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10. Graduation, and After
오지 않을 것 같던 졸업식 날이 다가오고 있었다.
4주 안에 영어 실력이 드라마틱하게 달라질 수 없다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이곳에 오기 전 목표했던 바는 하나였다. 1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늘 나를 작아지게 했던 영어 트라우마를 깨는 것. 누군가는 비웃을 수 있지만 내게는 아주 중요한 인생 과제 중 하나였다.
목표를 이뤘다. 영어로 말하는 것이 더 이상 두렵지 않아졌다. 함께 공부하던 선생님들과 농담을 나누며 웃을 수 있게 됐고, 모국어가 다른 친구들과도 단순 안부 인사를 넘어 깊은 마음속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실수하거나 말이 막히는 순간이 찾아와도 당황하지 않고 대화를 이어갈 수 있었다. 토플 모의고사 점수도 예상했던 것보다 빠르게 올라 3주 차에 레벨업을 하게 되면서 자신감도 조금 붙었다. 언어는 기세라는 것을, 확실히 느꼈다. 스페인어를 처음 공부했던 그때처럼, 영어가 재미있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가면 왠지 금방 감을 잃을 것 같았다. 가장 좋아했던 선생님들께 온라인 수업 제안을 했고, 가끔 카페에 함께 다니며 공부하던 한 친구와도 온라인으로 만나 스터디를 이어가기로 했다. 친해진 일본인 친구가 뉴질랜드로 워킹홀리데이를 간다고 하길래, 친구도 보고 영어도 쓸 겸 뉴질랜드에도 다녀오기로 했다. 계획에 없던 결정이었지만 큰 결심은 필요하지 않았다. 백수는 시간이 많고, 이렇게 시간이 많은 백수로 살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언제 또 올지 모르기 때문에 해 보고 싶은 것들은 다 해 볼 작정이었다.
어학원 친구들과 선생님에게 줄 선물로 진라면을 잔뜩 샀다. 라면을 좋아하지만 매운 걸 잘 못 먹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위해 파란색 순한 맛으로만 골랐다. 그리고 오랜만에 손 편지를 썼다. 처음엔 두세 명에게만 쓸 생각이었는데 세 명이 네 명이 되고 네 명이 다섯 명이 되더니 결국 열 명을 넘겼다. 편지를 쓰며 이곳에서의 시간을 천천히 정리했다.
졸업식 당일에는 아침부터 바빴다. 모든 친구들과 선생님들을 만나 직접 선물과 편지를 전해주겠다는 개인적인 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쉬는 시간마다 부지런히 움직여야 했다. 정신은 없었지만 마음은 넘치게 행복했다. 원래 선물은 받는 사람만큼이나 주는 사람도 기쁜 법이니까. 졸업식도 성대하게 진행됐다. 선생님과 학생들이 축하공연도 해주고, 이날 졸업을 하는 모든 학생들이 한 명 한 명 무대에 올라 수료증을 받았다. 같이 졸업을 하거나 졸업을 축하해 주러 와준 친구들과도 언젠가 다시 볼 수 있기를 기원하고 서로의 안녕을 바라며 마지막 인사를 나눴다.
졸업여행도 알차게 다녀왔다. 사실 매주 주말마다 어학원 친구들을 모아 세부 곳곳을 열심히 놀러 다니며 고래상어랑 같이 수영하고 거북이를 코앞에서 보고 폭포를 누비며 신나게 물놀이도 했지만, 이번엔 특별한 졸업여행인 만큼 대망의 하이라이트로 산속의 협곡을 따라 걷다가 수영하고 뛰어내리고 미끄러지고 줄타기도 하는 세부 대표 액티비티 캐녀닝(Canyoning)을 예약했다.
다이빙이 포함되어 있다는 걸 듣기는 했었다. 다만 그 정도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을 뿐.. 아파트 3층 높이쯤 되는 바위에서 내 의지로 몸을 던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10m면 다이빙 중에서도 경기용 플랫폼에서 쓰이는 높이라고 했다. 솔직히 너무 무서워서 혼자였다면 그냥 옆에 있는 더 낮은 바위에서 뛰었을 거다. 그런데 같이 간 친구들이 너무 잘 뛰어내려서 안 할 수가 없었다.
눈을 꼭 감았고, 잠시 몸이 붕 떴다가 공기와 물의 경계를 통과하는 느낌과 함께 물속으로 쑥 빠져들었다. 어느 정도 안정감을 찾은 뒤 물 위로 올라와 내가 뛰어내린 바위를 다시 보니 아득했다. 이제 뭐든 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기분과 함께- 세부에서의 마지막 날을 마무리했다.
한국에 돌아온 뒤에는 계획했던 일들을 줄지어 시작했다. 보고 싶었던 이들을 만나고, 인터뷰도 하고, 배우고 싶었던 분야의 강의를 듣고, 몇 가지 프로젝트를 새롭게 시작하면서 정신없는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2주 후 다시 찾은 인천공항에서, 이번엔 뉴질랜드행 비행기에 올랐다. 급하게 준비한 탓에 출발 직전까지 뉴질랜드 입국 승인이 나오지 않아 마음을 졸였지만, 이것이 P의 삶인 것을 겸허히 받아들이며 기다리다 보니 결국 잘 해결되어 뉴질랜드로 떠날 수 있었다.
그렇게 28살의 나는 필리핀에서- 유치원,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대학교에 이어 여섯 번째 미니 졸업을 했고, 또 다른 시작을 위해 새로운 곳으로 떠났다. 여전히 그 어떤 것도 완벽하지 않고 여전히 불확실한 것들 투성이지만, 조금 더 담대해진 마음으로 다음 여정을 향해 걸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