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실을 마주하기 위해 글 쓰고 생각을 정리하고 해석하고 질문하는 역사가
역사는 영화 감상 후에 남기는 한줄평과 유사한 방식으로 기록된다. 지나간 과거의 사실 속에서 역사가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 시간과 장소와 인물들을 추적해서 하나의 주제로 글을 남긴다. 영화를 본 관객이 영화에서 본 장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나 대사 혹은 느낌을 떠올리며 한 줄로 평을 남기는 방법과 크게 다르지는 않다. 영화가 2시간 정도의 러닝타임을 가지고 있다면, 역사는 그 정보량과 시간이 셀 수 없이 많다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긴 시간의 시작을 어디로 둘 것인지, 많은 집단과 문명과 민족들 중에 누구의 이야기를 찾아갈 것인지, 그 이야기를 어떤 관점으로 바라볼 것인지에 대해 깊이 탐구하고 연구하다 보니 학문의 축적이 깊어진 셈이다. 영화에도 대중적이고 흥행이 잘되는 작품이 있는 반면 관심을 덜 받고 잘 알려지지 않은 소규모 작품도 공존하듯이, 역사에도 많은 사람들이 정설로 알고 있는 세계사가 있는 동시에 각 개인의 고유한 역사가 있다. 영화의 줄거리를 듣고 어떤 내용이 있을지 아는 것과 영화를 직접 만들거나 보는 건 전혀 다른 감상을 낳는다. 마찬가지로 역사는 쓰고 읽고 말하지 않으면 그 내용에 대해서, 진실에 대해서 가까이 다가설 수 없다. 역사를 공부하고 싶은 마음은 어쩌면 의미 있고 인상 깊은 영화를 골라서 보고 싶었던 마음과 비슷했을지도 모른다.
유년시절 해리포터 소설집을 읽은 것 말고 어떤 책을 집중해서 읽었는지 하나도 기억이 나지 않지만, 고등학생이 되고 나서 유난히 질문이 많은 청소년으로 자랐다. 딱히 사회문제에 대한 의견을 내거나 역사에 의식을 천착한 똘똘한 학생은 아니었다. 호기심이라기보다는 세상에 궁금한 점이 많았다. 다른 나라에서도 공부를 이렇게 많이 시키는 현상이 있을까? 공부를 마치고 대학에 가면 어떤 공부를 하게 되는 걸까? 다들 이렇게 공부에 열심인데 그 비용과 시장은 어떻게 형성되어 왔을까? 이런 질문은 학생의 본분인 공부가 지루함을 변명하고자 만든 핑곗거리가 아니었다. 일종의 사회 현상에 대한 본질적인 진실에 대해 알고 싶은 욕구에 가까웠다. 주변 어른들 중에서는 명확하고 합리적인 답변을 주는 사람은 없었다. 친구들도 이런 질문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았다. 무엇인가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고민을 하던 찰나에 우연하게 영화를 보거나 도서관에서 책을 집으면 비슷한 답까지는 아니더라도 힌트를 주는 내용을 만날 수 있었다. 아무도 등한시하는 고민은 아니고,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있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학과 전공을 골라야 할 때 인문학 전공이면 어떤 학과이든 괜찮을 것 같다는 생각으로 지원했다. 당장 무엇을 먹고살지에 대한 궁리보다는 고등학생 신분으로는 깨우칠 수 없는 진실을 꼭 마주하기 위해서는 스스로 책과 생각을 마음껏 다룰 수 있는 인문학을 배우고 싶었다.
시간이 지나 요건을 채웠을 때는 문학사와 미술학사가 적힌 학부 졸업증명서를 받았다. 증명과는 별개로 대학을 다니는 와중에 가장 중요한 목표는 한국의 과열된 경쟁사회와 그 근본적인 원인을 비롯하여 발을 딛고 있는 이 땅에서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게 될지에 대해 이해하고 예측을 하는 것이었다. 목표에 따라 듣고 싶은 강의를 우선해서 들으려고 하다 보니 생각보다 제한사항이 많았고, 이수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만한 과정이 많았다. 다른 나라의 문화나 예술을 통해서 들여다볼 수 있는 색다른 관점이나 정체성에 대해서 고민할 수 있는 철학적 개념들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그 외에도 전공이라는 테두리에서 꼭 들어야 하는 필수 강좌들이 있었다. 목표와 거리가 있다는 이유로 잘 새겨듣지 않았던 수업이 많았지만, 지금 돌이켜 생각한다면 뭐든지 시간을 들여서 하는 일에 대해 최선을 다했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다. 당시에는 의미를 느끼는 비중이 적다고 생각해서 소홀히 여겨도 괜찮다고 여겼지만, 적혀있는 노트에는 유용한 지식이 꽤 많이 남아있었다. 쌓은 지식이 더 다양하고 풍부할수록 더 확실하고 자신 있게 지식을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은 시간이 지나서 나중에 깨달은 지혜였다.
