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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여름을 보내며

a.k.a 마케도니아 시댁 방문 & 그리스 여행

by 라이팅게일
알렉산더 대왕 조각상이 있는 마케도니아 수도 스코페 광장.

1. 7월 초 딸아이가 졸업하자마자 며칠 후 바로 남편의 고향인 마케도니아로 떠났다. 몇 년 전 남편의 구 여친 시절 방문과는 다르게 웬걸 이건 본격 시댁 방문이었다. 말도 문화도 전혀 다른 그곳에서 나는 양가의 감정을 느꼈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시집살이인지 아니면 그저 순수한 문화 차이로 해석할 것인지 경계 없이 미지근하고 끈적했다. 가족으로 바라보니 좀 더 마음이 쓰이면서도 어떤 상황들은 전혀 이입이 되지도 않고 공감 안 되는 그저 외국인. 즐겁고 신기한 문화체험과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름하에 부담스럽고 또 마냥 신나지만은 않은 경험. 낮에는 43도까지 올라가면서도 밤에는 또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그곳의 지중해 날씨만큼이나 내 마음도 그렇게 하루에도 몇 번씩 밤과 낮을 오갔다.


과거 오스만튀르크의 흔적 Old Bazaar.

2. 복잡한 마음과 함께 유럽의 작디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남편과 동북아시아 끝에 있는 작은 나라에서 태어난 내가 다른 대륙에서 만나 가족을 이루고 산다는 사실이 새삼 신기하고 벅찬 마음이 들었다. 결혼 후 거의 24시간을 붙어 사느라 까맣게 잊고 있었다. 우리가 사실은 거의 불가능한 확률로 만난 얼마나 대단하고 특별한 인연인지.


남편 친구 커플과의 즐거운 시간.

3. 남편 덕분에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 마음을 채웠다. 대체적으로 마케도니아 사람들은 순수하고 마음씨가 곱고 정이 넘친다. 무뚝뚝하시면서도 세심하게 챙겨주시는 시어머니, 특히 주디를 너무 예뻐하셨다. 말이 잘 통하지 않아도 함박웃음 지으며 매번 이것저것 챙겨주는 조카.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남편의 베프, 특히 나이 든 아버지가 너무 사랑스러워서 그는 아버지와 대화할 때마다 아버지 이마에 뽀뽀를 한다. 보기만 해도 사랑스러운 부자였다. 게다가 이 베프는 다른 도시에 살아도 혼자 계시는 남편의 어머니를 챙기러 그의 아버지와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대단하고 멋진 우정이다. 딸램은 남편의 또 다른 친구 부부의 리더십 넘치는 아들 덕에 현지 고등학생 30명 정도와 문화 교류하는 기회도 가지고... 등등! 온 사랑과 관심으로 마음을 꼭꼭 채웠다. 감사한 시간이었다.


그리스의 새파란 하늘과 바다 - 특히 바다가 정말 정말 새파랗다.

4. 서로 밖에 없는 낯선 곳에서 우리 가족은 24시간 똑같은 일정으로 똘똘 뭉쳐 지냈고 더 깊고 많은 대화를 많이 나눌 수 있었다. 딸아이 학교 비하인드 스토리도 듣고 일상에서 벗어난 다른 상황 속에서 남편도 나도 더 많은 대화와 마음을 나눴다. 덕분에 우리 가족은 더 깊어지고 더 쫄깃 딴딴해진 느낌.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있는 Wasaga Beach - 세계에서 가장 긴 해변을 가진 호수로 길이가 자그마치 14킬로나 된다.

5. 캐나다에 돌아와서도 가까운 곳 틈틈이 여행하며 소소한 시간들을 보내다 보니 어느새 엊그제가 벌써 새 학년 시작일이었다. 아이와 함께 오랜만에 긴 여행을 떠나 보니 코로나 상황 속에 아이가 훌쩍 컸음을 느꼈는데 특히 내가 이제 더 이상 아이를 돌보면서 하는 여행이 아닌 아이도 제 몫을 해내는 것뿐 아니라 우리가 놓친 짐이나 일정을 챙겨줄 정도로 많이 성장했다! 본격 고등학생이 된 딸램을 보니 앞으로도 좋은 날들이 있겠지만 이번 여름처럼 딱 달라붙어 지냈던 것과 같진 않겠지 싶은 생각에 올여름을 보내기가 참 아쉽다.


아침부터 부지런 떨며 싼 김밥.

6. 지난 9월 공식 고등학생이 된 딸램. 첫 등교니까 특별히 첫 점심 도시락은 김밥. 오랜만에 아침부터 일어나 김밥 말고 분주하고 활기찬 아침. 캐나다에서 처음으로 차로 데려다주는 등굣길. 이렇게 또 계절이 바뀌고 새로운 시간이 시작된다.

뜨겁게 시끌벅적하고 새로운 행복으로 가득 찼던 2022 여름을 보내며 앞으로 새로운 우리의 시간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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