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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아 Jun 30. 2022

고립된 존재들의 빈곤과 고독

-  김애란의 『침이 고인다』를 읽고

       

  김애란 소설집 『침이 고인다』를 읽었다. 평소 소설을 읽을 때 지나치게 감정이입을 하는 편이다. 작품 속 등장인물의 경험이나 감정들이 나와 겹칠 때마다 동일시한다. 이 소설집의 표제작인 「침이 고인다」를 읽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침이 고인다」는 입시학원 강사인 “그녀”가 공휴일인 광복절에 회사 체육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잠에서 깨어 다시 잠들기 전까지 하루 동안 펼쳐지는 이야기이다. 시간 흐름에 따라 공간이 바뀌고, 그 사이사이 석 달 동안 함께 산 후배 이야기, 학원에서의 갈등, 체육대회 장면들이 뒤섞여 나온다. 장면마다 “그녀”의 심리와 감정 변화가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침이 고인다」에 등장하는 주인공 “그녀”와 주요 인물인 후배는 이십 대 청년들이다. 그들의 삶은 고단하다. “그녀”는 현실 세계의 경쟁체제에 진입하려 애쓰지만, 현재의 삶을 유지해 가는 것도 버겁다. “매달 13평 원룸의 월세와 의료보험, 적립식 펀드 한 개와 적금을 부어갈 만한 생활력”을 갖고 있지만, 이를 유지하기 위해선 “퇴근 시간마다 막차를 놓치지 않기 위해 죽도록 뛰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녀와 석 달 동안 함께 지낸 후배의 처지는 더 열악하다. 후배는 갈 곳도, 의지할 데도 없는 “언제, 어디로든 배달될 수 있는 택배 같은” 존재로 그려진다.


  첫 번째 장면과 마지막 장면에서 “그녀”가 느끼는 감정은 피곤하다”이다. 그녀는 알람 소리를 “작은 재난”이라고 표현할 만큼 아침에 일어나는 게 힘들다. 마지막 장면에서도 그녀는 후배 생각, 부장의 힐난, 달갑지 않았던 체육대회의 피로, 때아닌 생리와 감기로 몸과 마음이 지쳐있다. 그녀가 보낸 하루만으로도 그녀의 삶에 덕지덕지 달라붙어 있는 피로감이 느껴진다.      


   “그녀는 자신이 아침에 일어나는 데 필요한 것 중 하나가 결심이 아닌 ‘주저’라는 것을 알고 있다.” (P47)     

  체육대회 날 아침, 그녀는 일어나기가 힘들다. 늦으면 벌금이 2만 원이다. 2만 원어치 더 잘까, 택시 타고 가면 만 원어치 더 잘 수 있는데, 그동안 지각 한 번 안 했으니 한 번만 지각할까, 온갖 생각에 휘둘리다가 아슬아슬한 시간에 일어난다. 어떤 이들에겐 주저는 성향이고 습관이기도 하다.  그들에겐 ‘주저’의 순간들로 응축된 힘이 몸을 일으키고, 마음을 움직여 삶을 밀고 나가게 한다. 나 또한 자잘한 일상에서부터 새로운 도전까지 출발 직전 아니면 시작 버튼을 누르기 직전까지 무수한 생각의 범람 속에서 '주저'의 시간을 보내곤 했다.


  그녀가 후배에게 선의로 베푼 하룻밤은 석 달 동안의 동거로 이어진다. 후배는 어렸을 때 엄마에게 버림받고, 사랑했던 사람들과 헤어진 이력이 있다. 도서관 휴게실에 버려진 후배는 엄마가 주고 간 인삼 껌을 씹으며 오지 않는 엄마를 기다렸다. 그때의 트라우마가 깊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을 떠나거나, 떠나보낼 때마다 입안에 침이 고이게 했다.


