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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HWA Jan 18. 2023

분재화_모래알과 같은 인간관계를 불안해하는 당신에게

끈끈하면 금방 썩어요

‘우리가 남이가’
‘우린 전생에 쌍둥이었나봐’
‘언니 너무 좋아요 진짜 언니랑 친해지고 싶어요’
끈끈하게! 우리는 하나다



물과 나무는 서로 적당히 기대어 편안하게 공생한다. 

여기에 제일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이다.

사주팔자를 보는 명리학에서도 유독 흙만 4가지로 분류가 된다. 

비옥한 토양인지, 큰 흙 무덤인지, 영양분이 없는지, 작은 모래알인지로 나뉜다. 


왜 흙만 이렇게 많을까?


모든 자연은 땅에서 시작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닐정도로 흙은 그만큼 생명의 장단, 모양, 컬러를 정하는 기본이다. 토양이 물을 잘 흡수하는 경우 눈에 띄게 나무들이 빠르게 성장을 보인다. 

그렇지만 과도한 관심으로 물이 자주 나무와 만나게 되면, 토양은 금새 질퍽해져버리고, 물은 제대로 배출되지 않게 된다. 벌레가 생기고 뿌리가 통기가 안되어 썩어버리기 쉽다. 뿌리가 썩게 되면 그 안에서 곪는 상처는 뒤늦게 인지된다. 나뭇잎으로 그 과습이 표출될 때는 다시 원래의 상태로 복원하기가 힘들다.





나는 연초가 생일이라 어렸을 때는 늘 불만이었다. 하필 겨울방학 때 생일이어서, 생일 축하를 덜 받는 상황이 억울했다. 그렇지만 나이가 든 뒤에 맞는 연초의 생일은 나에게 작년 한 해의 연말결산이다. 내가 지난 해에 누구랑 친했고, 그 친구와 무엇을 하였고 등 인간관계로 얽힌 나의 삶을 요약해준다.


이번 생일은 크게

가족, 혈연으로 이어져 뗄 수 없는 관계 

비지니스 차원의 형식적인 관계

작년에 함께 희노애락을 함께한 팀원  

3-5년 이상이 된 멀지만 가깝고, 가깝지만 먼 관계

이렇게 안부를 주고 받았다.


여기에 마지막 카테고리는 늘 나에게 신기한 울림을 준다. 거의 3-5년이 넘은 관계이지만 딱히 특별하게 만나는 것도 아니고, 한번도 빈말이더라도 '와 너는 나랑 똑같다' 라는 불타오르는 끈끈함을 형성하지도 않았고, 그냥 안부를 주기적으로 묻고 잘 지내는지를 확인하는 담백한 사이다, 그렇지만 이 관계가 정말 꾸준하게 오래간다. 


예전에는 나도 사람 성격이 좋아보이는 먼저 다가오는 사람,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 좋다고 표현 많이 해주는 사람에게 혹하여 내 모든 것을 퍼주며 관계에 몰입했다. 그렇지만 그렇게 끈끈한 만큼 끝은 좋지 않았다. 내가 상처받거나 혹은 내가 상처를 주거나, 언제 좋았냐고 생각이 들 정도로 멀어졌다.



글머리의 말을 다시 생각해보자. 

예전같으면 '그럼요. 당연하죠'라고 했을 말에 이제는 이렇게 생각한다.


'우리가 남이가'

 그럼 남이지 가족인가? 내가 반대로 말했을 때 당신은 어떻게 해줄것인가?


‘우린 전생에 쌍둥이었나봐’

 쌍둥이가 얼마나 싸우는지 아는가? 그들은 싸워도 혈연으로 묶여있어서 다시 화해라도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똑같을 것을 기대했다면 조금이라도 다름을 발견할 때 바로 멀어지기 마련이다.


‘언니 너무 좋아요 진짜 언니랑 친해지고 싶어요’

이 말은 언제든지 언니 너무 별로에요 라는 말로 등 돌릴 수 있는 얕고 일시적인 팬덤인 경우가 많기에 이 달콤한 말을 믿어서는 안된다.


‘끈끈하게! 우리는 하나다’

그러다가 다 파국으로 가는 수가 있어..



마치 만나자마자 나랑 너무 비슷하다고 호들갑을 떠는 관계는 금방 식는다.

매일 붙어다니면서 영혼의 단짝처럼 생각하는 관계는 하나라도 삐긋거리는 틈이 보이는 순간 쫙 하고 갈라진다.

내가 너무 좋아하는 상대는 집착이 되어 끊어지고, 나를 너무 좋아하는 상대와는 내가 답답함을 느끼고 그 만큼의 정이 생기지 않아 늘 어색하게 된다.


그런의미로 결혼은 내가 외롭지 않을 때, 나 혼자도 잘 살때 하는 것이고,

내가 누군가와 오랜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면 나도 내 자체로 완전하고 상대도 그 자체로 완전한 상태에서 만나야 편안하다. 너무 끈적이지도 너무 이질적이지도 않은 모래알이 제일 적당하다.




분재는 일반 관엽식물들과 식재방법이 다르고 키우는 것이 까다롭다. 덮어놓고 키우다보니 무럭무럭 자랐다는 말은 분재에게 해당하는 말이 아니다. 분재는 계절감을 드러내기는 하지만 몸짓을 키우지 않기 때문에 나의 손바닥만한 분재가 내 품에 들어왔다면 10년이 지나도 그 크기 그대로일 것이다.


분재의 이런 특징을 만들어준 제일 큰 요소는, 흙 배합이다.

늘 그 상태로 계절감을 느끼며 존재하는 분재를 식재하며 오늘도 호들갑을 떨거나 끈끈함을 강요하거나 무언가 기대를 하지 않는 관계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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