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사람 있어요
새 속옷만 꺼내입은 지 일주일째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몇 주간 빨래를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오늘 아침도 “아! 이런 거 안 입는다고~”하며 구석에 둔 속옷 세트를 머쓱한 마음으로 꺼냈다. 이제는 너무 커버렸다며 입을 비쭉이던 엄마가 떠올랐다. 정말 정말 필요하지 않을 줄 알았는데.
엄마가 주는 것은 꼭 그렇다. 내가 무언가에 목을 맬 때마다 지금은 그게 전부인 것 같지만, 나중엔 아닐 거라고 타이르던 말도, 여러 형태의 주방 도구도, 내 취향이 아닌 속옷조차도. 언젠가 쓸모가 생긴다. 오늘처럼.
빨래를 하지 못한 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10만 원 주고 산 중고 세탁기에 먼지가 묻어나오기도 하고, 그렇다고 다른 동네에 있는 빨래방에 갈 체력이 없기도 했고, 내내 흐렸던 목포의 날씨도 한몫하려나.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집에서 보내는 시간이 적었던 것이다.
사무실 속 많은 사람이 자는 시간, 밥 먹는 시간을 쪼개가며 일한다. 외근 후 밤늦은 시간에 사무실에 들어오면 퇴근 시간이 무색하게 사람들이 북적인다. 그들을 보면 당신들은 도대체 뭘 바라는 거냐고, 뭐 때문에 그렇게 하냐고 한가득 묻고 싶다가도 얼굴에서 보이는 단단한 마음에 이내 입을 다문다.
이 단단한 마음은 어디서 나왔을까? 연고도 없는 이곳에 사람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풍경은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나는 알면서도 모르겠다. 우리가 만들어내는 가치가 우리를 조금 더 살고 싶게 만들어주겠지. 우리를 넘어 타인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도록 돕겠지. 많은 사람이 더 다양한 삶의 형태를 영위할 수 있도록. 언젠가 보탬이 되길 바라며.
*지난 편지에서 쏟아내듯 전했던 목포 기록 프로젝트를 기억하는가? 나는 이후에 기획서를 썼고(누가 기획자 아니랄까 봐) 함께 작업을 하고 싶은 친구들과 미팅을 했다. 아쉽게도 업무가 많아 당장 작업을 시작하지는 못했지만, 돌아오는 9월 첫 촬영을 시작하려고 한다. 언젠가 이 글을 읽는 분들께 손수 만든 책을 선물할 수 있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