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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저드저드 Apr 04. 2020

3. 폭식에 대하여


자, 오늘의 글쓰기를 위한 준비를 마쳤다. 첫 번째 만족스러운 식사로 충분히 배를 채웠다. 두 번째 집 밖으로 나왔다. 햇빛을 쐬고 카페까지 걸으며 기분 전환을 한다. 세 번째 글을 시작하면서, 글을 쓰는 중간에, 그리고 가장 중요한 마지막 글을 다 쓰고 나서까지 ‘무너지지 말자‘를 수시로 되뇌이며 정신을 붙잡을 것. 오늘의 글쓰기는 준비가 필요하다. 오늘의 주제는 ‘폭식’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이 주제에 대한 글을 쓰는 도중에 글을 집어 치우고 몇 번이나 폭식을 했는지 모른다. 식이 장애를 순순히 인정하는 바이지만 글을 쓰기 위해 ‘폭식하는 나’를 뚫어지게 살펴보는 것은 꽤 힘들었기 때문이다. 자 오늘은 일단 글을 쓰기위한 준비를 마쳤다. 시작해보자.


주변 사람들에게 나의 폭식증에 대해서 알릴 때 그들의 첫 문장은  

" 도대체 얼마나 먹는데? "


가장 최근 폭식 메뉴를 살펴보자.  

오리 고기 140g에 샐러드로 건강하게 식사를 시작했는데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았다.

서브웨이 참치 샌드위치, 족발 200g, 파운드 케익, 시리얼(우유가 남으면 시리얼을 더 넣고 시리얼이 남으면 우유를 더 넣는 리필을 셀 수 없이 한다. 결국 1L짜리 우유는 다 먹고 시리얼은 1/3 봉지가 남았다.)을 더 먹었다.

배는 이미 부르지만 아직도 무엇이 채워지지 않았다. 홀린듯이 빵을 사러 뛰쳐 나갔다.

크림치즈 시나몬 롤, 마카롱 아이스크림, 마카롱 3개, 티라미수 케익, 말차 타르트, 치즈 케이크.

단 것을 먹고나면 그 다음엔 짜고 매운 것이 땡긴다. 불닭 볶음면, 컵라면, 떡볶이….

(아 음료는 메뉴 카운트에서 뺐다. 토를 쉽게 하기 위해서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충분한 액체류 섭취는 필수다!)




그들의 두 번째 질문.


“하루 종일 이걸 다 먹은거야?”

" 아니, 30분 동안 "



 후.. 이전에 이 부분을 쓰면서 몇 번을 무너졌다. 화려한 음식들의 나열이 나를 물리적으로, 심리적으로 굶주리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무엇을 먹었는지 식단 일기를 뒤지며 음식에 대해 끊임없이 생각하는 것이 나의 식탐과 왜 그토록 먹어야 했는지 그 날의 심리적 트리거를 계속해서 자극했고 나는 번번히 쓰던 글을 모두 지워버리고 지갑을 가지고 빵집과 편의점으로 달려가곤 했다. 그러나 오늘은 다르다. 나는 오늘 배가 충분히 부르다.

계속하자.  


 그들의 얼굴에는 조금 놀란 표정이 보인다. 그러나 그런 표정은 내게 무례할 지 모른다고 생각하는지 놀란 표정을 감추고 익숙한 세 번째 문장을 던진다.  


“에이, 그냥 어쩌다 많이 먹은 거 아니야? 나도 가끔 과식하는 날 있어.”  



과식과 폭식은 너무나 다르다. 나도 매일 폭식을 하는 것은 아니기에 어느날은 적당히 먹기도 하고 어느 날은 과식을 하기도 한다. 폭식은 단순히 음식을 많이 먹는 것이 아니다. 조절 능력을 완전히 잃는 것이다. 배가 터질 것 같아도 음식을 계속해서 위장에 넣는다. 먹는 것이 아니다. 집어 넣는 것이라는 표현이 더 알맞다. 울면서 먹는다. 먹기 싫은데도 계속 먹게 되서 울면서 먹는다. 그만 먹고 싶은데 조절이 안되니까 눈물이 난다. 그런데도 먹는다. 먹으면서도 계속 다음에 먹을 음식을 생각한다. 폭식하는 동안에는 정말로 신기하게도 음식의 맛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폭식은 음식은 씹고 삼키는 행위를 충족시키는 수단일 뿐 맛을 즐기고 그것으로부터 만족감을 전혀 느낄 수가 없다.


 숨을 쉬는 것이 고통스러울 정도로 위장에 음식을 채워넣고 나면 그 뒤엔 끔찍한 포만감이 몰려온다. 음식을 먹고 나서 뇌의 포만중추를 자극하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이미 물리적으로 꽉 차 있는 위장에 지나친 포만감까지 몰려올 때면 정말이지 죽고 싶다. ‘숨을 쉴 수가 없어. 또 이렇게 되버렸구나.’ 그리고 가장 두려운 생각. ‘살 찌면 어떡하지?’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고 나면 저항없이 자연스럽게 화장실로 가서 변기에 얼굴을 처박고 음식을 토해낸다. 죽는 것보다 살 찌는 것이 더 무섭다. 폭식을 하고 토해낸 이후의 나에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그 다음 일정이나 약속이 있다면 모두 취소 해버린다. 꼭 해야할 중요한 일들도 그 순간엔 어찌나 가벼운 것들로 변해 버리는지. 삶의 아무 의욕도 남아 있지 않은 상태로 멍하니 넷플릭스 드라마를 보면서 하루가 어서 끝나기만을 기다린다.  


 폭식 욕구가 들었을 때 그것을 정면으로 마주쳐 이겨내본 적이 아직은 한 번도 없다. 일단 폭식에 대한 욕구가 들면 나는 번번히 무너진다. 그래서 그 욕구를 참는 방법에 대해서는 쓸 수가 없다. 단지 지금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폭식 이후에 폭식을 하게 만들었던 이유를 되짚으면서 ‘무엇 때문에 폭식을 하였는가?’ 생각하고 그 이유를 피하는 수동적인 방법이다. 내가 폭식을 하는 이유는……


 앗! 글을 쓰다보니 오늘의 글쓰기를 위한 준비가 끝나간다. 슬슬 배가 고프다. 폭식을 일으키는 첫 번째 이유는 내가 원하지 않는 금식, 단식이므로 오늘의 글을 급하게 마치며 식사를 하러 가야겠다. 오늘은 가지 라자냐를 만들어 먹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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