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을 담아내는 그릇, 중년의 오늘

by 아나키스트

인생은 우연의 산물임을 중년이 된 지금에야 비로소 깨달았습니다.

철학의 사조가 필연론에서 우연론으로 옮겨간 것도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지요.

우리는 왜, 무엇 때문인지도 모른 채 이 세상에 왔고,

선택권도 없이 '나'라는 우연을 부여받았습니다.


오늘 이 순간의 '나'는 나의 선택과 노력의 결과라기보다,

수많은 우연이 겹쳐진 산물입니다.

이것을 인정하기란 참으로 힘들고 불편한 일이지만,

그것이 삶의 진실입니다.

물론 우리는 동기를 가지고 선택과 집중에 노력을 쏟아붓습니다.

하지만 그 노력이 우리가 원하는 '그 결과'로 이어지는 것조차 사실은 우연의 영역입니다.


손이 갈고리가 되도록 노력해서 바라는 바를 이루었다면,

그것은 노력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커다란 '행운'이 깃든 것입니다.

똑같은 노력을 기울여도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는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가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원치 않았던 결과가 나왔다고 해서 그것이 '틀린 결과'는 아닙니다.

그저 나의 노력이 쌓여 만들어진 또 다른 '우연한 결과'일뿐입니다.


어릴 때는 제복에 대한 로망으로 군인을 꿈꿨고,

사기를 당해 고생하시던 어머니의 재판 과정을 보며 변호사가 되고 싶기도 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시민사회운동이나 정치에 투신하며

부끄럽지 않으려 나름의 노력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 모든 길을 지나온 지금, 저는 엉뚱하게도

전혀 다른 자리에 서 있습니다.

저의 의지와 계획, 가정환경이 영향을 미쳤겠지만,

그것들이 반드시 '지금의 결과'를 담보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니 내일의 계획이 무의미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다만, 계획대로 되지 않더라도

오늘 우리에게 찾아오는 우연에 마음을 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제 저는 우연을 기꺼이 담아내는 오늘을 살려합니다.

우연으로 가득 찬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지어갈 수 있는지는,

오늘 우리에게 다가오는 우연을 얼마나 촘촘히 담아내느냐에 달려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 모두가 삶이라는 우연을 넉넉히 담아내는 그릇이 되길 빌어봅니다.




촘촘한 그물

-AI가 생성한 시-


내 손이 갈고리가 되도록

오늘을 긁어모은 건 필연의 성을 쌓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성벽을 허물고 찾아온 건 예보에도 없던 낯선 우연들

길을 잃었다고 믿었던 그 굽이길이 나를 지금의 자리로 데려다주었습니다


이제는 압니다

인생은 꽉 쥔 주먹으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우연히 찾아온 빗물까지 담아내는 빈 그릇으로 사는 일임을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오늘 내 곁을 스쳐 가는 우연들을

더 촘촘한 마음으로 건져 올릴 때 우리 삶은 비로소 풍요로운 바다가 됩니다



월요일 연재
이전 13화중년이야기, 다시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