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의 한 사람이 대중적이지 않은 미술작품 분석과 비평을 공부한 계기
미술관은 과제나 숙제를 해치우는 공간이었다. 타의로 인해 찾은 미술관에서는 최대한 빨리 숙제를 끝내는 데 도움이 되는 작품을 찾아서 빠져나오는 것이 가장 우선의 목표였다. 아무 관심도 없고 관계도 없었던 평범했던 과거에게 예술이 삶의 일부가 되는 건 세월의 축적 덕분이었다. 성인이 되기 전 보고 듣고 느낀 삶의 흔적들 속에서 언젠가는 예술을 통해서 자신과 세상과 사람을 돌아보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학문분야나 교양서적은 시간을 들여서 읽고 공부하면 어느 정도 혼자서 이해를 할 수 있었지만, 유일하게 손에 잡히지 않았던 미술사와 예술 분야는 큰 마음을 먹고 도전해야 하는 영역이었다. 본연의 일상을 쌓아가는 것과 동시에 예술을 감상하는 법, 작품을 분석하는 법, 미술사를 통해 아름다움과 예술에 대해 말하고 쓰고 읽는 법에 대해 공부하는 시간이 늘어갈수록, 생각하고 사고하는 방식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개론서나 청소년 교양 도서로 기획된 짧은 미술사를 소개하는 책을 읽을 때에는 어느 정도 암기식으로 작가나 작품의 배경을 이해할 수 있었다. 문제는 직접 현대미술관을 찾아가거나 거리에 있는 조형물을 봤을 때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 조차 감을 잡지 못했다. 캔버스나 종이에 잘 만 그리던 화가들이, 뜬금없는 설치미술을 만드는 이유에 대해서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다. 영화나 만화는 보는 사람의 학습 수준과 관계없이 누구나 즐기고 상상하면서 해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는데, 예술의 영역에서는 항상 누군가의 설명을 듣거나 공부를 통해 시간을 들이지 않으면 가담할 수 없다는 것에 불만족을 느꼈다. 나중에 깨달은 사실이지만, 미술은 대중적이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가질 수 있는 장점이 많았고, 꼭 대중적일 필요가 없다는 주장에 동의하게 되었다.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는 대중적이지 않음에 속하는 책과 전시를 꾸준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었다.
대학에 입학해서 듣던 여러 교양 수업들 중 가장 인상 깊게 들었던 강의가 미술 관련 개론 수업이었다. 수업의 내용만큼 좋았던 점은 서양화를 전공한 강사의 입장에서 본인 만의 시각을 공유해주는 것이었다. 획일화된 의무교육을 끝내고 대학에 와서 마주한 건 다시 한번 겪어야 하는 획일화된 미래 준비였다. 공무원이 되든 안되든 학점관리를 잘하고 괜찮은 스펙을 만들기 위해 각종 시험이나 자격증 또는 자격증에 준하는 경험을 만들어서 채워야 한다고 세뇌를 받고 있다고 느꼈다. 잠깐은 한 눈을 팔더라도, 피할 수 없는 생존 싸움을 벌여야 할 미래의 나에게 너무 남들의 시선이나 눈치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의미심장한 결단을 내려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한 번쯤은 다른 방향에 대해서 고려해보거나 새로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관점을 키울 수 있는 예술을 공부하게끔 스스로 허락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품을 많이 보고 설명을 많이 들으면 저절로 창의적인 시야를 얻을 수 있을 줄 알았던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개론 수업을 마치고 들어야 했던 것은 미술계의 현장에 대한 안목을 기르는 고학년 수업이었다. 복수 전공생으로서 수강신청에 대한 페널티가 있다 보니 의도치 않게 전공생들도 까다롭다고 생각하여 가장 기피하여 자리가 여유로운 수업에 들어가게 된 것이었다. 전문용어, 당장 졸업을 앞둔 학생들의 분위기, 현장 일터에서 익숙한 언어문화 등은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미술계를 이해하고 현장에서 일하는 법을 배우는 일은 오히려 세상과 멀어지는 일은 아닐지 걱정까지 하게 되었다. 가장 난이도가 높은 산을 처음부터 도전을 하면 그다음 산을 오를 적에는 보다 수월하게 몸이 풀려있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입구 초반부터 탈이 나게 되었다. 하지만, 교재의 내용이나 수업의 수준을 따졌을 때 정신적인 것을 다루는 모든 학문을 종합해서 이만큼 전문적이고 깊게 다루는 전공 수업은 또 없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하나의 미술작품을 이해하고 글 한 편을 쓰기 위해서 정말 다양한 경험과 진심을 들인 공부가 필요하다고 깨달았다.
