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부의 온기를 느끼면 보다 행복할 수 있다.
새로 일을 시작하면서 지하철을 타는 일이 잦아졌다. 혼잡한 지하철 안에서 나는 정신승리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곧 깨달았다.
오전 9시, 봉천역 2호선은 깊은 땅 속에서 정차했다. 칙칙한 조명과 소음 속에서 사람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휴대폰을 들여다보며 각자 정신승리를 하는 듯 보인다. 정거장마다 승하차하는 사람들로 분비기를 반복하지만, 자신이 내릴 곳이 아닌 이상 아랑곳할 필요가 없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고 빠져나가는 동안, 무수히 많은 사람들의 사이에 끼어 서로 몸이 닿기도 한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러한 접촉을 특별한 인연이라 여기지 않는다. 그러는 사이, 사람은 스쳐 지나가는 존재로 학습되고, 접촉은 무의미한 활동이라는 무의식을 만든다.
그래서 서울의 출근길은 내게 차갑고 서글픈 풍경이다. 서로의 살결이 닿을까 움츠리고, 피하려 한다. 그러나 좁은 지하철은 허용하지 않는다. 서로 꼭 붙어있게 만든다.
그럴수록 사람들은 더욱 자신만의 공간을 지키려 한다. 눈은 휴대폰에 고정시키고, 귀에는 이어폰을 꾹 박아 넣는다. 물리적으로 닿는 것들에서 최대한 도망쳐 기분을 망치지 않아야 출근길이 보다 덜 힘들기 때문이다. 나도 출근하는 날이 쌓이면서 그러한 신념이 생겨버릴 것 같다.
우리의 피부는 혼란스러울 것이다. 피부를 통해 전달되는 감각은 '너는 혼자가 아니야'와 같은 다정함일 것인데, 혼잡한 출근길에서 교란이 일어난다. 서로 닿을 때마다 '피해야지', '모른 척해야지.'와 같은 생각을 반복해야 한다. 정신적인 피로감은 자연스럽게 시작된다.
분명 우리의 몸은 서로 닿고 온기를 나누며 즐겁게 살아가도록 설계되어 있는데, 서울의 인구 밀도만큼 그 온기가 뜨겁지 않다. 아니, 오히려 차갑게 얼어붙은 것 같다. 물리적인 접촉이 피곤한 사회는 불행한 것 같다.
휴식을 갈구하는 사람들은 결국 휴대폰을 집어든다. 직접적인 접촉과 소통 대신, 비대면 소통으로 몸과 마음의 쉴 곳을 구한다. 너무나 효율적이지만, 결국 피부를 통해 신뢰와 행복을 느끼는 일들과 멀어지게 된다. 어쩌면 건강한 즐거움이 상실되어 가는 건지도 모르겠다.
사람의 외로움은 피부에서 시작되는 거라고 생각한다. 사람과 사람이 서로 닿을 때 다양한 감정이 싹트고, 마음과 마음이 풍요로워지며, 때로는 치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우리는 그러한 생활에서 점점 더 멀어져 가고 있다.
토닥이고, 쓰다듬어 주는 일들이 생활 속에 늘 일어날 수 있도록 작은 관심을 갖는 것이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게 만든다. 이 일은 AI도 대체할 수 없는 일일 텐데, 우리는 우리가 가진 피부의 소중함을 너무 모르고 살아가는 것이 아닐까.
출근 시간의 불필요한 접촉은 싫다하더라도, 피부와 피부가 닿는 온기만큼은 잃지 않기를, 사람과 사람의 물리적 만남이 불필요한 것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