생각했던 공부와 다르다고 생각했고, 점점 목표가 흐릿해지고 의미부여를 놓아갈 무렵, 무엇을 위해 학교에 오게 되었는지를 돌아봤다. 고등학교 사회 시간이나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었던 역사, 윤리, 사상, 문화로 한계를 느꼈고, 더 깊은 탐구를 해볼 수 있는 기회의 장으로 삼기 위해 대학에서 왔다는 것을 스스로 잊지 않으려고 했다. 고민을 하느라 비축해두었던 열정은 관심사가 같은 교수님의 수업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활활 타올랐다. 학교 도서관에서 흥미를 느낀 역사 관련 책을 집어서 재미있게 읽었고, 그 교수님이 같은 학교에서 재직하고 계시다는 것은 나중에 알게 되었다. 직접 만나서 강의를 들을 때만큼은 늘 새로운 시각을 얻을 수 있었고, 배움에 대한 갈망이 계속 커질 수 있었다.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을 꾸준하게 알려주고 제시해주신 덕분에 스스로 공부하고 수업 외적으로도 궁금증과 호기심을 폭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인문학과 철학의 트렌드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위기에 봉착한 것은 아닌지 항상 고민하고 있는 교수님 덕분에 가장 최신에 합의된 연구의 제목들이 무엇인지도 처음 알 수 있었다. 관련해서 찾아볼 수 있는 책과 저자들 역시 수두룩했기 때문에 한 명씩 찾아서 읽어나가기 만 해도, 학교에서 4년 동안 머무르는 시간이 모자랄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처음 들었다. 그전까지는 작성을 하기 위해 작성한 글쓰기를 해왔다면, 공부의 재미를 알게 된 이후에는 머릿속에 떠오른 질문에 대해 다각도로 생각하고 조사해서 한 명의 글쓴이로서의 생각을 담아 글을 쓰며 지낼 수 있었다. 과제나 시험문제 모두 글쓰기를 통해 진행이 되었고 그 안에 작성한 학생의 생각이 잘 담겨 있을 때 좋은 점수를 주는 규칙 역시 선호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주로 책을 읽고 요약을 하여 발제문을 작성하거나, 책과 관련된 에세이를 남기는 것이 수업의 모습이었다. 책에 대한 감상과 함께 나의 사견을 넣어서 구성할 수 있도록, 관점을 가지고 연구할 수 있게끔 성장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가장 중요했던 첫 시작은 모차르트와 관련된 사회학을 해석하고 글을 쓰는 기회였다. 하나의 긴 역사를 새롭게 구성하는 건 아니더라도 역사가의 생각을 담을 수 있도록 절충안으로써 제시한 것이었다. 모차르트라는 인물은 만들어진 천재라는 인식을 구했다. 한 개인의 역사를 다루면서 그를 해석할 때 인물을 영웅 또는 초인으로 그리지 않고, 시대 속에서 어떻게 평범한 인간이 천재라고 불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서술했다. 근대와 현대로 시점이 옮겨 올수록, 한 명의 개인은 독립적으로 존재할 수 없고, 시대와 사회 속에서 구성되고 만들어진다는 관점을 통해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해서 배울 수 있는 글쓰기였다. 항상 머릿속으로 만 한국의 학생들이 공부를 많이 하고 경쟁을 하는 것이 각 개인과 가정 때문은 아니라고 어렴풋이 믿어왔지, 실제로 자료를 조사하거나 근거를 들어서 서술할 수 없었다. 학문의 시야와 방법론을 빌려서 계속 글을 쓰고 익혀나간다면, 그토록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던 진실에 더 접근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진력이 생겼다.
