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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연솔 May 23. 2023

[사진산문] 타이완 진먼 취재 수첩 2편

대학신문 다큐 '진먼을 그리는 시간' 제작기: 안녕, 타이베이(타이페이)



타이베이 Day 1


한쪽 어깨엔 작지만 고성능인 소니 캠코더 한 대, 다른 한 손엔 일주일을 버틸 옷가지를 쑤셔 넣은 커다란 트렁크 하나씩을 들고서 타이베이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2019년 12월, 코로나 확산 직전에 가족들과 베트남 하노이를 다녀온 후로 처음 가는 해외였다. 매년 한두 차례 따뜻한 나라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는데, 근 3년을 그러지 못해 답답하던 차였다. 공항에 간다는 사실만으로도 가슴이 두둥실 떠올랐다. 새벽에 시작된 일정도 나를 재우진 못했다.


오랜만의 비행, 간만의 귀 먹먹함, 그리고 한층 맛있어진 기내식까지 모든 게 반가웠다. 기내식 특유의 쌀 냄새가 밥맛을 떨어뜨리곤 했는데, 이날 기내식은 찐 감자와 나름 실한 고기 요리였다. 기내식을 싹 비운 건 처음이었다. 비행하는 동안 책도 읽고, 생각도 정리하고, 촬영계획도 복기하겠다고 다짐했건만 식사를 즐기며 우리끼리 담소를 나누다 보니 어느새 착륙을 알리는 기내방송이 나왔다. 비행이 짧아서 아쉽기도 오랜만이었다.


여정 중 첫끼였던 기내식부터 성공적이었다.



비행기 밖으로 나오는 순간 타지에 왔다는 사실을 실감했다. 타이베이의 따뜻하고 습한 공기가 비행기와 공항을 잇는 연결로를 가득 메운 탓이다. 2월의 타이베이는 우리나라보다 남쪽에 위치해 겨울의 흔적을 감각하기란 어려웠다. 외려 구름이 개면서 모습을 드러낸 해가 겨울옷을 두른 우리에게 뜨겁게 쏟아졌다. 우리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옷을 벗어던지고 트렁크에 있는 가장 얇은 옷을 꺼내야 했다.


타이베이 호텔 앞. 볕은 정말 뜨거웠지만, 그럼에도 다시 가고 싶다.





6시간 만에 타이베이 관광하기


빡빡한 촬영 일정으로 우리에게 주어진 '유흥'의 시간은 단 하루였다. 우리는 타이베이 관광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들을 몇 군데 추려 바삐 움직였다. 첫 발은 배를 채우기 위한 걸음. 유명한 샤오롱바오 가게가 있다는데 어찌 모른 척하겠는가. 샤오롱바오 맛집으로 알려진 '딘타이펑'은 유명세만큼이나 웨이팅이 길었다. 커다란 짐을 들고 호텔까지 가느라 지쳤던 우리는 딘타이펑 번호표를 뽑고 곧장 인근의 빙수 가게로 향했다. 재밌는 건 어딜 가도 한국인들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맛집'을 같은 포털에서 같은 언어로 공유하는 탓일까.


타이베이 3대 빙수집이라는 '스무시'에서도 10분쯤 기다리고 나서야 자리를 잡았다. 우리의 선택은 망고빙수였다. 기세등등했던 도심의 열기는 빙수 첫 입에 금세 식었다. 냉동망고의 새콤달콤함이 피곤에 지친 우리를 다독였다. 그제야 대만의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기술력, 자본력 모두 우리나라와 비슷하다는 느낌과 함께, 거리 곳곳에서 도드라지는 '전통성'을 목도했다. 도심 전체가 현대성과 전통성을 모두 머금고 있다니! 빙수로 부른 배 두드리며 다시 딘타이펑으로 향하는 길은 너무도 눈부셨다. 당장 영화를 찍어도 어색하지 않을 거리 풍경에 사진 찍기 바빴다.


골목골목이 영화 같은 타이베이.


