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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Dec 11. 2021

비누 한 장 때문에

-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을 읽고 - 

  결혼생활은 사랑으로 시작했어도 시간이 지날수록 사랑 아닌 것들로 더 많이 채워진다. 사랑 아닌 것들로 상처 받고, 무너지고, 견디며 함께 살거나 헤어진다. 혹은 뜨거운 연애나 애틋한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은 아니지만, 따뜻하고 평온한 가정을 꾸려가기도 한다.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콜레라 시대의 사랑》에는 자잘한 일상의 어긋남으로 부부 사이의 골이 깊어지는 장면들이 나온다. 삼십 년을 함께 산 부부가 비누 한 장 때문에 헤어질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의사이자 교수인 후베날 우르비노 박사와 그의 아내 페르미나 다사의 이야기이다. 소설 속 우르비노 박사는 새벽닭 울음소리와 함께 잠에서 깨어나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기침 소리를 낸다. 아내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려고 침대 옆에 있는 실내화를 찾으며 투덜댄다. 페르미나 다사는 남편이 그녀의 잠을 깨우지 않으려고 애쓰는 척하면서 고의로 소음을 만들어 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녀는 날마다 새벽 다섯 시면 잠을 깨우는 남편을 향해 투덜댄다.

  “이 집의 최대 불행은 잠을 제대로 잘 수 없다는 거예요.” 


  우리 집 새벽 풍경 역시 다르지 않다. 남편은 새벽 다섯 시면 일어나 화장실에 앉아 삼십 분 이상 신문을 읽는다. 고요한 새벽 신문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얼마나 큰지는 들어본 사람만이 안다. 무엇보다 신경을 거스르는 소리는 욕조에서 씻는 소리다. 찰랑찰랑, 첨벙첨벙, 촤륵 촤르륵 온갖 소리가 들려온다. ‘푸우 푸우’ 기이한 숨소리까지 들려온다. 아무리 이불을 뒤집어써도 그 소리를 피할 방법은 없다. 


  결혼 첫날밤 페르미나 다사는 남편의 오줌 줄기 소리가 너무나 세차고 권위로 가득 차 있어 다가올 두 사람 사이의 일이 무서워졌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우르비노 박사는 변기를 사용할 때마다 주위를 적셔놓았다. 페르미나 다사는 욕실에 들어갈 때마다 암모니아 냄새를 맡고는 소리치곤 했다. 

 “토끼장 냄새로 가득하네요.”

 우르비노 박사는 화장지로 변기 주위를 닦는 굴욕에 가까운 행동으로 가정의 평화에 이바지하려 했다. 더 나이가 들어선 아내처럼 앉아서 오줌을 싸는 것으로 변기를 더럽히지 않고 품위를 유지했다.      


  아들과 난 주로 거실 화장실을 사용하고, 안방 화장실은 남편이 혼자서 사용한다. 욕실 청소를 할 때마다 화가 올라온다. 변기에는 여기저기 누런 얼룩이 묻어있고, 욕실 바닥엔 머리카락이 수북하다. 

  ‘변기가 더러워지면 그때그때 닦지 왜 안 닦는 거야. 바닥에 머리카락은 왜 이렇게 많아.’ 

  청소하며 나도 모르게 투덜거리게 된다. 아들에겐 욕실 사용하고 나면 머리카락도 치우고, 변기 얼룩도 지우라고 하지만 남편에겐 대놓고 말하지 못한다. 어떤 말을 돌려받을지 짐작이 가기 때문이다. 청소를 마치고 깨끗해진 욕실을 보면 개운하지만, 지저분한 욕실을 마주할 때마다 화가 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소설 속 부부에게 결혼생활을 그만두고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 싶은 소망을 불러일으킨 사건이 발생한다.

  “비누 없이 목욕한 게 일주일쯤 된 것 같군.”

  우르비노 박사는 목욕하다 비누가 없자 그의 아내에게 더 많은 죄책감을 심어주기 위해 거짓말을 한다. ‘사흘’ 동안 없었던 비누를 ‘일주일’ 동안 없어서 비누 없이 목욕했다고 말한다. 아내는 사흘이 될 때까지 비누 갖다 놓는 걸 잊고는 뒤늦게 갖다 놓았다. 자신의 잘못이 들통났다는 사실에 화가 나 이성을 잃고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소리치며 공격적으로 말한다.

  “난 매일 목욕했어요. 욕실에는 항상 비누가 있었고요.”


  소설 속 부부의 비누 사건을 읽으며 작년 가을쯤 남편이 맨몸으로 목욕탕을 들락날락하며 내게 화내던 장면이 떠올랐다. 

  “베베 풋 어디다 놨어? 어디다 치웠냐고?

  “그게 뭔데? 뭔지 모르지만 난 본 적도 만진 적도 없어.”

  “내가 목욕할 때 쓰는 건데 왜 건드린 거야?”

  “난 모른다고, 그게 도대체 뭔데?”

  남편은 자세한 설명도 없이 화부터 냈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 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본 적도 없는 물건을 왜 건드렸냐며 화내는 남편 때문에 억울하고 화가 났다. ‘베베’ 어쩌고 하는 데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라 더 황당했다. 남편은 내가 청소하다 그것을 버렸다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혹시 내가 실수로 다른 물건들과 함께 버린 건 아닐까 생각해 보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는 물건이었다. 나중에 화가 풀렸을 때 ‘베베’ 어쩌고 했던 게 뭐 하는데 쓰는 거냐고 물었더니 발꿈치 각질 제거하는 거라고 했다.      