미술은 기본적으로 미술사를 공부하지 않으면 즐길 수 없는 것이었다. 복수 전공생으로서 스스로 가장 빠른 시간 안에 보충을 할 수 있는 길은 공인된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서점이나 학교에 비치된 미술사 관련 책은 많았지만, 그중에서 무엇을 보는 것이 좋을지 알맞을지에 대한 정답을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적어도 학교의 수업을 따라가는 데 무리가 없을 정도의 수준으로서 적절한 공부라고 여길 수 있었던 건 '준학예사'필기시험이었다. 준학예사 시험은 보통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종사하고 싶은 의지가 있는 지망생들이 준비하는 국가공인 필기 자격증이다. 실제로 직업인으로서 근무를 하기 위해서는 필기시험 외에도 경력이 중요하지만, 가장 첫 발걸음으로서 필기시험을 준비하기도 한다. 문제는 준학예사 필기시험의 범위가 정해져 있지 않은 주관식 서술형이라는 것이었다. 자신 있게 시험공부를 시작했지만, 문제가 어디서 출제될지, 무엇을 물어볼지 알 수 없었다. 시험 정보를 알려주는 커뮤니티에서 합격 후기로서 참고한 책을 소개하기도 했지만, 그 책을 모두 외우거나 어느 정도 통달한 상태에서 주관식 질문에 대해 서술할 수 있어야 했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보다는 학교에서 후회 없이 고도화된 전공 수업에 뒤처지지 않고 따라가는 것이 목적이었지만, 그 수단으로 삼은 준학예사 시험이 정말 만만치 않다는 것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1년에 한 번뿐인 시험에서 통과를 하면 좋고, 그렇지 못하면 그동안 스스로 공부를 했음에 대해 만족하기로 마음을 먹고 시험을 준비했다.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일을 하기 위해서 알아야 하는 여러 과목 들 중 2과목을 선택해서 과목 당 2가지의 서술형 질문을 받게 된다. 특정한 책이 시험 범위도 아니었기 때문에 기본적인 개론 내용을 담고 있는 5권 이상의 분량 중 중요하고 공통되는 지점을 요약하고 핵심을 정리하여 나름의 책을 구성했다. 한 권의 책을 구성하면서 어렵게 보이던 미술사와 예술 이론이 보면 볼수록 호기심을 자극했고 더 깊은 통찰을 얻고 싶은 욕구를 자극했다.
학교 수업만큼은 후회 없이 잘 따라가서 듣고 싶다는 마음과 도무지 손에 잡히지 않았던 예술 관련 이론과 책에 대한 답답함에 대해 해소하고 싶은 의지, 공부하면서 만든 책을 통해 얻은 자신감 등 여러 복합적인 요인들이 시험 준비에 대한 밀도를 높여서 결국 준학예사 필기에 합격할 수 있었다.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중에 전시회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미술관 인턴을 할 수 있게 된 계기가 되어준 것도 준학예사 필기시험 합격증이었다. 실제로 미술관에서 일을 하는 것보다 중요했던 목표는 삶의 사고방식에 큰 자양분으로 삼을 수 있을 만한 미술과 정신에 대한 안목을 얻는 것이었다. 합격하기도 어려운 시험을 준비했던 것도 그 안목을 기를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기본적인 학교의 수업 때문이었다. 왜냐하면 현대이건 과거이건 한 시대의 작품을 설명하거나 분석하기 위해서는 다른 시대의 사조나 학풍에 대해서 충분히 사례와 근거를 들 수 있을 만큼 이해도 충분해야 제대로 발표를 하거나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을 충격을 받으며 이미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집트나 서양미술이나 한국 고대 미술이나 모든 분야의 미술을 모두 집중해서 보기에는 연구할 시간도 적었고 무엇보다 직접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여건을 가지기는 어렵다고 생각했다. 교과서에서 봤던 미술이 아니라 지금 시대에도 직접 만날 수 있고 계속해서 새롭게 만들어지고 있는 동시대 미술에 대해서 집중하고 알아보고자 했다.
