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광양시민신문 유튜브 채널에서 지난달 19일에 열린 제320회 광양시의회 임시회 시정질문에서 여성아동병원 유치 공약에 대한 김보라 의원의 시정질의 영상을 보게 됐다.
교차로 신문에서 이미 기사로 해당내용을 접했었지만 영상을 통해 보는 시장님의 답변은 광양시에서 아이를 키우고 있는 부모의 시선으로 이해하기에는 너무나 간극이 크게만 느껴졌다.
나는 첫아이부터 여섯째까지 순천에 있는 산부인과에서 낳았다. 신혼 초에는 직장 때문에 광주에 거주 중이었고 신랑은 광양읍에 있는 시댁에서 살고 있었기에 출산 직전까지는 광주에 있는 병원에서 진료를 받다가 출산을 위해 순천에 있는 병원을 찾게 됐다. 아무래도 광양은 생활권이 나뉘어 있다 보니 읍에 사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순천 출산을 생각하게 되는 듯하다. 지역에 연고가 없는 나는 시댁 식구들의 조언대로 순천에 있는 병원에서 아이를 낳았고 당연스럽게 소아과도 순천에 있는 병원을 이용하게 됐다.
광양시에서 관내 병원을 이용하고 출산을 하면 지원해 주는 정책이 있으나 중마권에 잘 알지도 못하는 병원을 지원금을 받을 수 있다고 선택한다는 것은 타지에서 온 지역정보에 둔감한 나 같은 산모에게는 어려운 선택이었다.
어찌 되었건 나는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크고 작게 아플 때마다 출산했던 병원에 함께 있던 소아과 진료를 받으면서 아이를 키웠다. 둘째를 낳고 분가를 하면서 집을 구할 때 우리 부부는 가정양육을 하고 있었고 차가 없어서 병원과 마트 가까이에 있는 집을 찾기로 했다.
고민할 필요도 없이 홈플러스와 미즈병원 바로 앞인 조례주공 아파트에 첫 집을 장만했다. 집을 딱 두 개 골랐었는데 조례주공을 보러 간 날 마트와 병원이 바로 길 건너에 있는 걸 보고는 두 번째 집은 보러 가지도 않고 그 집으로 이사를 했다.
아이를 셋 낳을 때까지만 해도 이러한 정주여건은 차 없는 우리 부부에게 전혀 문제 될게 없이 아이 키우기 좋은 환경이었다. 물론 광양에 비해 경제적 지원이 턱없이 부족하긴 했으나 종량제 봉투지원, 순천에 있는 각종 시설 무료 이용 등 소소한 문화복지적 혜택이 그만한 값어치를 하게 느껴질 만큼 조례동의 거주 환경이 주는 만족감이 컸다.
첫 집을 전세로 살던 우리는 집주인이 다시 들어오겠다는 이야기에 다시 집을 알아보게 됐고 회사차를 이용해 출퇴근하던 남편과 곧 있을 나의 복직을 고려해 남편의 회사 가까이로 이사를 오게 되었다.
그 당시 복직을 하게 되면 나는 광주나 여수로 발령이 날 수밖에 없었기에 아이를 키우는 데 있어서 회사 가까이로 이사 가는 것은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광양에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불편을 느낀 것은 제철 공단에서 느껴지는 불쾌한 냄새도, 창틀에 가득 생기는 새까만 먼지도, 심해진 아토피도 아니었다.
연년생으로 낳은 아이들이 아플 때 갈 수 있는 병원이 없어 아이를 이고 지고 순천까지 가야 하는 현실이었다.
아이가 조금 크면 자기 입으로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이야기를 한다. 하지만 말 못 하는 아이가 아플 때면 아이를 셋, 넷 키운 엄마라도 덜컥 겁이 나 병원부터 찾는다.
당시만 해도 영아가 야간에 진료받을 수 없는 병원이 없었고 중마동에서 큰 병원이라고 하는 사랑병원이나 강남병원, 서울병원 같은 곳에서는 응급진료에 열이 나는 아이들은 받아주지도 않았다.
맘카페에서도 감염성 질환이 유행할 때면 아이가 어느 병원을 갈 수 있는지 하루에도 몇 개의 글 들이 올라온다. 119를 불러서 병원을 간 것도 수차례였다.
