네 아이들과 아파트 셔틀도 같이 타고, 집에 올 때는 뒷산 산책로도 같이 하교도 하는데 아이는 그런 건 '찐친'이 아니란다. 그냥 같이 다니는 협력적인 관계? 뭐 그런 거라는데..
그러던 어느 날 주말에 언니가 온 금요일 와다다 하는 소리와 함께 현관을 들어선 녀석은
"엄마! 나 친구가 생긴 거 같아!" 하며 같은 반 친구가 같은 아파트에 살고 있다는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고 호들갑을 떤다. 다른 도시에 살다가 올해 전학 온 친구는 MBTI도 저랑 똑같아서 왠지 hommie (미드를 즐겨보더니 ㅎㅎ) 느낌이 난단다.
아. 왠지 녀석의 얼굴에 그 옛날 까불이의 생기가 다시 돌기 시작했다.
드디어 자기에게도 '친구'가 생겼다며 나의 유일한 등교의 이유인 '친구 만나기'가 성립되었다고 난리법석. 그런 동생을 지켜보는 큰 녀석의 표정이 정말 사진으로 남겨놓고 싶을 만큼 희귀했는데 큰 녀석의 관점에서 매우 희한한 외계인인 동생은 드디어 1년 만에 '친구'라고 말할 수 있는 관계가 생긴 것에 감격했고 이제 더 이상 아침 등교와 하교가 지루한 일상이 아닐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 같았다.
그렇구나. 이 코로나 시국에도 우여곡절 끝에 동류는 동류를 알아보고 밥 한번, 차 한 번 같이 마실 수 없게 되어 끝끝내 마스크 벗은 하관을 볼 수 없다 해도 눈빛을 나누고 기호(taste)를 눈치채며 우리는 관계를 찾고, 맺고, 쌓아가는구나.
정치성향을 드러내는 것이 조심스러워 서로 시치미 떼다가 우연히 같은 후보를 지지한 것을 안 후 나의 운동 멤버는 서로의 PESD를 보듬는 위로의 친구가 되어 한층 친밀해졌고 늘 내편인 나의 반쪽은 아파트에서 만난 자전거 동호회 멤버들과 중년 남자의 갱년기를 함께 이겨내는 제주도 여행을 계획 중이다.
기다리는 친구가 있는 학교로 가는 아이의 아침 등교는 조금 빨라졌다.
요즘 인싸템인 포켓몬 빵을 사기 위해 아파트 편의점 앞에서 친구랑 만나기 위해서란다.
현관을 빠져나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성호를 그으며 엄마의 기도를 하는 나의 마음도 한층 가볍다.
이렇게 조금씩, 느리지만 확실하게 우리는 일상으로 다시 돌아가는 중이다.
이 녀석. 친구가 생기자마자 매일 밤 단지 내 편의점에 포켓몬 빵을 사러 밤마실을 나간다.
방금 들어와서 포켓몬빵이 품절됐다고 좌절하더니 하지만 더 좋은 일이 있다며 뭘 보여주는데,
"엄마, 대박, 친구가 허경영 포카(포토카드) 줬어. 이거 완전 인싸템이야 대박. 언니한테 톡 보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