막상 동시대 미술에 대해 이해하고자 했을 때는 그 흐름을 주도한 20세기의 미국 미술, 그리고 그 분위기의 모태가 된 근대의 유럽 미술까지 이해하는 것이 정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작가 들 중 전통회화나 기법을 사용하는 작가도 있는 반면, 기술의 발전에 따라 연결된 글로벌 기준에 맞춰 이제는 미국의 미술이라고 말하기도 애매한 미디어 아트나 설치미술 작업을 하는 작가가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다. 적어도 르네상스 이후 발현된 유럽의 모더니즘 회화부터 그 유명한 피카소의 작품으로 대표되는 20세기 초반 미술의 역사와 주요 작가들의 작품 정도는 알고 있는 것이 그 이후 생겨난 개념들을 이해하는 데 용이하게 작용했다. 지금은 익숙하다고 생각할 수 있는 전시대를 전복하고 새로운 관점을 만들고 사고방식의 편견을 깨는 시도의 근원지가 유럽의 근대미술이었다. 왜 그림은 실제와 비슷하게 그려야 하는가부터 시작해서 왜 그림은 사각형 안에 만 존재해야 하는 가와 같은 질문은 작품 안에서 생기는 의미뿐 아니라 작품 바깥세상의 변화를 충분히 담아낼 수 있는 고찰이었다고 생각한다.
미술사에 있어서 현대와 가까운 시대로 올수록 작가와 전시에 대한 기록이 많고, 그 환경을 목격한 이들이 연구한 내용이 풍부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한 시대를 대표하는 사조가 무엇인지에 대해 정의하는 것이 어려워졌고, 보는 관점에 따라서 각자 다른 감상이 점점 늘어났다. 미술이 대중적이지 않은 이유는 개개인의 작품 활동이 그만큼 존중을 받을 수 있고, 그 활동에 대해 비평하고 기록하는 글이나 문헌의 깊이 역시 쉽게 쓰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자본으로서 구매할 수 있는 상품으로 변모되지 않고, 자연과 인간과 아름다움에 대해 끝없이 질문하고 생각하는 과정을 여전히 담고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 환경에서 대중화라는 건 많은 사람들에게 보편화될 수 있도록 생산자에게서 소비자에게 도달될 때까지의 생산물의 사회적인 유통이 간편화 되어야 한다. 또한 그 생산물이 소비자가 받아들이기에 부담이 없고 익숙한 것일 때 대중이라는 집단이 형성되어 공통된 인식을 만들 수 있다. 미술은 대중화의 조건을 갖추지 않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문턱이 높아질 수밖에 없었지만, 그 문턱이 존재하기 때문에 소비자나 기업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대중에게 널리 소개되지는 못하더라도, 미술계 종사자나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들을 통해 알려지고 기록이 남을수록 평소에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고 넘어간 수많은 사건이나 사람들에 대한 장면을 새롭게 만날 기회가 창출된다.
테크놀로지 미술을 따로 떼어 놓은 수업에서 백남준에 대한 연구 결과물을 요약하여 발표할 기회가 있었다. TV매체가 막 생겨났을 때의 관점으로 만든 작업이었지만, 2021년에도 충분히 적용될 수 있는 주제가 담겨 있었다. 모니터 화면을 본다는 것에 집중하여 보는 사람이 화면 송출에 개입하기도 하고, 누워서 보게 만들기도 하고, 여러 대의 모니터를 동시에 보게 만들기도 하고, 라이브 되는 방송에 가두기도 했다. 영상 매체가 가득한 세상에서 인간은 자기 존재에 대해서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해 질문하는 작업들이었다. 한 번은 범지구적인 소통을 위해 위성 중계를 통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 극복을 생각하기도 했다. 백남준은 예술을 통한 교류로서 해소할 수 있는 편견이나 고정관념이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관점은 TV를 넘어서 손안에 쥐어진 스마트폰을 모두가 사용하고 일상에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는 시대에 더욱 따끔한 반성을 만들어 낸다. 아무리 소통을 자주 빨리 많이 실시간으로 할 수 있는 환경이 갖춰져 있어도, 누군가를 배려하지 않고 쏟아내는 차별과 혐오와 비난은 끝이 나지 않고 있다. 몇십 년이 지나더라도 지워지지 않는 통찰과 영감은 대중적이지 않은 미술 언어에서 발견할 수 있었다.