다시 돌아온 딘타이펑. 기다림 끝에 먹은 여러 종류의 샤오롱바오는 제각기 다른 매력으로 미각을 채웠다. 개인적으로는 파와 새우가 들어간 샤오롱바오가 제일 기억에 남는데, 시원한 채즙과 탱글탱글한 식감이 일품이었다. 친구들은 트러플이 들어간 샤오롱바오를 손에 꼽았다. 나는 다시 간다면 새우가 들어간 샤오롱바오를 집중공략해야지.


딘타이펑에서 맛본 첫 샤오롱바오, 새우 식감이 잊히지 않는다.


배도 채웠겠다, 남은 시간은 타이베이 관광으로 알차게 보내보자는 마음으로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중정기념관도 다녀오고, 타이베이의 명동이라는 시먼딩 거리도 가봤다. 중학생 때 가족여행으로 타이베이에 왔었는데, 그때도 시먼딩 거리를 걸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기억 속 시먼딩은 북적이는 전통시장가에 가까웠는데, 오늘 본 거리는 정비가 잘 된 쇼핑가 느낌이었다. 한국어 안내문도 생각보다 많고 케이팝을 틀어놓은 매장도 쉽게 볼 수 있었다. 한국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먹거리와 볼거리가 늘어났다. 다음에는 시먼딩보다 덜 관광화된 거리를 가봐야지.


먹거리가 풍성한 시먼딩 거리에서 우리의 선택은 지파이와 곱창국수였다. 일전에 다녀갔던 지파이 가게에서 똑같은 메뉴를 시켜 먹었다. 매콤한 가루가 뿌려진 지파이- 어릴 적엔 퍽퍽하고 기대 이하의 맛이라고 생각했는데, 커서 다시 먹으니 또 먹고 싶은 맛이다. 맥주 한 캔과 곁들이기 좋은 훌륭한 안주인 것 같다. 곱창국수는 잡내가 살짝 있어 고수를 곁들여야 했다. 본래 고수를 엄청 좋아하진 않는데 고수가 꼭 필요한 음식도 있음을 처음으로 느꼈다. 이날 길가에 서서 나눠 먹은 음식들이 간간이 그리워진다.


길가에 서서 사이좋게 나눠 먹은 곱창국수.


타이페이의 상징이자 세계에서 아홉번째로 높다는 빌딩 '타이페이101'에도 발도장을 찍었다. 초고층에서 내려다본 시내는 별빛으로 수놓인 바다 같았다. 빌딩 근처에서 연등 축제가 열려 예쁜 연등 작품들이 길을 따라 쭉 설치돼 있어 보는 재미가 있었다. 새벽비행으로 하루가 아주 길었지만, 그냥 잠들기가 아쉬워 다같이 무리한 밤이었달까. 이날 숙소가 7박 여정 중에 가장 좋은 곳이었는데, 값비싼 시설을 거의 누리지 못하고 몇 시간만 몸을 누인 게 전부라 아쉬움이 남는다. 우리에게 허락된 관광 시간은 아쉽지만 여기에서 끝이 났다.


이 날만큼은 관광객! (photo by 산띠)





타이베이 Day 2


이날은 교수님들 인터뷰를 몰아서 했다. 오전 10시에는 대만국립대에서 쉬진위 교수님을 뵀다. 대만국립대는 1-2층의 낮은 건물들이 많았고, 나무가 캠퍼스 안을 울창하게 채우고 있었다. 수백대의 자전거가 한 공간에 가지런히 정렬되어 있어서 이곳 대학생들은 등하교에 자전거를 흔히 이용하는구나 하고 짐작했다. 청설모 비스무리한 친구가 자전거 안장 위를 폴짝폴짝 뛰어다니는 모습도 보았다. 이날은 비가 살짝 왔는데, 나무가 비에 젖어 운치가 있었다. 물론 캠코더가 젖을까 시종일관 긴장하긴 했지만.


비가 와도 쾌적했던 타이페이의 어느 거리.


