낳을까 말까 고민했던 순간을 처음 털어놓았던 이 공간에 그새 10개월 동안 건강히 잘 자라주고 있는 막내의 소식을 전하면서 오랜만에 나의 황금 육아기를 적어보려 한다.
3개월은 엄마 출산 휴가로,
나머지 한 달은 할머니 품 안에서,
고작 4개월을 살아내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우리 하온이는 콧물 마를 새 없이 혹독한 사회생활을 견뎌내고 있지만 그 와중에도 발달 단계를 앞서 맞춰가며 폭풍 성장 중이다.
이제는 누군가 음식을 먹고 있으면 어서 자기도 달라고 표현도 하고 하원길에 엄마 품에 안기면 손발을 흔들며 반가워한다. 언제 뒤집었는지 모르게 이제는 엄마 찾아 온 집안을 기어 다니기도 하고 손 닿는 곳 물건을 끄집어내거나 아빠가 정성 들여 키우던 화분도 몇 개를 넘어뜨려 결국 다 처분하게 만들 만큼의 힘까지 자랑하며 아주 건강한 사내아이로 잘 자라주고 있다. 아이는 다 제 밥그릇을 가지고 태어난다는데 10개월이 언제 이리 흘러갔는지 하루의 피로가 싹 녹아들 살인미소를 무기처럼 장착하고 쑥쑥 자라는 중이다.
리즈 시절이라는 말이 있다.
리즈 시절이란 ‘전성기’, ‘황금기’ 등과 비슷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신조어로 찬란했던 과거 시절을 나타낼 때 주로 사용한다.
아이를 키우는 부모라면 누구나 자신의 열정과 에너지가 넘치던 젊었던 과거 사진을 보며 시간 여행을 하던데 언젠가 SNS의 지인이 자신의 청년의 때 사진을 게시해 돌아가고 싶은 리즈시절이라고 표현한 적이 있었다.
사랑하는 아내와 가정을 이루어 너무 예쁜 두 아이를 키우는 지인이 청년의 때를 리즈라고 표현하는 것을 보고 내 인생에서 리즈 시절은 언제일까 문득 생각해 보았다.
나의 첫 아이인 가온이는 올해 13살 초등학교 6학년이 되었다. 어릴 때부터 유독 묵직한 성격이던 그 아이는 갈수록 입담이 늘고 개구쟁이가 되어 남들 말하는 사춘기를 해맑게 지나가려나 싶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엄마의 마음과 머릿속을 꽤 뚫고 있는 마냥 능글맞게 엄마 기분을 딱딱 맞추는 속 깊은 아이로 쑥쑥 자라나고 있다. 같은 뱃속에서 나와도 여섯 아이가 어쩌면 다 그리 다른 색깔인지 육아에 정답이 있기는 한 걸까 싶은데 그래도 한 아이 아이마다 엄마 아빠의 모습을 거울처럼 가지고 있는 걸 보면 웃음이 나오기도 한다.
남들은 힘들다 하면 살이 쭉쭉 빠진다는데 출산을 거듭할수록 늘어나는 몸무게를 보면 난 정말 육아가 체질인 거 같기도 하다. 맞벌이하며 아이를 키우자니 정말 고군분투를 하고 있지만 일 년에 예쁜 옷, 화려한 화장 한 번 할 새가 없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찬란한 순간은 지금 이 순간이 아닌가 싶다.
막내 아이를 재우다 같이 잠들어 밤새 집안일 하는 꿈을 꾸다가 깬 새벽 4시
못다 한 집안일을 하기 전 이불을 곧잘 걷어차고선 밤새 추웠다고 하는 아이들 엄살 섞인 아침 투정을 생각하며 쌕쌕 잠이 든 아이들 이불을 다시 덮어주고 방문을 꼭 닫고 나오는 그 순간
내가 여섯 아이나 낳아 키우고 있다니...
이 아이들이 다 내 아이들 이라니 갑자기 감격에 겨워 눈물이 난다.
뇌과학자들이 말하길 인간은 행복이 너무 오래 지속이 되면 다른 것을 포기하고 행복에만 집착해서 굶어 죽을 수도 있다고 한다. 뇌신경에 문제가 생긴 마약중독자들처럼 말이다.
그래서 뇌는 행복의 지속력을 짧게 만든다. 로또에 당첨돼도, 부자가 되어도, 행복은 잠깐이고 인간은 매 순간 행복하지 않다. 그래서 행복해지려면 매 순간 작은 것을 누리면 된다고 한다.
집에 들어가면 마치 잔소리를 애창곡 반복재생하듯 열창하는 엄마이지만 그냥 그렇게 복작복작 살아가고 있는 우리 가정이 있어서 행복하다. 가지런히 놓여있지 않은 아이 신발에 잔소리가 나오다가도 이 신발을 신고 오늘 신나게 놀고 건강히 들어온 이 아이에게 감사해지는 것처럼 행복은 참으로 별개 아니었다.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라는 말이 무척 공감되는 이유이다. 아이가 여섯인만큼 행복한 순간도 여섯 배나 많은 이 일상에서 내 인생을 가장 찬란하게 해 주는 건 비싼 명품 가방도, 예쁜 옷도 아니었다.
각자 그 자리에서 한없이 모자란 엄마의 사랑을 나눠 먹으며 자라주는 건강한 내 아이들 덕분에 내 인생은 오늘이 리즈이고 내일도 리즈이다.
마치 아이 키우면서 단 한 번도 힘들지 않았던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