구조주의나 후기구조주의,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해서 소개와 함께 글쓰기의 기본을 알려주신 교수님의 수업을 여러 번 더 들어가서 들으면서 교수님의 강의는 프리스타일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같은 개념이나 책을 가지고도 늘 새로운 비유와 사례를 섞으면서 매번 다른 의미를 만드는 강의를 보여주셨다. 학생들에게 마구 주요한 철학적 모티브들을 쏟아내고 계실 때 홀려서 듣지 않고 들으면서 노트를 하는 것이 중요했다. 프리스타일이었기 때문에 같은 내용이 시험에 문제로 출제되지는 않았지만, 교수님이 학생들에게 던지는 질문에 대해서 이해하고, 아이디어를 내 것으로 만들기 위해서였다. 여러 번 그 노트를 펼쳐서 읽고 실제 삶과 연결 지어 생각해야만, 그 의미가 와닿았다. 개념과 용어는 포털 검색창에 입력해서 뜻을 모두 알 수 없었다. 자신의 이야기로 만들거나 삶 속의 사유에 녹아들어야 했다. 그럼으로써 역사가에게 본인의 사관으로 의미를 지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글을 쓸 수 있는 실력이 늘어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역사학에서는 많이 알려진 진보사관과 순환 사관이라는 개념을 비교하는 책을 읽고 에세이를 발표할 때는 처음으로 청자들인 학생과 나의 현실과 글쓰기를 연결 지어서 완성할 수 있었다. 인문학을 공부할 때 드는 큰 괴리감은 그래서 도대체 삶에 어떤 도움이 되길래 많은 시간을 들여서 두꺼운 책들을 읽어야 하는지에 대한 감정이다. 공부는 공부, 취업준비는 취업준비, 취미는 취미, 이렇게 꼭 분리되는 게 맞는 것인지에 대해 회의감도 있었다. 이론적 배경과 글쓰기와 실제 삶을 연결할 수 있는 것에 대한 힌트는 교수님의 프리스타일 강의 때 적은 노트에서 생겨났다. 교수님이 드는 예시와 비유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소재와 원형적인 이미지였다. 삶에 밀접한 화제나 이야깃거리를 통해서 충분히 이론을 접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대학생들의 가장 큰 고민인 취업에 대한 문제를 호기롭게 발표문 안으로 끌어 들어와 상관관계가 없어 보였던 진보사관과 순환 사관에 대해 논증을 했다. 인문학 전공생들이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을 하다가 개인적인 희망이 섞여서 취업을 극복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는 것처럼 역사도 얼마든지 현재의 바람이 과하게 반영될 수 있다는 비유였다. 이론 공부는 더 이상 고리타분하지 않고, 내 삶과 밀접한 취미이자 일상이 되었다.
에세이, 발제문, 발표문, 소논문 글쓰기가 한 편씩 늘어갈수록 높이만 보였던 졸업논문의 산에 어느새 도달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 이유 없이 궁금했던 질문에 답은 새로운 질문들과 결합과 해체를 통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정체성과 뿌리에 대한 논증으로 이어졌다. 1919년 3.1 운동을 통해 처음으로 민주주의 국가와 민족의 정체성을 선언한 이래로 1948년 남한의 단독정부가 세워짐에 따라 탄생한 대한민국을 어떻게 해석하고 받아들여야 할지에 대한 논문이었다. 한국 현대사 논문을 작성하기 위해, 한국사를 처음부터 끝까지 배워왔다거나 하지는 않았다. 서양미술사, 예술작품 비평, 역사 철학 비평 등을 통해 충분히 다양한 관점으로 사안을 바라보는 연습을 거쳤고, 이미 합의가 어느 정도 끝난 개념들에 대해서도 인식을 한 상태에서 작성을 할 수 있었다. 겨우 한 편의 학부생 졸업 논문이었지만, 한국 고등학교에서 치열한 공부를 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에 대해서 궁금했던 고등학생에게는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 중 하나에 몰두할 수 있도록 스스로 시간을 내어준 결과물이다.
역사를 공부할 수 있었던 시간은 앞으로 남은 생에 살아갈 집의 번지수를 찾아가는 과정이었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글을 쓰게 될지, 배운 것 대로 역사가로서 살아갈지에 대해서는 모르겠으나 모든 것의 기반이자 시작인 공부를 취미와 일상으로 남기게 된 것이 의미 있었다. 이제는 누구나 글을 쓰고 콘텐츠 크리에이터가 되어 의미 있는 장면과 순간을 편집하여 왜 그것이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서 말하고 쓰고 읽는 것이 보편화된 시대가 되었다. 하나의 사안에 대해서 현재, 과거,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대화하는 행위가 없어지지 않는 이상,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소중한 과거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인생에 큰 영향을 미치는 영화가 존재해서 그 장면들이 남아있듯이, 정말 깨우치고 싶었던 궁금증을 스스로 생각하고 써보고 대화해서 알아갔었던 공부 시간은 간직할 것이다. 내가 글을 쓰고 찾은 진실은 누구에게 들어서 알게 된 이야기보다 값진 나의 역사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