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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퇴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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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간 김개똥 Jan 11. 2022

직장인이 적성이 아닌가 봅니다

회사라는 잔혹한 현실의 늪에서

새벽 5시. 억지로 눈을 뜨면서 생각한다.

아무래도 직장인이 적성에 안 맞는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렇게 숨 쉬고 있다는 사실이 저주스러울 리가 없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회사를 다니는 걸까? 돈도 잘 벌고, 결혼도 하고, 하하 호호 잘 사는 것 같은데 왜 나만 이 모양 인거지? 노오력의 문젠가? 성격이 더러워서 그런가? 아님 사회 부적응자인가?


사는 것이... 쉽지가 않다.


억지로 일어나 화장실로 몸을 질질 끌고 가 본다. 그리고 가만히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본다.

헝클어진 머리, 다크서클이 축 늘어진 눈, 전봉준 농민봉기 머리. 그냥 산 송장이 따로 없다. 이게 사람 몰골이 맞나? 혹시 이러고 나가면 어떤 미친놈이 좀비유니버스 열린 줄 알고 한 대 때려보지 않을까? 아니 어쩌면 좀비가 맞을지도 모른다. undead. 죽지 않았을 뿐 죽어있다는 의미에서.


이런저런 쓸데 없는 생각을 하다 억지로 얼굴을 씻었다. 잡생각해서 늦어봤자 박대리가 지랄만 할 뿐이지 갑자기 세상이 달라지지 않으니까.


출근길에선 조금이라도 힘을 내보기 위해 출근길 플리를 듣는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노래는 개똥벌레다.


나는야 개똥벌레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 걸

아무리 울어봐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달아나네


근데 나도 엉엉엉 안 울고 개똥벌레처럼 찌르르 울 수 있다면 맨날 울었을 거다. 눈물이 아까워서 아낄 뿐.


분위기 개똥 같구먼


나도 이 나이가 되면 김광석의 서른즈음에를 들으며 낭만을 씹을 줄 알았는데, 개똥벌레에게 공감하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다.


하지만 개똥벌레는 곧 나였다.

매일매일 개똥이나 굴리고 사는 삶.

그게 지금의 나니까.


매일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서울로 출근해 10시간을 일하고 2시간을 돌아온다. 

데굴데굴 개똥처럼 굴러 집에들어와 일단 잔다. 몸이 부서질 것 같기 때문에 취미나 공부는 사치다. 그리고 눈을 뜨면 다시 이지랄로피테쿠스의 반복이다. 

근데 문제는 이것도 희망회로 편이다. 회식이라도 하는 날은 지옥이다. 아니 근데 왕복 4시간 통근하는 사람한테 회식끝까지 있으란 말은 어떤 뇌회로를 가지면 나오는 말임? 장난하나? 장난둘?


그런데 이런 개똥벌레 라이프가 가장 지옥같은 점은

이 짓을 하루에 5~6일씩 반복해야는 것도 아니요. 

회사에서 일하는 10시간이 높은 업무강도와 온갖 부조리, 사내 괴롭힘 투성이라는 것 역시 아니다.


이 개똥벌레 굴렁굴렁 라이프의 끝이 보이지 않는 다는 것.

예전에 사회문회 시간에 "노예는 직업이 아니라 신분이다" 라는 말을 들었는데, 그걸 내가 직접 체험하면서 알게 될 지 몰랐다.


해리포터에서 도비는 양말 받으면 해방이라도 되지. 나는 대체 뭘 받아야 해방이 된담? 관짝? 수의? 그냥 죽을 때 까지 이렇게 개똥개똥 노동자로 살아야 하는 걸까?


니도 인생 잘 풀린 줄 알았다


쓸데 없는 생각을 하고 있으면 가끔 나 스스로도 의문이 든다.

대체 난 왜 이렇게 힘든걸까?


누가 "이유라도 대보세요!" 하고 자리를 마련해준다면, 야 기다려봐하고 수티분 잡수 같은 프리젠테이션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도무지 적응할 수 없는 회사 분위기, 업무 강도, 스트레스, 회식 문화, 불안정한 미래, 작고 귀여운 월급, 출퇴근 시간, 코인충 동료들...

그런데 퇴사하면 되잖아. 하면 할 말이 없다. 내 머릿속에 양심이 시비를 걸기 때문이다. "대기업 니가 가고 싶다며? 돈 잘 받잖아? 다들 겪는 일인데 왜 너만 그래?"라고.


다들 잘 참는데 왜 너만 그러냐고. 

자꾸 생각하면 맞는 말인 것 같기도 하다.




대체 누가 퇴사에 이렇게 의미를 많이 부여해놨단 말인가? 

세상에 말도 안되는 자기계발서들이 '퇴사=꿈을 이루는 과정' 이딴 말들을 해대니까 뭔가 나가는 이유도 거창해야할 것 같다. 그냥 안 맞는데 나갈 수 있는 거 아님? 미생이 하도 이상한 가스라이팅을 해놔서 힘들어 죽겠는데도 벗어나는 것이 참 쉽지 않다.


체력, 정신력에 자존심에 양심까지 알뜰살뜰 착즙해서 사는 삶에 익숙해져가고 있다. 매번 껍데기만 남는데도, 벗어날 수 없다.


나름 큰 회사라는 꼴량한 자존심, 잊을만 하면 들어오는 월급과 한대 치고 끝낼까 싶으면 들어오는 인센티브, 그리고 죽을만큼 괴롭다고 해서 인간은 그렇게 쉽게 죽지 않는다는 사실. 


그리고 다시 시작할 자신이 없다는 마음까지


이 네가지 사실이 내 하루하루를 쿵짝 쿵짝 쿵짜작 쿵짝 네박자를 맞춰 내 인생을 사랑도 있고 이별도 있고 눈물도 있는 곳으로 굴려왔다.


송대관 아저씨 정답을 알려줘


하지만, 나는 이제 더 이상 이 노래에 맞춰 탭댄스를 춰줄 힘이 없다.

매일매일이 스틱스강에서 케르베로스와 물수제비를 뜨는 것 같은 기분이다. 이제는 한계가 와버렸다. 모든 말들이 칼처럼 박혔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눈 감는 순간까지 온통 지옥 뿐이었다. 돈이 최고라고, 존버는 승리한다고 내 엉덩이를 두드려주며 합리화를 하기엔 나는 너무 멀리 와버린 것이다.  

   

나는 더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었다.     

그래서 그냥 눈 딱 감고, 패잔병이 되기로 했다.


어느 겨울, 출근하자 마자, 차장님을 찾아갔다.     

“차장님. 저 그만두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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