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경험은 짜릿하다. 처음 자전거 타기, 처음 운전, 첫 연애가 그렇듯 설레면서도 두렵고 떨린다. 끊임없이 출렁이며 낯선 세계로 진입하는 여행 또한 그렇다. 낯선 땅에 첫발을 내디뎠을 때 만나는 특유의 향기와 표정은 여정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부추긴다.
열네 시간 비행 끝에 크로아티아 자그레브 공항 도착! 시내로 가는 공항버스에 올랐는데 한 손이 허전하다. 찜찜한 기분으로 한 참을 간다. ‘아, 내 가방!’ 환전소에 비닐 가방을 두고 왔다. 크로아티아 자동차 여행안내책자랑 지도가 들어 있는데, 한 달 전부터 꼼꼼히 경로를 표시해 두었는데…. 버스에서 내려 트램을 타려는데 친구가 캐리어 손잡이를 붙들고 실랑이를 벌인다. 여태껏 멀쩡하던 손잡이가 꿈쩍도 않는다. 아무리 잡아 빼고 흔들어도, 돌멩이를 주워 두드려 봐도 소용없다. 둘이서 가방에 매달려 진땀을 빼느라 지쳐 트램은 포기하고 택시를 탄다. 호텔까지 택시비가 50쿠나다. 16쿠나면 왔을 것을. 이번 여행을 예견하는 어두운 그림자가 스멀스멀 덮여온다.
이튿날 아침, 렌터카 사무소를 찾아간다. 친구는 부서진 가방 손잡이에 벨트를 묶어 끌고 간다. 가방이 자꾸만 기우뚱거려 가다가 멈추기를 반복한다. 할 수 없이 택시를 타고 사무실에 도착하니 문이 잠겨있다. 30분이 지나서야 나타난 직원은 바우처를 확인하더니 보험을 추가로 들어야 한단다. 영어 투성이 서류에 몇 군데 사인을 하고 차를 보러 간다. 기기 조작 설명을 듣는데 오토매틱이 아니다. 순간 하늘이 노래지면서 온갖 생각이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우린 수동운전 못하는데, 버스 타고 다녀야 하나? 이 짐 가방은 다 어쩌고? 버스 시간도, 타는 곳도 모르는데…. 버스만 타고 다니다 여행 끝나겠네. 아, 말도 안 돼.’ 렌터카 직원은 여기저기 연락해 보더니 지금은 오토매틱 차를 구할 수 없단다. 궁여지책으로 직원 차를 빌리기로 한다. 그의 차는 오토매틱에 내비게이션이 장착된 BMW 중형이다. 처음 예약했던 차의 두 배나 되는 4,000쿠나, 거의 80만 원을 지불하고 차를 빌린다. 속이 쓰리고 아프지만 어쩔 수 없다.
플리트비체
우린 서로를 위로하며 남쪽으로 달린다. 나나 무스쿠리의 ‘Over And Over' 노래까지 흥얼거리며. 두 시간을 달려 플리트비체 도착! 에메랄드 빛 호수와 크고 작은 폭포들이 빚어내는 신비로운 풍경에 그동안 노심초사 전전긍긍했던 일들을 날려 보낸다. 다음 날, 플리트비체 숲의 싱그러운 기운을 머금고 스플리트를 향해 달린다. 얼마를 달렸을까? 에어컨은 돌아가는데 엉덩이가 뜨끈뜨끈하다. “어떡하지? 우리 계속 엉덩이 지지면서 가야 돼?” 안절부절못하다 차 주인에게 연락, 물어물어 시트 온열 버튼을 찾아 끈다. 이후 여정에서는 내비게이션이 몇 번이나 우리를 시험에 들게 했다. “고 스트레이트, 턴 레프트….” 낭랑한 목소리를 따라 시골길 구석구석을 누볐다. 휴가 차량이 점령한 해안도로에서 한 시간을 서 있다가, 천 길 낭떠러지 길에선 오금을 저렸다. 차를 반납하는 날엔 주유소를 찾아 시내를 몇 바퀴 돌고, 일방통행로에 들어서 마주 오는 차를 피하느라 혼비백산했다. 덕분에 크로아티아의 속살을 더 깊이 만나는 행운을 얻었으니 그리 나쁜 일만은 아니다.
난생처음 자동차 여행을 하며 안타깝고, 황당하고, 아찔한 순간을 넘겨야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예기치 않은 사건으로 간이 졸아들었다.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어떻게든 문제는 해결되었고, 그 끝엔 혼곤한 평화가 찾아왔다. 여행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사건이 없다면 얼마나 심심할까? 여행은 늘 미지의 풍경과 사건을 선사한다. 그 여정에서 만나는 두려움, 절망, 기쁨, 환희가 있어 생은 더 풍요로워진다. 순간순간의 경험은 삶의 지층에 다채로운 무늬를 새긴다. 두려움을 안고서도 다시 여행 가방을 꾸리고 길을 떠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