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경희 May 27. 2021

그대가 있는 곳이 낭만

아름다움이 다시 깨어난다.


어떤 한적한 곳에 살고 있는 상상을 하곤 한다. 낮에는 잔잔한 푸른 바다에서 낚시를 하다가, 저녁 즈음에는 비스듬히 기대앉아 붉게 물든 하늘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깊은 밤이 되면 감성 충만한 음악을 틀고 평상에 누워 반짝이는 별을 바라보는, 유유자적 한가롭게 사는 그런 상상. 그러던 중 남해의 한 마을에 사는 친구가 갓 수확한 마늘쫑이라며 즐거운 택배를 보냈다. 큰 상자를 꽉꽉 채운 초록 초록한 마늘쫑을 보니 기분이 좋아진다. 5월 남해의 햇살과 봄날의 싱그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남해의 아름다움을 생각하다 언젠가 친구와 나눴던 대화가 생각난다.  

    

“남해의 밤하늘은 어때? 깊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쏟아질 것 같은데. 그곳에 잔잔한 음악까지 흐른다면 굉장히 낭만적일 것 같다!”

         

“그렇죠. 아주 낭만적이죠. 음... 언젠가 밤하늘에 쏟아지는 별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아... 이 마을을 떠나고 싶다! 낭만... 그것도 하루, 이틀이에요~! 매일 보면 별 감흥이 없어요.” 

               

한정적인 시간의 작은 일탈만이 그곳의 매력이 유지되는 걸까. 겉으로는 낭만적이고 여유롭게 보여도 그 시간 안으로 들어가 보면 생각했던 것과는 조금 다르다. 그러니 막연히 아름답게만 생각했던 남해의 삶에도 내가 모르는 현실이 있는 거겠지? 타인은 낭만적인 삶이라고 말할지라도 정작 그 현실에 있는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은 먹고사는 고단한 문제와 결합이 되기 때문일까? 그 안으로 들어가 삶이 되면 처음의 매력은 사라지고 왜 팍팍해지는 걸까.            


창업 전에는 카페를 하게 되면 일상이 여유가 있고 편안해질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발을 들여놓으니 생각과는 다른 현실이 있었다. 손님이었을 때와 카페 사장의 생각은 다르다. 여유는 매출과 모순되는 말이다. 회사에서 부대끼는 사람이 있을지언정 카페에서 만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그러나 회사에서 보지 못했던 당혹스러운 사람들을 더 많이 접했다. 영업 때는 식사다운 점심을 거른 지는 오래다. 처음에는 매일이 설레고 낭만적인 일상에 들어와 있다는 것이 기뻤는데 처음 생각한 대로 흘러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일상은 별다른 동요 없이 익숙해진다. 요즘에는 여유를 많이 누리고 있으니 이곳이 권태롭기까지 하다. 이 작은 공간에 왠지 모르게 갇혀 있는 것 같다. 카페를 시작하고 낮과 밤이 계속 반복되더니 만 사 년이 훌쩍 넘어 벌써 2021년의 5월이라니. 어쩔 수 없는 시간의 마법일까. 가는 세월만큼 나의 열정이 식어가고 있는 듯하다.        

그렇게 이런저런 상념 속에서 노트북에 차곡차곡 쌓인 카페의 지나간 기록들을 하나씩 뒤적여 본다. 실험을 거듭하여 만든 메뉴, 공간을 꾸몄던 아기자기한 소품, 카페에 잠시 동안 머물렀던 손님들의 즐거운 사진이 보인다. 그들이 두고 간 이야기도 생각나고. 이곳에 쌓인 흔적들을 하나씩 보다 보니 마음이 몽글몽글 하다가 먹먹해진다. 시간이 흐를수록 이곳은 그리움의 흔적이 쌓여가는 공간이 되는 것 같다. 아련해진 추억을 소환하니 카페를 하고자 했던 처음의 마음과 꿈, 가물가물한 기억들이 소생한다. 고생 끝에 인테리어가 끝나고 뿌듯했던 그 순간. 은색으로 빛나는 커피머신과 집기가 하나씩 채워졌을 때 설렘. 많이 좋았었는데 어느새 까맣게 잊었던 것들이 생각난다. 바라보던 것의 장점과 매력이 점점 사라지는 건 나의 마음 탓인 걸까. 마주하는 것은 그대로인데 내 마음은 시드는 꽃잎 같고 사그라지는 불꽃같다. 

     

쏟아지는 별은 볼 수 없어도 가끔씩 밝은 달은 볼 수 있는 낭만이 있고, 그 달빛 아래 고즈넉한 뒷골목의 작은 카페에서 둥둥 떠다니는 음악을 흥얼거리다 보면 남해의 밤 부럽지 않은 곳인데. 카페 안 곳곳에 눈길을 주니 이 공간에 더욱 애틋한 마음이 든다. 그동안 정이 많이 들었나 보다. 카페에 있는 잔잔한 이 순간이 새삼 특별해진다. 시간이 많이 지난 뒤에는 커피 향이 향기롭게 나는 이곳에서 글을 쓰는 이 시절이 그리워지겠지. 그리고 시간의 마법은 다시 찾아와 인생에서 좋았던 시절이라고 고백하지 않을까. 

     

좋은 날이 곧 올 거 같은 기분이다. 아니, 날이 그리 좋지 않아도 내 마음은 그저 여전하길.  

이곳의 아름다움이 다시 깨어나고 그렇게 봄이 가고 있다.  









채널예스 칼럼에서  '그대가 있는 곳이 낭만' 글을 볼 수 있습니다. ^^

링크 ▶ ▶ [에세이스트의 하루] 그대가 있는 곳이 낭만 – 김경희 | YES24 채널예스







작가의 이전글 봄날의 손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