저명한 비평가나 작가들이 연구한 미술사나 작가론을 읽고 요약해서 발표하고, 스스로 작품을 분석할 수 있는 기호학이나 비평이론을 읽기도 하고, 미술계의 생태를 이해할 수 있는 현장의 흐름을 들으면서 이전 시대에서 예술을 어떻게 규정하고 이해해왔는지를 알 수 있었다. 그중 이해를 넘어서 직접적인 참여를 하고 있다고 느낀 활동은 매주 주요 전시회를 다녀와서 A4용지 한 장 분량의 에세이를 쓰는 과제였다. 과제가 아니었다면 평생 다녀보지 않았을 전시를 다니며 특별한 경험을 만들 수 있었다. 국공립에 속하는 서울 과천 국립현대미술관부터 시작해서 서울시립미술관, 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시도립 미술관에서는 각 도시가 생각하는 지역성을 담은 작품과 기획을 만날 수 있었다. 동시대 현대미술 작가들의 작업을 만나볼 수 있는 종로의 아트선재센터, 두산아트센터, 아르코 미술관, 금호미술관, 일민미술관 등은 수업에서 배우고 익히는 현대미술의 현장이었다. 중학교 방학숙제를 하듯이 인터넷 블로그의 글을 긁어 일기를 쓰는 것 같은 형식의 후기가 아니라 미술사의 특정 작품을 떠올리고, 작품을 비평 도구들을 활용해서 분석하고, 시대의 이데올로기에 대해서 사회과학적으로 탐구한 내용을 한 장의 글에 압축하고 표현해야 했다. 과제를 완성하기 위해서라도 전시공간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적극적으로 작품을 바라보고, 작가의 의도를 파악해보고, 작품이 관계 맺고 있는 관객과 사회에 대해서 고민을 멈추지 않았다.
전시를 직접 보고 분석하는 경험이 특별했던 이유는 언젠가는 역사가 될 수 있는 현장을 실시간으로 목격하고 있다는 감정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목격한 현장에 대해 이론적인 틀 안에서 역사적 근거를 들어서 작품을 분석하고 있었기 때문에 개인적인 감상이 포함되어 있더라도 최대한 객관적인 문장을 만들 수 있다는 데서 흥분을 느낄 수 있었다. 오래된 작품이 오래된 박물관에 안치된다면 언제든 그 공간을 방문해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지만, 그러지 않고 기획 전시에서 만 볼 수 있는 작업은 지금 여기서 일어나는 순간적인 전시 현장에 대해 목격한다는 현장감은 남다르다고 생각했다. 물론 더 많은 지식과 경험을 통해 보다 더 전문적이고 깊은 안목으로 바라보는 종사자의 기록이 더 권위를 얻을 수밖에 없고, 연구기록으로서 가치를 얻겠지만, 순전히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동시대인으로서 '참여'하고 있다고 기분이 가장 강렬하게 들었던 것은 분명했다.
졸업논문을 쓰거나 학부생으로서 학문 공부의 마무리를 짓는 건 평범한 이야기로 여겨질 수 있다. 아무런 정보나 미래에 대한 계획 없이 예술 자체에 대한 호기심으로 시작해서 이제 그 내용에 대한 관점을 스스로 정하고 이야기를 할 수 있다는 데에서 큰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모든 미술사의 주요 작품이나 작가를 외우지는 못하고, 작품 분석 비평에 필요한 철학적 담론을 이해한 것은 아니지만, 사회와 역사와 시대와 예술을 관통할 수 있는 최소한의 공부를 마칠 수 있음에 정말 감사함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작성했던 소논문에서는 1968년 68 혁명 당시의 프랑스 미술을 비판적 사실주의를 통해 분석하고 그 의의를 발견하고자 했다. 꼭 해외유학을 다녀온 정장을 입은 다른 종족의 사람들만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이야기를 직접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점이 첫 번째로 좋았다. 두 번째로 어렴풋이 창의적인 관점을 얻으려고 시작했던 과거의 나에게 그 근원과 뿌리에 대해서 문화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다는 점이 자랑스러웠다. 세 번째로 앞으로 살아가면서 만날 예술과 사회에 대해 적극적으로 표현하며 살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는 것이 스스로 고마웠다.
당장 한국에서 살아가는 환경에서 유럽이나 미국처럼 다양성이나 개성에 대한 존중을 극대화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는 어려울 것이다. 지나온 역사와 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또 다양성에 대한 가치가 한국에서 무조건적으로 선하거나 정의롭다는 판단을 하기에도 무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적어도 무엇이 아름다운 삶인 것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표현할 수 있는 나 자신은 가능성에 대해 상상하고 구체화할 수 있는 사람으로 사고할 수 있다. 꼭 미술관이나 미술계에 종사하지 않더라도 전시 현장을 목격하고 '참여'했던 것처럼 여러 방법을 통해 현실의 시각을 삶에 옮겨서 밀도 있는 작업을 지속할 수 있다. 남들과 똑같이 미래 생존을 위해 살아갈 것 같은 나에게 예술을 공부해줄 수 있게 결단을 내려줬던 과거의 나 덕분에 지금의 나는 예술관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살아가고 있다. 좋은 친구가 곁에 있는 건 좋은 생각을 가지고 대화를 하고 삶에 부침이 있을 때 함께 고민하고 시간을 보낼 수 있다는 것을 뜻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