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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팅게일 Mar 23. 2024

과거의 불행에서 벗어나는 방법

병가일기 #8

2년 전 나는 하루 온종일 과거의 불행들을 재생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뮤직 비디오를 반복해서 틀어 놓은 커피숍에 앉아 있는 것처럼.


문제는 내 불행이라는 뮤직 비디오를 감상할 때면 그저 감상에 그치는 것이 아닌 그 당시 상황으로 빨려 들어가 화내고 슬퍼하고 우울해하며 힘들어했다는 점이다. 마치 지금 그 일을 겪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이 뮤직 비디오는 랜덤으로 방영되는데 어느 날은 어릴 때 부모님께 맞은 장면이 나오거나 이혼 재판이 진행되던 어느 날이기도 하고, 이른 아침 자고 있던 어린 딸아이를 둘러업고 돌보미 선생님께 마음 졸이며 맡기고 출근했던 그런 상황들이라거나, 아이를 6개월 넘게 만나지 못하면서 남편은 내 마음을 받아줄 기미조차 없던 그 황량하고 쓸쓸했던 그 시절, 믿을 건 오직 나밖에 없었던 캐나다에서 홀로 취업 준비를 하던 그런 상황 등이었다.



끝없이 이어지는 기억들을 마주하며 당시 감정을 고스란히 느꼈고 그것들은 날이 갈수록 더욱 강렬해졌다.


강렬한 감정이 지나가면 고약한 자괴감이 찾아왔다. 과거의 내가 기껏 고생해서 과거의 불행들을 모두 해결하고 겨우 현재의 상황을 만들어 놨는데 정작 당시의 나는 애써 만든 새로운 환경에 이입하지 못하고 있었다.


돌이켜보면 불행들이 한창 진행 중일 당시 내 마음은 나를 좀 봐달라고, 나를 좀 위로해 달라고 했다.


그럴 때마다 나는 내 마음에게 이렇게 말했다.


'잠깐만 나 지금 바빠, 이 일만 끝내고 네 이야기 들어줄게. 지금 이 상황 안 보이니? 징징대지 좀 마. 네가 지금 이 불행을 만들었잖아. 징징거릴 시간도 없지만 너는 무엇보다 징징댈 자격이 없어'


나는 나를 좀 돌봐달라고 소리치는 그 마음들을 깡그리 무시한 것도 모자라 스스로를 혼내고 벌주기까지 했다. 당시 부모님의 나를 향한 온갖 비난의 목소리와 결합되어 괴상한 융합체가 되어버렸다.


모든 것이 해결된 그제야(물론 그간 쉼 없이 달려오느라 모든 에너지를 소진해 버린 것도 있겠지만) 그동안 쌓인 마음들이 한꺼번에 터져 결국 쓰나미처럼 나를 덮친 것이다.



아주 생지옥이 따로 없었다.



원하는 환경을 만들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 결국 공황장애 엔딩이라니. 이제 좀 행복해질까 싶어 안도할 그때 몹쓸 병을 얻고 그걸 또 '극복'해야 한다니. 나는 그렇게 삶의 의지를 잃었다. 다른 사람들은 이렇게까지 힘들지 않은 것 같은데 내게만 유독 긴 겨울에 억울한 마음뿐이었다.



희망을 잃어버린 그때 가족 덕분에 죽을 엄두도 못 내고 그렇다고 나아가지도 못하며 과거의 불행을 반복 재생하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할 그때 우연히 읽은 어느 뇌 과학책에서 이런 구절을 보았다.



'사람의 뇌는 현재와 과거의 경험을 구분하지 못한다'



이보다 나의 현재 상황을 더 잘 설명해 준 구절이 또 있을까.



당시 나는 하루의 대부분의 시간을 과거를 경험하는데 썼다. 무엇보다 그 느낌은 생생했고 더욱 강렬해지고 있었기에 저 말의 뜻을 확실히 이해할 수 있었다. 나의 좌절감이 조금은 누그러드는 순간이었다.



'그러니까 이게 내 잘못이 아니라 우리 뇌가 그렇게 생겨 먹은 거구나?'



근데 Now What?



그래서 어떻게 하면 되는데? 저 말에 죄책감은 덜어냈지만 내 눈앞에 무한 반복되는 불행이라는 뮤직비디오를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이 뮤직비디오는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동으로 재생되었으니까.




명상은 생각을 비워내는 행위다. 명상을 처음 배울 때 떠오르는 생각들을 따라가지 말고 지켜보는 - 자신과 생각을 분리하는 연습부터 한다. 그런데 이게 말처럼 쉽지 않다. 생각과 나를 분리해 내고 이입하지 않고 그저 지켜보는 것이란. 지켜보기 위해 생각에 제목을 붙인다. 가령 내가 이따가 먹을 점심 메뉴를 생각하면 - 점심메뉴 고민, 이어지는 그에 따른 장보기 - 이게 잘 되면 생각과 그다음 생각이 이어지는 그 짧은 틈사이를 주목하라고 한다. 눈 깜짝할 사이보다 더 짧은 그 순간은 텅 비어있고 고요하다. 그 순간을 지켜내어 그 순간에 보다 더 오래 머무르는 게 내가 배운 명상이다.



그 짧은 순간을 낚아 채리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반대로 생각해 보면 우리 인간은 생각이란 것을 늘 하는 존재다. 생각을 멈추기란 대단히 어렵다.



여기서 힌트를 얻었다.



내가 경험하고 있는 불행의 뮤직 비디오를 어떻게 하면 끌 수 있을까?



답은 그 생각을 없애는 것이 아니었다. 다만 그 불행의 기억을 새로운 기억으로 대체하는 것에 있었다.



마치 길을 없애는 것처럼.



길을 없애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



답은 더 이상 그 길로 가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새로운 길로 가는 것이다.



과거 불행이라는 생각의 길을 없애기 위해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기로 했다. 나는 과거의 불행을 반복함으로써 머릿속에 그 길을 점점 더 선명히 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고 뇌는 실제로 지금 겪는 일인지 아닌지를 구분을 못하니 불행을 생각할 때마다 다시 경험하는 것으로 받아들여 내 몸에 스트레스로 인한 화학반응을 만들어 냈다.



이미 난 길을 바로 없애긴 어려워도 그 길로 더 이상 다니지 않는다면 결국 시간이 지나 잡초나 풀로 무성해질 것이고 종국에는 애초에 이곳에 길이 있었던 것조차 모르게 되지 않은가.



새로운 생각의 길을 만들기 위해 나는 두 가지를 했다.


다음 화로 이어집니다. 



도움이 된 책:


✅<나를 알고 싶을 때 뇌과학을 공부합니다.> by 질 볼트 테일러 


✅<Breaking 당신이라는 습관을 깨라> by 조 디스펜자 


✅<커피 한 잔의 명상으로 10억을 번 사람들> by 조셉머피 & 오시마 준이치 


✅<천재인가 미치광이인가 도파민형 인간> by 대니얼 Z 리버먼 & 마이클 E. 롱 


✅<마음 챙김이 일상이 되면 달라지는 것들> by 캐럴라인 웰치 



#라이팅게일 #병가일기 #You_Will_Never_Walk_Alo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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