아이들이 어느 정도 커서 이제는 크게 걱정되는 일들이 없긴 하지만 지난달만 해도 여섯 명이 동시에 아픈 초유의 사태가 일어났다. 1명은 고열로 일주일을 아팠고 연이어 3명은 B형 독감으로 입원, 2명은 수족구와 구내염으로 어린이집에 못 보내고 격리를 해야 했다.
시정질의 영상에서 시장님은 서울병원에서도 야간 진료가 가능하다고 하셨지만 이제 16개월이 갓 넘은 아이가 40도 고열이 날 때는 응급실에서 받아주지도 않을뿐더러 야간당직에 상주하는 소아과 의사 선생님이 없어서 어리면 어릴수록 신생아 진료 가능한 병원으로 갈 수밖에 없다. 이런 시골도시에서는 당연한 처사라고 치자. 오전진료는 어떠한가? 소아과 의사가 2명인 서울병원은 감염성 질환이 유행하는 시기에는 오전 진료 접수 시작 10분도 채 안 돼 오전 진료 접수가 모두 마감되고 2시부터 시작되는 오후 접수를 위해서 부모들은 12시 반부터 줄을 서야 한다. 그마저도 조금 늦으면 그날 진료를 받을 수도 없다.
광양에 소아과가 어디 그뿐이냐라고 할 수 있지만 감염성 질환에 열이 안 떨어지는 아이들 여럿을 집에서 볼 수 있는 간 큰 엄마가 얼마나 있을까?
입원실이 있는 병원을 찾다 보면 서울병원, 사랑병원뿐이다. 그마저도 입원실이 없어서 성인 병동에 겨우 자리를 부탁하고 보호자는 병원내외 드나들 수 없다는 말에 보호자도 없이 아이들을 맡기고 나머지 수족구와 구내염 걸린 아이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이쯤 되면 아이들 아픈 것은 맞벌이하면서 키우느라 어린이집에 일찍 보낸 내 탓인 것만 같고 봐줄 사람도 없이 많이 낳은 내 책임인 것만 같고 아침에 더 정성스레 챙겨 먹이지 못한 내 부족함 때문인 것 같아 자책만 하게 되는데 현재 광양시 응급 의료시스템이 이 정도면 잘 갖추어져 있다고 하시는 시장님 답변이 나만 이해가 안 되는 것인지 의문이 들었다.
서울에 있는 종합병원도 4곳 중 1곳이 적자라는 세상이지만 의료만큼은 실리를 앞서 필수가결한 사안으로 논의되길 바란다. 얼마 전 광양사랑상품권 사용 가능 업체에서 연매출 30억 이상인 기업이 제외되었다. 선정된 곳을 둘러보다 다나 소아과 이름을 보았다. 연매출 30억 원이 넘을 만큼 진료가 잘되는 병원이라 함은 역으로 생각해 보면 그만큼 병원을 찾는 수요가 많다는 것이다. 아프면 언제든 찾아가 믿고 진료받을 수 있는 병원이 생기기를 바라는 마음은 15만 광양시민의 공통된 마음 일 것이다. 그래서 사실 시에 돈이 없다면 시민 펀딩이라도 해볼까 하는 생각도 해보았다. 명색이 아이 키우기 좋은 도시라면 교육, 의료, 복지, 교통, 각종 문화혜택 중에서도 의료만큼은 지금보다 나아질 수 있도록 고군분투해야 한다고 생각되는데 시장님 답변을 듣고 있으면 발전시켜나가야 할 의료시스템에 대한 고민이 전혀 없는 것처럼 느껴졌다. 얼마 전 이사예정인 입주민들 톡방에서 밤늦게 열이 안 떨어지는 아이에게 교차 복용하려고 해열제를 사러 문 연 약국을 찾다가 집에 있는 약이 있는지 묻는 메시지가 올라왔었다. 아이 키우는 부모라면 다들 아이에게 맞는 해열제를 상비하고 있기에 너도나도 해열제를 주겠다고 답글을 달았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서로서로 육아동지가 된 것만 같아 든든하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모든 나라는 그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갖는다라는 말이 있다. "모든 나라는 그 나라 국민 수준에 맞는 지도자를 가지게 되어있다"라는 처칠의 명언으로도 전해지는 이 말처럼 따뜻한 15만 광양시민의 지도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의 어려움과 간절함을 우선적으로 읽는 더 따뜻한 지도자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