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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온리원 Apr 30. 2024

무엇이 나를 규정하고, 무엇이 나를 흔드는지 알고 싶어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1985년 발표된 무라카미 하루키의 네 번째 장편소설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


이 소설은 80년대 초반 하루키가 문예지에 발표한 단편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기반으로 살을 인 장편이며, 하루키는 2023년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을 장편소설로 리메이크한다.




 소설가로서의 상상력이 돋보이는 작품인 데다, 단연코 재미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야기는 <하드보일드 원더랜드>와 <세계의 끝>이 양립하며 진행된다.


 원더랜드는 도쿄의 한복판에서 벌어지는 현실적인 이야기인 반면에, 세계의 끝은 알 수 없는 벽 안에 갇힌 목가적인 풍경의 마을이다. 이곳은 그림자를 벗어야 들어갈 수 있고, 도서관에서는 책이 아닌 꿈을 읽는 등 판타지적인 요소가 다분하다.


 두 이야기가 긴박하게 교차하지만, 서로 섞이지는 않는다. <세계의 끝>은 주인공의 '내면의 세계' 즉, 무의식으로 보인다.




 후반부로 진행될수록 <원더랜드>의 주인공이 과연 <세계의 끝>에 갈 것인지 궁금해 책장을 넘기는 속도가 빨라진다. 이 또한 하루키스트라면 공감할 것이다. 다음 장을 빨리 읽어야 할 것 같은 그 미치게 사랑스러운 중압감. 작가의 능력이다.


 빠지지 않는 섹스, 알 수 없는 존재로부터의 침입, 추격전, 아저씨에게 구애하는 어린 여자.  이런 하루키적인 클리셰에도 불구하고 꽤나  매력적으로 읽힌 건 그가 시종일관 '마음'을 입체적으로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은 사용하는 게 아니야.
마음은 그냥 거기에 있는 것이지. 바람처럼.
당신은 그 움직임을 느끼기만 하면 돼.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1
p.121




 


 주인공의 무의식인 <세계의 끝>에는 마음을 잃은 사람들이 산다. 마음이 없기 때문에 사랑도 미움도 없다. 슬픔도 기쁨도 증오도 질투도 없는 소박한 삶을 그저 묵묵히 살아간다. 상처받지 않으려는 방어기제가 세운 두터운 벽일까. 자신을 잃고 싶지 않은 '나'는 어떻게든 '벽'을 넘고 싶다.



"무엇이 나를 규정하고, 무엇이 나를 뒤흔들고 있는지를 알고 싶어" p.237




 나는 마음일까? 육체일까?  

 마음으로도 육체로도 규정할 수 없을 것이다. 인간은 마음과 육체뿐 만 아니라, 여러 가지 복잡 미묘한 감정과 생각과 유기물로 구성된 생물이다. 게다가 가치관이 아무리 올곧다 한들, 상황이 나를 만들기도 하지 않는가?




 원더랜드의 '나'처럼 자아가 무너지는 것에 대해 생각한다.


 나를 잃는다는 건 마음이 사라지는 것일까, 일상이 무너지는 것일까. 마음을 잃으면 일상이 위태롭다. 반대로 어떤 일을 계기로 일상이 무너진다면, 마음마저 위태로워진다. 




 어떤 경계도 뚜렷하진 않다.


 누군가에겐 옳은 일이 누군가에겐 그른 일이 되는 것처럼. 인간에게 선과 악 양면성이 존재하는 것처럼. 하루키는 여전히 절대적으로 이게 옳다고 주장하지 않는다. 누구도 그 기준을 정할 수도 없고, 함부로 재단해서도 안된다는 듯이.



 누구나 다 오류를 범하고 살아간다.

우리는 때때로 옳고 동시에 그르다. 내 기준이 결코 절대적이지 않다는 걸 나는 편협해지려 할때마다 떠올린다.



마음이란 것은 훨씬 더 깊고, 훨씬 더 강한 것이지.
그리고 훨씬 더 모순된 것이고.
p.332





 <원더랜드>의 '나'는 현실세계에서 의식이 단절된 채 어디로 가게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세계의 끝>의 '나'도 사라지는 것일까? 그리고 두 세계 속 공통의 '나'는 어디에 실존하는 것일까?




 뚜렷하지 않은 결론도 역시 하루키다웠다. 인간게는 내면과 외면 세계 모두 소중하고 그 경계는 살아갈수록 희미해진다. 우리는 그런 '나'를 끌어안고 살아갈 뿐이다.



 하룻밤 강아지였던 20대는 보이지 않던 것이 40대가 된 지금 마음으로 받아들여진다. 삶의 부피는 처음 읽던 그때와 확연히 달라졌지만, 나는 많은 것을 이해하게 된 지금의 내가 좋다.  비록 경계선 따위 미해 음은 순적이, 일상에서 많은 오류를 범하지만 그런 나를 인정하게 된 지금 훨씬.




“먼 훗날이 되어야 이해할 수 있는 경우도 있고, 그때 가서는 이미 늦은 경우도 있지. 우리는 대부분 자신의 마음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채 행동을 선택해야 할 때가 있어서, 그래서 다들 혼란스러운 거야.” p.368






하루키는 무의식의 서랍에 많은 것을 넣어둔 모양이다. 것이 자꾸 나를 붙든다.



나를 흔드는 건 무의식으로 보내버린 마음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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