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까?
6편. 빨간 문장 줄까, 파란 문장 줄까?
국영수 중에 국어가 제일 싫었다. 어떤 문장을 읽고 어떻게 느껴야 맞는지 외워야 하는 게 너무 억지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공부해도 성적이 오르지 않아서 화가 난 건지도 모르겠다. 책 읽는 속도도 아주 느렸다.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책을 읽을 때면 내가 한 권 읽을 동안 동생은 세 권을 읽어버렸다. 그때는 책을 빨리 읽지 못하는 내가 못났다고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생각을 한 지도 오래됐네. 지금은 글을 후루룩 읽어버리는 사람을 보면 전혀 부럽지는 않고, 저렇게 읽는데도 저 글이 저 사람의 마음에 가닿을까, 기억에 남기는 할까 궁금하다.
그렇다고 책을 싫어하지는 않았는데, 별로 좋아하지도 않았다. 그저 학교에서 알려주는 권장도서를 지 용돈으로 열심히 사서 읽었다. (누구세요.. 놀랍다 과거의 나.) 20대가 되면서 누가 권장하는 책 대신 내가 그때그때 원하는 책을 사서 읽기 시작했고, 그 짓을 몇 년 했더니 책을 빨리 읽어야 한다거나 뭔가 그럴듯한 교훈을 느껴야 한다거나 하는 강박이 사라졌고, 책 취향도 생겼다. 그리고 원하는 때에 원하는 책을 내 속도로 원하는 만큼 읽게 됐다. 대신 서점에서 홀린 듯이 책을 한꺼번에 많이 샀다가, 다 읽고 또 살 걸.. 하고 후회하는 일이 늘었다.
어떤 책을 읽을 때, 좋아하는 만큼 험하게 다루는 편이다. 밑줄 긋고 낙서하고 팍팍 접는다. 계속 보고 싶은 페이지는 북 찢어서 잘 보이는 데 붙여버리기도 한다. 밑줄을 긋고 귀퉁이를 접는다는 건 그만큼 마음에 와닿았다는 뜻이고 다시 보고 싶다는 뜻이니까, 더러운 책일수록 아끼는 책이 된다. 아무렇게나 낙서하면서 읽었다는 걸 까맣게 잊고 책을 빌려줬다가 수치스러워진 적(귀여움 받은 적)도 몇 번 있었다.
이제는 책 읽는 걸 좋아하는데, 책을 읽다가 공감 가는 문장을 만나면 뜻이 통하는 벗을 만난 것처럼 마음이 좋기 때문이다. 그런 문장을 만나면 밑줄을 치고 네모를 치고 핸드폰을 꺼내 메모하기도 한다. 미소를 짓거나 고개를 끄덕이거나 울거나 하면서..
그래서 스트레스가 많고 생각이 많아질 때는 책을 읽는 게 도움이 되던데.. 이번 달에는 각종 스트레스로 퇴근 후에 끙끙 앓으면서도 책을 읽는 것 같은 건설적인 일은 도무지 하고 싶지가 않았다. 이미 지난달 원고에 ‘빨간 문장 줄까, 파란 문장 줄까?’라는 괴상한 제목까지 써버렸는데, 꼭 문장에 대해 쓰려고 했는데, 이번 달에 이 주제에 대해 쓰는 게 맞을까 싶을 만큼 책을 거의 만지지도 않았다. 몇 달째 의미 있는 일을 하는 거니까 괜찮다면서 나를 주말까지 너무 외롭게 한 것이 결국 또 나를 지치게 한 것이다. 안 되겠다 싶어서 8월에는 약속을 왕창 잡아버렸다. 내가 나 주말에 일 못 하게 하려고. 으~ 7월에는 너무 추웠다. 따뜻한 8월이 됐으면 좋겠다. 꼭꼭~!
- 다음 달에는 ‘7편.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로 돌아올게요. 우리 8월에도 정시 퇴근 많이 합시다~!
* <여기 사람 있어요>가 더 궁금하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