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좋은 정 Nov 22. 2021

우리 지금 여기,


차만 타고 나가면 어디든 여행처럼 느껴지는 나는 

유독 강천산을 좋아한다.


어릴 적 아버지가 그레이스 봉고차를 타시던 때가 있었는데 

아빠는 손재주가 많아 그 시절 소위 캠핑카를 직접 만드셨다. 

봉고차는 운전석과 2열이 블라인드로 나누어져 있었고 

각 창문에도 블라인드를 설치해 

의자를 눕히면 다 같이 누워 잘 수 있는 침실이 되었다. 

구석구석 아버지 손이 안 닿는 곳 없이 꾸며진 그 차는 

우리 가족의 움직이는 집이 되었다. 

또 차에는 자차를 가지고 있는 어느 집에서도 볼 수 없던 티브이와 비디오도 설치돼있었다. 

(비싸기도 했고 쉽게 찾아볼 수도 없던 물건이라 몇 번을 도둑맞고도 다시 산다고 엄마한테 혼나시던 아빠 모습이 기억에 남아 있다.)


당시 핸드폰이 없던 우리는 

하교시간이 되면 학교 후문 주차장에서 무작정 기다리고 있던 아빠 차를 타고 

여기저기 마음 닿는 근교로 여행을 가서 

계곡물로 끓인 된장국에 밥도 먹고 

목이 다 늘어난 아빠 메리야스 한 장을 걸치고 

밤새 풀벌레, 새소리를 들으며 잠을 자고 

더워서 잠이 깨면 등목을 하기도 하고 

아침엔 계곡물에 고양이 세수를 하고선 학교에 가며 

평일이고 주말이고 여행을 다녔었다.


난 그중에 강천산을 가장 좋아하기도 했고 

한쪽 다리가 의족이신 우리 아버지가 오르기에도 어렵지 않아 

더 자주 찾았었던 것 같다. 


아이들이 셋이 되고 

어린이집에서 숲 체험으로 두어 시간 남짓 산에도 오른다기에 

옛 기억이 떠올라 

우리 부부는 아이들 데리고 가볍게 오를 만한 산을 찾아 

등산을 가자는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아이들이 오랜 시간 차를 타는 것을 싫어하는 남편은 

가까운 백운산, 가야산 두고 

굳이 강천산까지 가느냐며 

몇 년은 탐탁지 않아했지만 

해가 거듭될수록 셋에서 넷,

넷에서 다섯으로 늘어나는 아이들과 

예년에 비해 조금 더 많이 걷는 아이들과 

같은 장소에서 추억을 남기는 맛에 

이제는 나보다 더 등산 가는 날을 챙긴다.


올해 우리는 사진으로 봐서는 여전히 일곱 식구지만 

뱃속 '온리'까지 여덟 명의 가족사진을 남기고 

내년에 엄마 등에 업혀 등산을 하게 될 

우리 여섯째의 모습을 그리며 돌아왔다.


일 년 중 우리 가족의 가장 의미 있는 이 날을 

우리 아이들이 커가는 동안 쭉,

그리고 그 아이들의 아이까지 

그렇게 건강하게 함께 오래도록 거닐 수 있기를 소원한다.






우리 지금 여기,

2021년 가을 강천산에서 사랑하는 나의 여섯 아이들과




 

작가의 이전글 새로운 시작을 응원하며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