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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DOHWA Jan 17. 2023

목질화: 인생에 역풍이 불 때가 기회다.

역풍을 즐길 줄 알아야, 바람을 다스릴 수 있다.

목질화 木質化


목질화란, 목본식물이 자라면서 바람을 맞고 뿌리, 줄기 부분이 단단해지는 모습을 말한다. 초록빛 여린 줄기가 아닌 비바람을 뚫고 견디면서 단단한 나무가지가 되고 목대가 두꺼워진다.




제한된 작업 공간과 그보다 더 제한된 예산으로는 예쁘다고 모든 식물을 다 사입할 수 없다. 

식물 사입 초창기에는 쇼핑을 할 때의 충동구매와 같이 내 눈에 예쁘게 보이는 나무를 모두 품었다. 그렇지만 예쁜 것은 오래가지 않았고, 단적인 예로 홍매화와 설유화를 제일 좋아하지만 그들이 제일 아름답게 만개할 때는 4월 중에서도 고작 10일이 최대이다. 예쁘다보다는 '가치있다'에 점점 무게중심을 두면서 사입을 너와 내가 모두 가치를 느낄 수 있는 방향으로 하게 되었다. 특히 단순히 예쁜 것을 넘어서 나무 자체가 스토리를 갖고 있을 때, 주저하지 않고 바로 사입을 한다. 목질화가 잘된 나무는 이러한 사입기준에 적합한 예시이다. 




항상 바람이 순풍으로 흐르지 않듯, 예기치 못한 곳에서 역풍이 불기도 한다. 

나에게는 무조건 안좋은 상황은 피해야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왜냐하면, 나의 정체성은 내 스스로 존재 자체에서 형성된 것이 아니라, 주변의 시선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얘는 진짜 잘한다. 너무 잘한다" 라는 말은 나를 더더욱 완벽주의로 만들었고, 늘 나를 옥죄었으며 스스로에게 조금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았다. 사람이 좀 편하게 살면서 이런 경험 저런 경험 다양하게 해봐야 다채로워 지는데, 내가 경험해야할 것들과 결과는 늘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나는 남들처럼 여유를 부리며 인생을 '경험'할 여유도 없었다. 


처음으로 공황진단을 내 귀로 들었을 때 나는 무너졌었다.

사실 그 확진을 받기 일년 전부터 나는 그 증상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었다. 그렇지만 마주할 용기가 나지 않았다. 공황을 어떻게 다스릴지 보다 이게 알려졌을 때 와전되고 다시 상처받을 그 상황이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하필 나는 공황에 걸렸나 하며 그 상황 자체를 탓하고 최대한 식은땀이 나는 상황에서도 나의 어색함을 티 내지 않으려고 애썼다. 사회의 시선으로 내가 존재하기에 나의 명예에 흠이 가는 일은 상상하기도 싫었고 마주할 용기도 없었다.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숨이 점점 쉬어지지 않을 정도로 답답했다. 

다 내려놓고 제주로 내려가 한달동안 외부의 평가 없이 몸이 흘러가는 대로 살았다.

아침에는 녹차밭을 거닐고, 저녁에는 바닷가를 걸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하루는 남원읍 바닷가를 걷는데 근처에 귀여운 노보단이 보였다. 나뭇잎이 복숭아 솜털을 닮아 좋아하는 식물인데 신기하게 목대가 울퉁불퉁하였다.

일자로 매끈하게 잘 뻗어있다가 갑자기 뚱뚱한 목대로 변했다가 다시 원래의 목대로 돌아왔다.


"이건 왜이래?"

나의 물음에 어머니가 말해주셨다.

"목질화되서 그래. 여기가 바닷가라서 해풍도 심하고 이 주변에 있던 애들은 꺾이거나 죽었는데 얘는 버티려고 용을 쓰다보니까 이리 두꺼워졌나보네"

마치 훈장과도 같은 의연함이 전달되었다.


목질화가 잘 된 목노보단이, 말없이 그 자체로 나에게 깨달음을 주었다.

“너는 아직 멀었다.
이런 걸 겪고 비바람을 마주하면서 단단해져야 고태미와 고풍스러움이 나오고
비로소 삶에 의연해질 수 있는 것이란다.”




꺾이느냐 견디드냐

견디면서 어떻게 시간을 보내느냐를 계속 생각하였다.


그곳에서 나는 what / how 가아니라 Why부터 생각하기로 했다. 내가 어떤 사람으로 보여야 하는가,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칭찬받는가, 내가 어떻게 내 아픔을 최대한 뒤로 미뤄야 하는가 숨겨야 하는가..는 모두 how what 에 대한 질문이다.

나는 그 질문을 멈추고 왜에 집중하였다. 

내가 왜 힘들까, 내가 왜 숨을 못쉴까, 어떤 상황에서 숨을 못쉬는가 하는 이야기는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나는 어떨 때 행복한지 자아반문을 끊임없이 하게 되었다. 사회에서 그 의미를 찾던 사람이 점점 자아의 정체성을 찾고 자존감이 단단해 지면서, 주변의 시선으로부터 점점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이다.





식물은 말없이 위로를 해준다. 목질화가 된 식물을 보게 되면 나는 주저없이 그 식물을 입양하여 어울리는 화분에 식재하고 그 스토리를 써준다. 받는 사람에게 말없이 나만의 방식으로 위로를 건네는 것이다. 식물이 갖는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편지 한통과 함께 전달했을 때, 식물을 분양 받은 사람에게는 자신만이 알고 있는 더 깊은 이야기가 더해져 때로는 함께 살아갈 용기가 생길 수도 있다. 때로는 아무도 모르는 나의 이야기를 함께 해주는 반려자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힘이 난다. 그리고 그 시기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정면으로 마주하며 응시하는 것만으로도 목대가 굵어진다. 애써 적응하는 치료도 아니고, 도망가는 회피도 아닌, 성찰이 될 때 진정한 목질화는 완성된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나만의 것이 되어 다른 누구도 따라하지 못하는 나의 훈장, 특색을 만들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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