1시간 가량의 인터뷰를 영상으로 쭉 찍는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다. 캠코더 배터리도 바닥, SD카드 용량도 바닥이 된 것. 배터리야 충전하면 되지만 SD카드는 비워야만 한다. 문제는 SD카드 리더기가 없었다는 것. 우리는 인터뷰를 마치고 급히 근처 '삼광마트'에서 리더기를 구입했다. 삼광마트는 다이소 격으로 없는 게 없는 잡화점이었다. 저렴하게 구입한 리더기는 아직까지도 잘 쓰고 있다.


인근 식당을 목적지 삼아 도보로 걷던 중에는 거리가 정말 깨끗하다고 느꼈다. 옛것들은 깔끔하게 보존되고 새것들은 과하지 않게 자리 잡아 조화로운 거리였다. 축축했지만, 더위를 식혀주어 불쾌하진 않았던 우중충한 날씨였다. 그 길을 15분 정도 걸었을까, 우리는 드디어 현지 음식을 맛볼 수 있는 식당에 도착했다. 식당 문을 열고 들어가니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잠시 입장을 망설인 우리는 허기에 등 떠밀려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런데 손님이 없는 것치고 모든 메뉴가 정말 맛있었다. 멸치보다 작은 꽃새우 야채 볶음도, 튀긴 닭요리도, 볶음밥도 전부 맛있었다. 아쉬운 건 식사를 마칠 쯤에 음식에서 플라스틱 조각이 나왔다는 것. 이날 이후로도 음식 이물질 이슈는 계속되었다고 한다...ㅎㅎ


다시 먹고 싶은 타이완 중화요리.


점심을 먹고 다음 인터뷰까지 남은 시간 동안은 스타벅스에서 커피와 디저트를 즐겼다. 하루종일 고생하는데 배라도 든든히 채우자는 게 우리의 목표였다. 촬영하지 않는 동안은 캠코더를 필사적으로 충전했고, 우리 몸도 최선을 다해 쉬어야 했다.


귀여운 그림과 꿀 같은 휴식


2시에는 국립타이완사범대에서 장보웨이 교수님을 인터뷰했다. 인터뷰 내내 내가 알아들은 단어라고는 '소삼통', '진먼', '평화', '타이완', '중국', 그리고 '미래' 정도였다. 중국어는 고등학교 제2외국어로 얄팍하게 배운 뒤로 인연이 없었는데, 해외취재를 준비하는 동안 친구들 덕에 중요한 핵심단어 몇 개는 알게 됐다. 그래도 전반적으로 무슨 말이 오가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교수님께선 한국에서부터 온 우리를 극진히 대접해주셨다. 양안관계와 진먼에 대한 지식도 흔쾌히 풀어주셔서 큰 도움이 되었다. 나중에 더 풀어내겠지만, 우리는 타이완 사람들에게 그야말로 '환대'를 받고 왔다.


본관이 정말 예쁜 국립타이완사범대



인터뷰가 끝나고, 우리는 진먼행 비행기에 탑승하기 위해 쑹산 공항으로 갔다. 그런데 쑹산 공항에서 우연히 만난 이가 있었으니...... 다음 편에서는 '진먼히스토리'와의 만남을 중심으로 기억을 되짚어보겠다. 뜬금없긴 하지만, 나는 동료들이 중국어에 능통한 덕분에 타국이 아닌 우리나라의 어느 동네를 다니듯 편히 일정을 소화했던 것 같다. 쉴새없이 카메라를 돌릴 수 있었던 것도 동료들의 이러한 지원 덕이다. 스케줄 관리나 돈 관리, 소통 문제 등 촬영 외적인 부분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오롯이 영상에만 집중할 수 있었다. 각자 특화된 영역이 달랐던 덕에 톱니바퀴 굴러가듯 잘 마무리된 것 같다. 타이완에서의 나날들, 오래도록 소중히 간직해야지.


정연솔.




*하단에 촬영자를 기재하지 않은 모든 사진의 저작권은 저자에게 있습니다.

*해외취재를 통해 제작한 다큐멘터리는 아래 링크에서 시청할 수 있습니다. 

https://www.youtube.com/watch?v=LfZLFr86JA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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