  그녀가 현관문을 열었을 때 – 깨끗하게 정리된 원룸 안에는 후배가 자신의 가방과 함께 언제 어디로든 배달될 수 있는 택배처럼,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p63)      


  후배를 들인 다음 날, 인사하고 떠나려 기다렸다는 후배에게 그녀는 잘 가란 말 대신에 “와인이나 한잔하고 가.”라고 한다. 이 말은 불편한 동거의 시작을 알리는 한 마디가 된다. 그녀는 후배와 함께 살면서 “누구와 함께 살아서 좋은 순간은 ‘뭔가 같이 먹을 때’라는 것”을 깨닫는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들에겐 “습관”이 생긴다. “일상의 습관, 관계의 습관, 그 습관을 예상하는 습관까지”. 그 습관은 그녀가 퇴근했을 때 ‘지금 후배가 없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녀는 후배의 부정적인 습관 목록을 발견한다. 후배의 말과 행동, 습관 모든 게 눈에 거슬린다. 급기야는 후배가 ‘물을 조금 마시는 것, 젓가락 쥐는 모습’까지 싫어진다. “무엇보다도 견딜 수 없었던 건 후배가 자신을 따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후배는 그녀처럼 옷을 입고, 말투를 따라 했다. 그녀는 “후배의 입에서 자신이 즐겨 쓰는 어휘나 농담이 튀어나올 때마다 뭔가 도둑맞은 기분”을 느꼈다.

  후배의 행동에서 그녀가 느끼는 마음의 이면에는 “난 너와 달라”라는 무의식이 작동하는 것 같다. 자신도 모르게 후배를 배제하는 마음, 경시하는 마음, 자신보다 불우한 처지의 후배가 자신과 같아지는 것에 대해 불편해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13평 원룸의 작은 공간에서 그녀는 ‘갑’의 위치에, 후배는 ‘을’의 위치에 있다. 그 작은 세계에서도 계층 간의 불화가 꿈틀거린다.     


  체육대회를 마치고 피로에 지쳐 돌아온 그녀는 후배의 첨삭 원고를 낚아채 훑어 내려간다. “여기.” “네?” “틀렸잖아.” “이게 장당 천 원 이어도, 이런 거 하나 틀리면 우리 학원 이미지가 크게 손상되는 거야.” 아침에 부장이 자신을 힐난하며 퍼부었던 말을 그대로 후배에게 쏘아댄다. 그녀는 후배를 나무라는 “자신이 집주인이라고 유세를 떠는 것 같고, 그런 검열과 의식적인 배려를 해야 하는 자신이 지겨워진다.” 그녀는 후배에게 더는 “함께 있는 건 좋지 않을 것 같다”라고 말한다. 후배는 “저도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요. 괜찮아요.”라고 한다. 후배는 반응은 늘 겪어온 일인 듯 담담하다.     


   그녀는 다시 혼자만의 공간에서 고독해지고 싶다. “푹신푹신한 고독감 속에 파묻혀 휴일이면 온종일 인터넷을 하거나 영화를 보고, 아무렇게나 입은 채, 아무 때나 일어나, 아무거나 먹어버리고 싶다.”라고 생각한다. 그녀는 뜨거운 물을 틀고 샤워하며 “자신이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한다. 후배가 나갈 때까지만이라도 잘해주자고 결심하지만, 그녀가 샤워를 마치고 나왔을 때 후배는 떠나고 없다.

  후배가 떠난 밤, 그녀는 잠을 이루지 못한다. 후배가 주고 간 인삼 껌을 떠올리고, 영수증 보관함 두었던 반쪽짜리 인삼 껌을 꺼내 씹는다. “입안 가득 달콤 쌉싸름한 인삼 껌의 맛이 침과 함께 괴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괸다.” 이 소설집 해설에서 이광호는 그녀가 껌을 씹는 행위를 “고독의 욕망이 소통의 욕망을 배제한 상황에서, 개인이 그 결핍을 보충하려는 상징적인 행위로 볼 수 있다.”라고 말한다.


  그녀는 후배의 어려운 처지를 외면할 만큼 모질지 못했지만, 함께 지내는 동안 혼자 살 때의 “푹신푹신한 고독감”을 그리워했다. 그녀의 감정 변화를 통해 자신과 다른 타자와 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수 있다. 작가는 그녀와 후배의 관계를 통해 타자와 연결되지 못한 채 소외되고, 고립된 개인적 삶의 양태를 보여준다.

  이 작품에서 “그녀”의 원룸은 고립된 개인의 거주 공간을 보여준다. 그녀는 자신의 방에 후배를 들였다가 다시 혼자만이 누릴 수 있는 “푹신푹신한 고독감”을 꿈꾸었다. 타자와의 소통 대신 고독의 욕망을 선택했다. 작가는 이 작품에서 “그녀”의 심리와 감정의 변화를 통해 타자와 소통하지 못하는 고독한 주체의 소외된 삶을 섬세하게 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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