  소설 속 부부는 비누 사건 때문에 삼 개월 동안이나 별거한다. 그녀는 남편이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의식적으로 거짓말한 것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석 달 동안 이어지는 불화를 해결하려는 시도들은 오히려 불화에 불을 지피는 꼴이 되었다. 석 달 후 우르비노 박사는 집에 들어왔지만, 거짓말은 인정하지 않았다. 한집에 살면서 각방을 쓰고, 대화는 아이들을 통해 메모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주고받았다. 이혼까지 불러올 뻔했던 비누 사건은 넉 달 만에 우르비노 박사가 거짓말을 인정하면서 해결되었다.      


  우리 부부도 어떤 일로 다투고 문제를 해결하려 대화를 시작하면 늘 더 큰 싸움으로 번지곤 했다. 꼭 말을 해야 할 상황이 오면 소설 속 부부처럼 아들을 통해 전달하기도 했다. 오래 살아온 부부의 결혼생활 모습은 시대나 공간에 상관없이 비슷하게 흘러가나 보다.     


  ‘베베 풋’ 사건은 반년 넘게 풀리지 않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그러던 중 오래된 목욕용품을 버리려고 목욕용품 바구니를 뒤집어엎었다가 수수께끼의 ‘베베 풋’을 발견했다. 한쪽 면이 꺼칠꺼칠하게 되어있는 직사각형 모양의 작은 유리판이었다. 유리판 가운데 발바닥 그림 아래 ‘Bebe Foot’이라고 쓰여 있었다. 나를 혼돈과 화염 속으로 몰아넣었던 그 물건이 발견된 것이다. ‘베베 풋’을 보자 분명 처음 보는 물건인데도 혼란스러웠다. 혹시 내가 청소하다가 바구니에 넣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욕조 청소를 마치고, ‘베베 풋’을 잘 보이는 곳에 올려놓았다. 남편이 그것을 발견하고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했다. 남편이 집에 돌아오자 입이 근질거렸다. 샤워를 마치고 나올 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었다.

  “자기야, 작년에 없어졌다고 내게 화냈던 ‘베베 풋’ 목욕용품 바구니 바닥에 있던데.”

  어떤 표정을 지을까 궁금해하며 남편 얼굴을 바라보았다. 내심 그것 보라고, 당신이 쓰고 나서 바구니에 던져놓고 왜 내게 화를 냈냐며 한마디 할 참이었는데 남편이 입을 열었다. 

  “그거 내가 다시 산 거야. 다시 사서 계속 쓰고 있었어.”

  무심한 표정으로 말하는 남편 대답에 기운이 쑥 빠졌다. 이참에 기세를 잡고 억울했던 마음을 풀어보려 했는데 소용없게 되었다. 분명 바구니에서 나왔을 때 그것은 물때가 끼어 있었다. 오래 사용하지 않은 흔적이었다. 그 뒤로도 그날의 진실은 몇 달 더 수수께끼로 남아 있었다.     


  얼마 전 기억에 관한 책을 읽고는 ‘베베 풋’ 사건이 떠올랐다.

  “궁금한 게 있는데 전에 잃어버렸던 ‘베베 풋’ 나중에 정말 자기가 다시 샀어?”

  “아니, 그거 자기가 청소하다가 바구니에 넣었었나 봐. 다시 산 것 아니야. 처음부터 쓰던 거야.”

  “전엔 새로 산 거라고 했잖아?”

  “아니야, 바구니 밑에 있어서 못 찾았던 거야.” 

  남편 말이 바뀌었다. 몇 달 전엔 분명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새로 산 것이라고 했었다. 그땐 왜 거짓말했었냐고 물으니 기억나지 않는다고 했다. 말문이 막힐 때, 할 말이 없을 때 누구나 쉽게 끌어다 쓰는 말, ‘기억이 안 난다’라는 말로 어물쩍 넘어갔다. 


  그때 남편은 왜 거짓말을 했을까? 갈등이 많았던 시기였으니 나에 대한 불만과 미움, 실수를 인정하고 싶지 않은 마음, 자신을 정당화시키고 싶은 마음이 뒤섞여 있었을 것이다. 내게 의문으로 남았던 ‘베베 풋’ 수수께끼가 완전히 풀리는 데는 꼬박 일 년이 걸렸다. 그 시간은 새벽의 소란, 변기의 얼룩, 욕실 바닥의 머리칼, 베베 풋 등 일상의 자잘한 사건들이 싸움으로 번져 상처와 원한을 쌓고, 풀기를 반복한 시간이었다.      


  박웅현은《다시, 책은 도끼다》에서 사랑의 결실인 결혼생활은 ‘결혼이라는 낭만적인 시가 끝나고 나면 생활이라는 산문’이 시작된다고 한다. 오직 사랑만 있는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인생이라는 집에는 창이 여러 개 있는데 어떤 창으로는 깨끗하게 정돈된 거실이 보이지만, 또 어떤 창으로는 지저분하고 정리 안 된 방’ 보인다고 한다. ‘비누 한 장’ 때문에 ‘베이풋 하나’ 때문에 불화하고, 별거하고, 헤어짐을 생각하는 일들이 곧 ‘지저분하고 정리 안 된 방’의 모습 이리라. 부부가 함께 사는 동안은 그 지저분한 방을 정리해가며 사는 수밖에 없는가 보다. 


   “그들이 결혼의 대재앙을 피하는 것이 사소한 일상의 불행을 피하는 것보다 쉽다는 것을 제때 배웠더라면, 아마도 두 사람의 삶은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두 사람이 함께 배운 것이 있다면 그것은 지혜란 아무짝에도 쓸모없을 때 온다는 것이었다.” (p51)     


  소설 속 부부는 일상의 불행을 피해 가는 지혜를 너무 늦게 깨달았지만,  내게 남은 시간 어지럽혀진 물건을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불행을 피해 가는 지혜를 배울 수 있길 바라본다. 이 또한 불가능한 꿈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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